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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0> 지중해의 꽃-크로아티아 와인<세계

눌재 2010. 6. 25. 23:03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0> 지중해의 꽃-크로아티아 와인<세계일보>
쪽빛 바다, 과일향 그윽한 ‘포십’… 발칸 여행객들 넋잃다
  • 빌 게이츠나 톰 크루즈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태연히 산책하는 크로아티아 해안은 시인 바이런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크로아티아가 속한 발칸반도는 서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전쟁터가 되는 고통을 겪었다. 20세기 들어서는 유고연방의 실력 행사로 인해 이민족들이 한 집 살림을 하느라 갈등의 불씨가 상존하고 있었으며, 그 갈등은 연방이 해체됐을 때 개별 국가로 여러 나라가 독립을 선포해 오늘날 발칸반도는 다수의 나라가 복잡한 국경을 마주하고 지내는 형국이다. 로마 제국과 투르크 제국간의 격전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등 문명과 민족 간의 끊임없는 충돌로 인해 발칸반도는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산업화의 뒤안길에 있었던 덕분에 희귀 동식물 군락이 드물게 남아 있어 오늘날 대자연의 웅장함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귀여운 프리모스텐은 바람이 잘고 파도가 낮은 달마티아 지방의 전형적인 어촌이다.
    크로아티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3위에 입상한 축구 강국이며, 만년필과 넥타이를 최초로 사용한 나라다. 크로아티아 언어의 철자법만큼 낯선 크로아티아는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인에게는 푸르디 푸른 아름다운 바다로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필수 여행 코스다. 오랜 와인 음용의 역사와 양조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 여행지 다변화를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그리고 다양한 와인 세계를 경험하고픈 애호가들에게 이 나라를 추천한다.

    ◇마르코 폴로의 생가를 찾아 가는 여정은 그의 ‘동방견문록’을 읽지 않아도 견문이 넓어지는 여행이다.
    # 마르코 폴로의 고향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크로아티아 섬 출신이다. 해안이 아름다운 달마티아 지방 코르출라(Korcula) 섬에 가면 그의 생가가 있다. 애완견을 두고 있지 않아도 한번쯤 봤음직한 만화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 그 개들의 원산지가 달마티아(Dalmatia) 지방이다. 마르코 폴로의 시대는 베니스가 호령하던 시절이라 이탈리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태어난 곳은 코르출라 섬이 맞다고 마르코 파브락이 강조했다. 그는 양조장 코르타 카타리나(Korta Katarina)의 마케팅 담당자다. 그는 판로가 개척돼 마르코 폴로처럼 전 세계를 다니고 싶어한다.

    크로아티아는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대부분을 소유할 정도로 해양에 역사를 둔 나라다. 그래서 세계의 부자들은 이곳에 별장을 사고 요트를 정박시킨다. 성수기인 6월부터 10월까지는 관광객이 넘쳐난다. 오레비츠에서 수상 택시를 타고 코르출라로 가서 마르코 폴로의 생가를 방문한 다음에는 해변의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요기를 한다. 와인은 포십(Posip)이 좋다. 섬에서만 나는 토착 청포도로 만들어 특유의 열대 과일 향기가 매력적이다. 잘 익은 오렌지·자몽·복숭아 향기가 합쳐진 것 같다. 오크통과 스테인레스 스틸통에서 숙성한 두 가지 스타일이 양산되는데, 관광객들은 주로 도수가 낮고 상쾌한 맛이 나는 스테인레스 스틸통 숙성의 포십을 좋아한다고 소믈리에들은 말한다. 생가 바로 옆에 있는 부티크 호텔 레시츠 디미트리(www.lesic-dimitri.com)는 마르코 폴로의 여정을 따라 행선지별로 테마 룸을 설치해 손님을 맞이한다.

    ◇휴일에 성당으로 모이는 촌부들은 모두 전통 의상을 갖췄다.
    # 가족 여행이라면 ‘캡틴 하우스’ 선택을


    ‘캡틴 하우스’는 선장의 집이다.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태어나 10살 때 출가해 망망대해를 떠돌면서 뱃일을 거들다 선장의 반열에 오른 남자가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집을 짓고 윤택하게 여생을 보냈다는 사연이 담긴 집이다. 캡틴 하우스는 해변 언덕에 있어서 전망이 좋고, 마당도 있고 건평이 넓어서 부의 척도로 쓰일 정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선장 사후에 가족들이 저마다 소유권을 주장하고 독차지하려는 바람에 법적 분쟁이 끊이질 않아 어떤 가족 구성원도 들어가 살지 못한다고 마르코가 말했다. 상속이 순조롭게 이뤄진 캡틴 하우스는 주로 관광객에게 주 단위로 임대해 수익을 창출한다.

    # 크로아티아의 대표 와인

    유럽에 와인 문화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크로아티아 역시 와인 생산국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유서 깊은 와인 문화가 곳곳에 뿌리를 박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35ℓ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는 뒤지지만 독일보다는 앞선다.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 네 군데를 소개한다.

    ◆슬라보니아 지방의 쿠테보=수도 자그레브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쿠테보에는 블라도 크라우타커(Vlado Krauthaker)가 운영하는 유명한 양조장이 있다. 그는 왕년에 핸드볼 선수였으며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던 해에 국가 양조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양조장을 시작했다. 크로아티아 내륙에서는 청포도 그라슈비나(Grasevina, 웰쉬리슬링의 크로아티아식 표현)를 많이 재배한다. 블라도는 “주변에 오크 나무가 흔하게 자라 지역산 오크통을 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슬라보니아산 오크통은 인기리에 전 세계로 수출된다. 이웃 양조장 안툰 아드치츠(Antun Adzic)의 그라슈비나는 잘 익은 사과향기, 풍부한 질감, 상쾌한 신맛 등이 조화로워 기억할 만하다.

    ◆이탈리아 같은 이스트라=북쪽으로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접한 이스트라(Istra)는 이탈리아 항구도시 트리에스테가 가깝고 이탈리아의 영향이 많은 곳이다. 이탈리아에서 식재료로 쓰는 송로 버섯인 ‘타르투포’가 많이 출토돼 파스타나 리조토에 곁들여 먹는다. 청포도 말바지아가 많이 재배되며, 검은 포도 테란도 있다. 양조장 오너인 이비카 마토세비치 박사는 “베니스 왕국 시절 최고의 와인이었던 말바지아의 품질을 고양하는 것이 이 지역에서 중요한 과업”이라고 말했다.

    ◇플라바츠 말리로 담그는 딩가츠 와인은 지중해 태양이 액화된 듯 열기가 느껴진다.
    ◆진판델의 고향 딩가츠=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달마티아에는 멋진 풍광을 지닌 페제샤츠(Peljesac) 반도가 있다. 페제샤츠는 육지에서 약 60km 북서쪽으로 뻗어 나와 있는데 남향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길게 늘어선 포도밭으로 딩가츠(Dingac)가 있다. 제네바협정에 의해 원산지가 보호되는 유일한 유럽의 포도밭이라는 딩가츠는 경사가 워낙 가파르고 바로 옆이 바다라서 보기에도 뭔가 대단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서는 검은 포도 플라바츠 말리(Plavac Mali)를 재배하는데, 미국 와인의 얼굴마담 진판델이 이곳에서 비롯됐다고 마리아 므르구디츠가 말했다. 그녀는 12대째 와인을 만드는 터줏대감으로 얼마 전에는 고향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진판델을 미국에서 도입하여 보란 듯이 키우고 있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진판델을 고향으로 데려와 딩가츠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판델은 미국식 표현이니 원래의 이름 ‘츨레낙’으로 불러달라고 청했다. 츨레낙, 진판델 그리고 이탈리아의 프리미티보는 모두 같은 품종으로 이름만 다르다.

    ◆서늘한 기후의 풍경 좋은 플레시비차=수도 자그레브 서부에 위치한 플레시비차는 서늘한 기후대로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피노 누아 등이 잘 자란다. 드물게 보는 스파클링 와인 생산자 토미슬라브 토마츠의 피노 누아는 정갈한 맛이 일품이었고, 베리미르 코락의 샤르도네는 버건디 스타일로 잠재력이 있었다.

    ◇쿨렌은 유럽의 여러 소시지와는 달리 주된 맛이 매운맛이라 우리 입에도 잘 맞는다.
    # 쿨렌(Kulen)을 맛봐야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것이다


    내륙지방 특유의 저장 음식 가운데 슬라보니아는 쿨렌이라는 소시지로 유명하다. 흑돈의 최고 부위 고기 살을 다져 파프리카와 마늘을 버무려 염장한 후 수 개월간 건조해 만드는 쿨렌은 샴페인처럼 그 원산지가 보호받는 크로아티아의 특산품이다. 비계가 거의 없어 담백하면서도 매운맛이 있어 우리 입에 잘 맞는다. 마른 빵에 얹어서 한 입 물고 약간 단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좋다. 소주에도 좋겠지만, 크로아티아에서라면 그라슈비나를 추천한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