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격렬한 움직임·분노의 눈빛…다비드에 연극적 긴장감 불어넣다
- 입력
- 2013-11-22 21:15:43
- 수정
- 2013-11-23 02:15:20
- 2013-11-23 A19면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22) 베르니니와 바로크 조각
(22) 베르니니와 바로크 조각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에 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 미술관 최고의 소장품 중 하나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의 ‘다비드’상(1623)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1501~1504)을 떠올렸다간 큰코 다친다. 미켈란젤로 작품 앞에서는 방어 자세만 취하면 되지만 베르니니의 조각상은 보자마자 달아날 채비부터 해야 할 것처럼 기세등등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골리앗에게 돌팔매질하기 전의 긴장된 순간을 차분하고 정적으로 묘사한 데 비해 베르니니의 다비드상은 사력을 다해 돌팔매 동작을 취하고 있다. 상체는 투척 직전의 투포환 혹은 창던지기 선수처럼 오른쪽으로 바짝 돌리고 왼손도 오른쪽으로 쏠렸다. 최대한 힘이 들어간 상태다. 하체는 이와는 반대로 오른쪽 다리는 앞으로 바짝 내밀고 왼쪽 다리는 뒤로 쭉 뻗었다. 그러면서 얼굴은 골리앗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다.
사지와 얼굴 그 어느 것 하나 동일한 수직선상에 있지 않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서 볼 수 있는 수직적인 외양은 사선과 대각선이 조합된 베르니니의 다비드상으로 바뀌었다.
똑같은 다비드상을 이렇게 다르게 묘사하다니. 대체 1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베르니니의 다비드상이 만들어진 시대를 서양미술사에서는 바로크시대로 분류한다. 17세기 초부터 시작되는 바로크시대는 가톨릭 세력이 종교개혁의 움직임을 억누르고 결정적인 승기를 잡은 시기다. 로마 교황청을 비롯 가톨릭 지도부는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는 한편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간 신도들을 다시금 불러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기념비적인 미술품들을 제작한다.
신도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르네상스 시대의 차분하고 정적인 미감에 호소해서는 곤란했다. 좀 더 박진감 넘치고 감정에 호소하는 미술품이 필요했다. 신도들을 다시 교회 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성서의 기적적인 에피소드나 성자가 계시를 받는 순간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달해야 했다. 연극적인 연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베르니니는 그 점에서 바로크 시대가 요구하는 덕목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조각은 물론 건축, 회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닌 데다 천운까지 타고난 행운아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 교황의 조카인 스키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과 알게 된 것이 인연이 돼 교황청을 출입하게 됐고 불과 23세에 그레고리우스 15세 교황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교황청의 주요 미술작품은 대부분 그의 몫이 됐고 그는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쥐게 된다.
그는 극작에도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드라마 대본을 썼는데 특히 등장인물의 심리적 긴장감을 탁월한 솜씨로 묘사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는 그런 심리적 긴장감을 조각 작품의 격렬한 동작과 표정에 실어 연극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발군이었다는 사실이다.
다비드상만 해도 그렇다. 관람객은 그의 격렬한 몸동작을 통해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골리앗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작품의 크기는 실제 인물 정도에 불과하지만 관람객은 마치 넓은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다비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다비드는 결코 사각의 대좌라는 협소한 공간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CEO를 위한 미술산책 用
교황 우르바누스 8세(재위 1623~1644년)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교황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일세. 그러나 내가 기사 베르니니를 만난 것은 더 큰 행운일세.” 그의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베르니니를 만난 것은 우리들에게도 큰 행운이라고.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취미와 여행▶ > 고고,미술,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의 흔적' 살리는 예술품 치료…티치아노 그림에만 7년 넘게 투자 (0) | 2013.11.27 |
---|---|
파리에 잠든 한국 유물…수월관음도·청자 등 2천여점 수장고서 '낮잠' (0) | 2013.11.27 |
[CEO를 위한 미술산책] 해부학적 정확성에 인간적 온기까지…다비드가 아름다운 이유 (0) | 2013.11.25 |
[CEO를 위한 미술산책] 아름다운 비너스상의 비밀…신의 가면 뒤에 가린 인간 욕망입력 (0) | 2013.11.25 |
CEO를 위한 미술산책] 자세의 혁명 콘트라포스토…조각상에 자유를 부여하다 (0) | 201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