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일지▶/도량

명상 108 배기도에 들면서(1)

눌재상주사랑 2009. 3. 20. 18:03

양력 3월 4일,음력으로는 2월 8일 이날은  부처님 열반일이다.

 

관음기도 도량 상주 백화사에서는 도혜 혜성스님께서 이 날로부터 일주일 후가 되는 음력 2월 보름날이 부처님의 출가일이기에 1주일 동안 기도를 올리기로 정하셨다.

신도들이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기도이지만 부처님의 인연법에 따라 이런 동참의 계기도 시절 인연이 닿아야 할 수있고 또한 신심이 닦여 있어야 가능한 일 일것이다.

 기도에 동참할 신도들은 이날 부터 정갈한 준비를 하였고,스님도 함께 기도 입제 하신다 하셨다. 이번 기도에는 어려운 한문체의 기도문보다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한글본 경전을 스님께서 일부러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어느새 만반의 준비를 갖추셨다.

 

-명상 108 배 기도-

 

명상 108배 기도를 준비하시면서 C D 음반도 준비하시고 첫날은 직접 예불에 참여해 집전하셨다. CD내용은 우리에게 국악연주로 잘알려진 김영동님이 청아한 대금소리를 연주하는 가운데 김신기님이 낭송하는 내용이 절로 절하는 사람을 무아의 경지로 빠져들게 하는 아름다운 시와 게송 우리가 평소 늘 예불하며 입으로만 되뇌이던 경전을 순수한 한글로 뜻을 이해하기 편하게 편집하였다.

다들 기도를 마치고 나서 너도나도 그 내용이 너무 자기에게 꼭 맞아 와닿는 내용이었다고 술회를 할 정도라니 두말할 나위가 없을것이다.

 

아쉬움이라면 첫날 하루 기도를 마치시고 스님께서 이튿날은 관음종 서울 본사에서 거행되는 관음종 제7대 종정스님 죽산 남천당스님의 취임식에 참여차 큰 스님과 함께 서울에 가시고 그 다음날에는 신도들 일부는 이 행사에 참여차 서울로 향하여 떠나고, 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신도들은 남아서 명상 108배 기도에 참여하여 매일 아침 사시를 기해서 모두 한마음으로 부처님전에 예불을 올린점이랄 수가 있을것이다.

하지만 스님이 짜주신 프로그램은 완벽하였다.우리 신도들 끼리 정확히 사시에 맞추어 예불을 올리는 일이지만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진지하게 도량석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입제날에 아내인 자심성만 참석하고,나는 무성의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인연이 있나보다.

이튿날부터 참석하였지만 한글로 된 경전을 신도들끼리 모여서 독경하고 난 후 마무리 기도로 명상낭송을 따라 108배를 한다.

CD에서 나오는 음성과 은은한 음악에 맞춰서 그 뜻을 음미하며 올리는 절은 이제껏 관세음 정근이나 큰 스님께서 축원문을 낭송하실 제 하던 절도 신심에 취할 수 있어 좋았지만, 이번 기도에서 명상 108배 기도는 색다른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 수 있었다.

 

동참한 모든 신도들이 한점 흐트러짐없이 아무런 장애없는 그 구경의 경지에 빠져들게 된 듯 그 숙연하고 진심이 우러나옴에는 기도가 끝난 후에 보살님들의 눈빛과 얼굴에서 담박에 드러나는 듯하였다.

 

일주일을 보례진언을 통해서 부처님께 진언을 읊조려 고한후 입으로 지은 업을 맑히는 진언,경을 여는 게송 감춰진 법을 여는 진언 그런후 하늘에 닿는 듯한 묘한 경전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산스크리트어 그래로 원어로 이렇게 차례차례 순서대로 넘어가는 진언과 참회문 기도문을 번갈아 지송함에 한글의 뜻으로 풀어서 된 말이 또한 머리속에서 되뇌이려는 노력이 가미되어서인지 구절마다 자세히 음미하며 머리속에서 새겨보는 일은 참으로 지금껏 웅혼한 부처님의 한문 경전의 맛을 다른 방향에서 접하며 음미할 수 기회가 된 것이다.

 

 이제 다시 한번 명상 108배를 회억하며 조용히 적어 보고자한다. 그때의 기도 순간을 하나 하나 머리속에서 회상하면서

 

 

   - 절을 하는 마음 -

 

절이란 참으로 진지하게 나를 닦는 방법입니다

절을 통해 나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하여

나의 생존의 가치와 뭇 생명들의 생존의 가치를 큰 마음속에서 같은 가치로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을 지극히 내 안에 모시고 살림의 장을 확산해 나가는 생명과 평화를 위해 백팔 배를 올립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를 생각하며 첫번째 절을 올립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두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의 진정한 얼을 찾기 위해 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의 귀중함을 생각하며 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의 영혼과 육체의 건강함을 위해서 여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일곱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부터  찾고 나부터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여덟번째 절을 올립니다.

오늘 여기 살아있는 목숨의 귀중함을 생각하며 아홉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의 생존의 경의로움에 대하여 열번째 절을 올립니다.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를 생각하며 열한번째 절을 올립니다.

가족간에 항상 사랑할 수 있도록 열두번째 절을 올립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세간사의 말들이 다 부처님의 말씀으로 부터 온 것이란 것을 느끼게하는 대목임을 알 것입니다.

낭송은 계속 이어진다......

 

사랑속에 강함과 기쁨의 성장을 체험하기 위해 열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오로지 사랑 속에서만 기쁨을 찾기위해 열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하나의 사랑이 우주 전체에 흐르고 있음을 알기 위해 열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길을 잃어 헤매는 나에게 환하게 길을 열어주는 스승님깨 열여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느끼며 열일곱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의 스승이 내 안에 살아 있음을 생각하며 열여덟번째 절을 올립니다.

내 생명의 샘물과 우주 뭇 생명의 기원이 내 안에 살아있음을 느끼며 열아홉번째 절을 올립니다.

항상 모든  조상과 모든 신령 지금 여기 내 안에 계심을 알고 믿으며 나를 향하여 스무번째 절을 올립니다.

 

모든 기원이 내 안에서 살아 난다는 이 사실을 아시고 오직 천상 천하에 나만이 존귀하다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새삼 되뇌어지는 대목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며 스물한번째 절을 올립니다.

진실로 자신을 생각하여 나쁜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스물두번째 절을 올립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스물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않으며 스물 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남의 착한 일은  들어내고 허물은 숨기며 스물 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남에게 발설하지 않으며 스물여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남에게 원한을 품지 않으며 스물 일곱번째 절을 올립니다.

남에게 성내는 마음을 두지 않으며 스물 여덟번째 절을 올립니다.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 하지 않으며 스물 아홉번빼 절을 올립니다.

보지않은 것을 보았다고 하지 않으며 서른번째 절을 올립니다.

일을 준비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서른한번째 절을 올립니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서른 두번째 절을 올립니다.

세상 살이세 곤란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서른 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매 순간이 최선의 순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서른 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세상을 경이롭게 살기 위해 서른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작은 은혜라도 반드시 갚을 것을 약속하며 서른 여섯번째 절을 올립니다.(계속)

 

 유가의 경전인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공자와 공자의 제자인 자공간의 대화가 떠오릅니다.

자공이 말하길 "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길 "그만해도 괜찮다" "하지만 가난하지만 그 생활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대답하였슴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이른 문답을 주고 받는 시기에,자공은 재물을 상당히 소유한 부자로 알려져 있었다.하지만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현자였습니다.공자는 자공이 이렇게 질문하는 그를 두고 시를 더불어 논할수 있는 유일한 제자중에 한 사람이라고 높이 그를 사고 있지만 이미 경지에  이른 자라도 마음을 닦기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경구를 일러 마음의 경계를

삼게한 좋은 일례의 이야기지요.

 

명상 108배의 문구는 바로 이런 경지의 삶을 우리에게 전하여,심히 정진하며 수도를 게을리 해서는 아니된다고 일러주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