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 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 老死盡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 故 心無罣碍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故 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 不虛
故 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 曰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본래 반야바라밀다심경인 것을 여기에 마하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그 마하를 포함하면 글자 수가 270字로서 부처님의 팔만대장경을 한 문장에 축약시켜 놓은 경전이라고 하더군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우선 글자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반야에 이러르는 마음을 다스리는 큰 글"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부터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며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반야바라밀다심경안에 녹아있는
심오한 말 뜻과 경으로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을 이해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으며, 공부하는 사람에 따라 많은 해석과 의견을 분분하게 들추어왔지만 다들 그 핵심에 다가서는 데에는 제대로 밝히기가 싶지 않아서인지 첫 눈에 들어오는 완역본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경우는 그 해석을 쉬운 말로 번역을 풀이해오지만 이 글들을 읽어도 마음 속을 뻥 뚫어 시원하게 와 닿게 해주는 번역본이나 책을 만나기 어렵웠다. 물론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한역으로 표현하고 난 것을 다시 한글로 풀이하는 일이 이처럼 번역을 어렵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중국의 당나라 때에 현장법사께서 한역한 번역 본을 토대로 한글 번역을 수없이 보급해오지만 이를 요약함에 빛깔이 다 달리 나타나 유통되어 옴은 어쩔수 없이 사실이다.
이에 본인은 이 반야심경을 오랫동안 암송하며 머리속에서만 맴돌며 정리가 되질않아 시중에 유통하는 대중 번역본에 의존하다가 나름대로 이를 정리하여 재 정립하고자 한다
내가 요즈음 노연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는 공부과정에서 서당 선생님에게 한학을 사사하며 현토를 달며 공부를 하다가 착상한 것이 우선 이 반야심경을 경 안에 내재되어 있는 空사상이니 육바라밀이니 하는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며 이것을 풀이와 겸하여 해석을 하다보니
오히려 글이라면 그 문장이 가지고 있는 문장 구조의 언어 체계와
문맥을 이해하는 게 순서이고 원칙인데 이는 뒤로하고 글을 읽으면서 사상과 철학 혹은 종교적 교지를 동시에 전달하려거나 혹은 정복하려는 작업이 병행하게 됨에 글 뜻도 사상도 교지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어 우선 순수한 번역과 문장 구조를 통해 그 대강을 간추려 보고자 한다.
우선 반야심경은 그기에 따라서 대강 정리를 하다보면 부처님께서 사리자라는 제자에게 삼법인의 요체랄수 있는
일체개고(현상계의 물상이나 사건이 모두 고통이라는 법지)
제법무아(현상계의 물상이나 사건에는 모두 我라는 존재의 물성이 없다는 법지)
제행무상(현상계의 물상이나 사건에는 모두 항상 그러함이 없음이라는 법지)을 설명하는 법에 따라
五蘊이 다 空이라는 방편의 설법을 통해 설명하는 부분으로 시작함을 알 수있다.
"舍利子(사리자)야 관자재 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를 행하시면서 관조하시니 五蘊(오온)이 다 공이며 이는 현상계 일체의 고통과 액운을 제도하노니"
이것은 삼법인 중 인생은 일체개고라는 부처님이 설산 수도 6년 고행을 중단하고
니련자하의 강가에서 보리수나무 아래 다시 자리 잡으시고 수자티라는 처녀에게 소 젖을 공양받으시고는 일주일 만에 중도에 현등각하시고는 인간에게 전해주는 인생에 대한 대 명제이다.
물론 당시 인도에는 이미 업이나 윤회의 고통은 민간에 회자되고 있었지만 부처님처럼 명료하게
인생이 생노병사라는 고통의 반복이자 마땅히 고액이며 심지어는 즐거움마져도 고통이 된다는 "一切皆苦(일체개고)" 이것이 다 空(공)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 모든 苦에서 자유로울수 있을려니 이 우주만물의 무위 유위로 이루어지는 사물이 空하다는 데서 해탈하신 것이다.
이런 경위로 "一切皆苦(일체 개고)"의 현상계를 濟度하신다는 명제는 이 부분에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오온이 다 공이다"라고 하는 말은 삼법인중에서 "諸法無我(제법무아)"의 명제도 포함하고 있으며
물론 諸行無常(제행무상) 또한 포함함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색이 곧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오온가운데 색을 제외한 "수상행식 또한 이와 같다(수상행식 역부여시)"부분을
말뜻대로 풀어 하나 하나 표현을 한다면
受想行識 가운데 제일 먼저 나오는 受(수)을 두고 예를 들어보자.
"수는 곧 공과 다르지않고 공이 수와 다르지 않으니 수가 곧 공이요 공이 곧 수니라(受卽是空 空卽是受)"라는 형식으로 네 번을 반복하여야 할 일을 축약형 문장 구조를 취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는 다음에 따르는 전제를 두고 空함을 반복하고서는 이를 부연설명하는 것은 리듬감을 넣어주기도하며 그야말로 眞空(진공)을 얘기하는 대목이기도하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불증불감"
사리자라는 제자에게
"사리자야 그러므로 이 제법은 공의 모습이다"
"이는 나는 것이 아니며 멸하는 것이 아니며 더럽다 할 것도 아니고 깨끗하다고 할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무엇도 아니며 줄어드는 무엇도 아니니라"
이어서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 안계 내지 무의식계"
이어지는
"무무명 역무 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 노사진 "
게다가
"무 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 소득 고"
여기까지가 오온과 육근 육경이 12처가 되며 육근과 육경에 육식이 보태어져서는 18계를 형성한 그 경계에 미쳐서는 인간과 우주의 현상계를 통털어 대부정을 전제한다.
바로 이제 껏 앞에서 색이 공이기에 색과 공이 다르지 아니하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아니하며 색을 포함한 수,상,행,식마져도 이와 같이 공과 다르지 않고 이들모든 오온이 다 공이 라고 한 것을 순식간에 대 부정으로 문장을 반전하면서 이어지는 뒷 문장에서 공가운데에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다고 하고서는 화자가
청자에게 전달의 의지는 그대로 다 전하고 말아 다른 문장의 반전이나 다른 내용으로 이어져야 할 텐데 이
경에서는 공가운데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 공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은연 중에 육근과 육경 이 둘이 합하여 이루고 있는 12처, 이에 육식을 포함한 18계를 설명하시면서 현상계를 부처님의 법식으로 풀이하는 내용으로 설명을 부연한 듯하다.
이어서 심지어는 부처님께서 중도에 현등각하시고는 생의 큰 비밀인 12연기까지를 여기에 乃至(내지)라는 축약형 접속부사를 써서 불법을 공부 하는 자들이 공부를 하도록 면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는 고집멸도의 사성제와 이를 통한 지(智)도 공을 통해서는 얻을 것이 없으며 그리고 공을 통해서는 얻을 그 무엇도 없음을 밝힌것이다.
그런데 이제 껏 이어온 문장 속에서 대전제 오온이 개공이던 공이 제법이 공상이라고 까지 하여 강조를 하고서는
이 공가운데는 오온 뿐아니라 12처 18계의 삼라만상과 제 현상이 공가운데는 없다고한다.
오온을 개공이라 하여 도(제도하는) 일체 고액하는 비범한 깨달음을 이로써 구제하지 못할것이 하나없는
일체 무여의 경지까지를 현달하고서는 구제한 것이 진정은 아무것도 없다는 금강경의 전제와 동일한 풀이로 볼 수 있는 것인가.
풀기 어려운 부분이다.
금강경의 제 5분의 如理實見(여리실견) 분의 구절을 살펴본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무릇 존재하는 바의 상은 다 이것은 부질없이 헛된것이어서 마치 모든 상이 상이 아님에 곧 여래를 볼 것이라 한 대목이 이 대목과 마주치는 부분이 아닐까.
조심스레 그 뜻을 새겨본다.
여하간 이제껏 큰 화두랄까 큰 명제랄까 한 所息의 空을 설하신것이다.
우리는 반야심경을 독송하다보면 부처님이 화자가 되어 사리자를 통해서 청자에게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시는 관자재보살님의 수도행과 보리살타 즉 보살의 如如行과 삼세 제불들의 발심 아뇩다라삼보리행이
모두 반야바라밀다를 알게 되고 이것이 곧 해탈이요 열반의 지경임을 알 수 있다. 이 세부분은 문장 구조상 단락으로 나누어짐에 리듬감과 문장이 이어지면서 다르지 아니한 도에 이르는 길은 모두 한가지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단어 자체의 반야바라밀다가 도피안의 다다르는 수행임을 구체적 사례로 알려준 일이라 하겠다. 공사상이나 걸거침 없는 보살심의 여여한 모습 삼세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구족되어 이 일이 끝내는 크게 신묘하고 크게 밝으며 크고 위없는 이와 같은 것은 더 같은 것이 없는 지극한 청정심의 주문으로 化하여 지며 이 주문을 지송하며 대미에 가서는 다시 처음의 "도일체개공"에 깨달음을 회자되어지는 것이다.
앞서 말한 주문이 "能除一切苦(능제 일체고)" 능히 일체의 고를 버린다 함은 글자만 바뀐 것이지 뜻은 전혀 변동이 없이 경의 대미에 가서 주문으로서 시종일관 공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 주) 하는 부분에 가서는 반야바라밀다의 수도행이 주문이 되어 짐을 알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이 크고 밝고 위 없고 같음이 없는 유일한 주문을 설하고 나투고자 하게 하기 위해 주문을 설하게 되니 이주문이 바로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인 것이다.
이것이 관자재 보살께서 오온을 공하게 여기시고 제도한 수승의 행을 저 간데없는 우주의 지극한 힘에 연결하는 주문이며 보살이 마음에 걸림이 없이 여여하게 공포도 전도된 망상도 멀리 여윈 채 열반의 지경에 이르러 얻은 수승한 여여함의 마음의 비장처, 그리고 삼세에 걸친 제불들이 얻어 터득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이 깨달아 얻어진 반야바라밀다를 역시 이 주문을 외우며
현상계의 일체개고를 제도하시니 이것이 제행무상에서 얻은 진리이며 바로 제법무아의 삼법인이 될 것이니 바로 제대로된 공사상일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야바라밀다 심경은 이렇게 대 주문을 세번 반복하며 끝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하 반야바라밀다심경 합장 지심귀명례<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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