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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천황봉(5)

눌재상주사랑 2009. 9. 13. 03:29

날씨는 햇살을 받아 이제 양지쪽에서는 하얗고 맑게 개인 대기와 푸른 하늘이 받쳐준다. 산행이 즐겁다.세석평전에서 식사를 하고 나니 산은 기온이 한결 풀렸다. 안개를 벗는 먼 바다가 눈에 가물가물 들기 시작한다. 멀리 바다가 바라다보인다. 아마 사천 이나 광양 쪽이리라. 해안선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바닷가 쪽으로는 어느새부턴가 푸르름을 품에 안듯이 하고 있다. 우리가 서있는 내륙쪽으로  둥글게 마당을 그리듯 파고 들어와 바다는 만(灣)을 짓고있다. 시야에 적셔오는 빛깔이 시리도록 곱다.

 이은상님의 가곡 "가고파"가 문득 생각 난다." 내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눈에 보이고~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노랫말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저 곳쯤은 아닐 런지, 찍어서 바로  마산 앞 바다는 아니어도 바로 이런 모습의 풍광이리라....

 

 장터목에 가까워질수록 산은 점점 높아지고 나무는 반면에 키가 점점 낮아진다. 산과 나무는 한 둥지에 동거하며 산을 오를수록 높이와 나무의 키는 반비례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이 관목만이  주류를 이루어서인지 시야가 더는 막힘이 없다. 먼 주변이 잔잔한 산야로 펼쳐지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다.

 삼신봉에서 연하봉을 오른다. 장터목을 막아선 산. 연하봉의 산세는 이곳 삼신봉 쪽에서는 길다랗고 늘씬하던 산세가 남으로 전진해 나아갈수록 점점 갸름해지는 둣 하다가 갑자기 북쪽 허리에 닿아서는 무를 자른 듯 보이는 단호한 능선, 바위의 그늘진 음영 아래  색깔도 짙푸른 그늘이 뒤덮은 모습 등이 보기에도 한눈에 거칠게 와 닿는다. 그 아래 펼져진 산세를 극복하고 넘어야 비로소 장터목이라한다.

 이미 해는 중천에 솟아 누리에 밝게 퍼지기 시작한다. 능선 코밑에선 먼 산청쪽 산행 길이 어림 잡히고, 앞을 보며 능선으로 오를 때마다 파란 하늘을 바탕으로 눈 꽃이 가지를 벌려 가렸다.  산행이 내리막으로 지쳐질 땐 가지의 모습이 사라지다 다시 나타나는 등의 겨울 경치가 마치 사람을 좇아다니는 듯 느껴진다.
 암릉을 밟고 구비구비 돌고 돌아 쉼없이 나아간다. 대간의 산행에서 겪는 이 지루한 느낌! 이 느낌이 오늘도 늘 우리에게 유장한 인내를 요구할 것이다. 

 산의 포물선을 밟는 듯 하다면 다소 가까운 표현이 될는 지, 저 멀리 아래쪽 펑퍼짐한 고개를 바라보며 내리서듯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딛는다. 가는 곳마다 얼어있는 눈이 비록 얇긴해도 설경인 채 우리를 맞이한다.

 

  많은 인원이 산장 주변에서 개미처럼 드나드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인다. "난향"님은 이런 아름다운 경관에서는 사진만이 추억을 남길 일이라는 듯 회원들마다 사진을 찍어주며 챙긴다. 눈 꽃이 피운 설원과 햇빛이 부서집며 빚어낸 빛나는 설경! 겨울 산에 회원들은 다투어 한장씩 포즈를 취한다. 이곳에서는 "별이"님과 "순이"님이 제일 많이 찍었다.

 

저기 보이는 저 호수는 어디지요? 어느 회원이 무심코 던지는 말로 묻는다. "난향"님이 가르키는 손아래 구비구비 남강의 물길이 감아 나가는 진주가 아스라히 모습을 드러낸다.
"예 저곳이 바로 진양호예요. 논개가 몸을 던진 촉석루도 저기 어름에 있겠지요"

 

장터목에 이르러서는 초행이 아닌 회원들도 몇몇이 되었다. 그 분들은 천왕봉을 그 전에 다녀온 일부 회원들이기에 처음 오르는 회원들의 베낭을 맡아서 휴식을 취하며 벤치 위에 진열하여 놓고 물건을 지킨단다.이분들은 천왕봉까지는 오르지 않는다며 초행으로 오르지 않은 회원들만 다녀오라고 한다. 나는 아무래도 천왕봉 뿐만 아니라 제석단 통천문 남은 코스를 마져 밟아야 할까보다.
 
 "나무사랑"님외에 몇 분에게 베낭을 보관시켜두고 제석단을 향하니 빈 몸으로 멍에를 벗은 황소마냥 걸음이 날아 갈것 같다. 물론 어깨가 의외로 편해지니 뻑적지근한 통증도 찾아오는 듯 하지만 짐을 든 덕분에 날아갈 듯 상쾌함을 느낀다.

 

 자연석과 질서있게 깔아 정갈한 계단을 꾸미고 길을 밧줄과 삼목으로 세워  통로만을 두어 통로외의 평원은 통제 구역으로 가드 라인을 설치하였다. 역시 공단측에서 배려한 생태계 보존 차원에서이리라. 인위적인 구조물이라 생각하면 어색하기도 하지만 자연 생태계와 인간이 다닐 길을 구분하는 한계를 그어서인지 우린 방목장에 자라는 모습으로 군데군데, 벌거벗은 나목이 되어 생선 가시형상으로 뼈만 남아 기묘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에 산행꾼 모두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본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면서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등이 화재를 입어 잔해만 남았다는 어설픈 설명 글귀를 읽으며 이 산의 얽힌 역사를 이 나무에서 읽어 본다.
어떤 이는 내려오면서 예전에 빨치산을 토벌하려고 관에서 고의로 불을 질렀다며 나랏 사람들이 그랬다는 말을 하기 힘들어서 이렇게 둘러댄 말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어느말이 진짜인지는 가릴 수가 없는 노릇...

 

어쨋든  이 산은 문학으로도 이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 김시습의 "금오신화"중 '만복사 저포기'의 무대가 아니었던가. 이 산 어느 곳에서 일어났다 소멸해 갔을 옛 우리 민족의 상흔처럼 반 세기를 넘기고도 그  불에 타고 남은 나목의 형해만이 자연과 더불어 산화되어 가는 산.

 너무 지나친 감상에 젖어감은 아닌가 되돌아본다. 제석단 정상에 피어나는 구름을 보며 걸음을 옮긴다.

봄이면 철쭉이나 진달래가 피어 있을 이 능선을 상상해본다. 그래 봄에 꼭 한번 와야겠다. 진달래가 피어날 무렵 해서.... 제석단을 내려서며 또 작은 봉우리를 밟고 이제 바야흐로 천왕봉 턱 밑에 다가선다. 큰  바위 덩어리를 관통해서 간신히 혈처만 뚫힌 모습을 드러내는 입구!

 

 통천문通天門 !
 쇠 난간과 계단을 제작해 연약한 사람은 바로 다가서기 힘든 산행을 도와 주려고 공단측이 설치한 구조물을 나무삼아 오밀 조밀 드나드는 사람이 무슨 실과처럼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단으로 하늘과 인간 세계를 구분하고 그 곳을 통과해야 천상의 태을 상제를 뵙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큰 바위에 뚫린 요철이 병목처럼 좁고 천장 또한 낮아서, 설익어 도도한 인간의 아상을 굽혀 고개 숙여야 통과 할 수 있는 통천문. 이 문을 통해 천왕봉은 이 산에 든 우리 인간의 마음까지를 엿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숙연히하고 추위에 허술해 진 옷깃이라도 여미어보자. 내려오는 사람에게 양보하고 올라가는 사람을 배려해서 한 사람 내려오면 한 사람 올라가는 이곳이 비로소 인간의 욕망을, 허망한 기운을 조절해주고 다스려주나보다.

 

그래서

지이산 智異山 이던가? 바로 이런 것이 뭇 지혜와는 다르다는 뜻으로 지이라하며 구분지은 것은 아닐까.

자연이 만든 구멍을 간신히 뚫고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도달한다. 찬바람과 함께 노출되는 정상의 하늘을 바라본다

 

 일찌기 상제를 만나는 일은 한 해를 처음 여는 날에 만조 백관을 거느리고  따르는 무리는 멀리 경계 바깥에 두고 그 윗전인 천자만이 천원에 들던 풍습을 상고한다.이제  자연과 천지를 상징하던 태을 상제를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만 백성중의 한 사람들인 우리 회원도 이 산에 든지 이틀째 정오를 기하여 정상을 밟는다.


 천왕봉에서는 그야말로 맑고 맑은 하늘과 때묻지 않은 태고적 산 만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선 사방이 툭 터져 안보이는 곳이 없다.

 멀리 노고단쪽은 관을 쓴 듯 두 봉우리가 자태도 고운채로 반야봉. 그 앞에 삼도봉. 그들 봉우리 뒤로 노고단. 아마 정확한 확인은 되지 않았어도 남원은 휠씬 지나보이는 하늘 끝에 서해 바다가 아닐까하는 말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도 남해쪽 바다는 이제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산청이나 함양까지는 계곳으로 백여리 늘어진 능선이 줄줄이 우리가 서있는 발아래로 꿈틀대며 다가오지 느낌을 받았다.이렇게 우리 모두는 감개무량해서 잠시 말을 잊고서 "와! 와!~"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장터목에서 기다리던 점심은 하산 길이 바빠서 생략했다. 백무동으로 가는 길은 이제 삽시간에 이어지는듯 했지만 이날 하산 또한 대간 길답게 그리 쉽게 산은 우릴 놓아 주지 않는다. 만만찮은 산행 후미에 하산 길은 늦어지기 쉽상이기에 점심도 먹지 않으며 서둘렀지만 선두가 3시 30분,후미는 한 시각 뒤인 4시 30분 일행은 백무동 마을 어귀에서 시간의 끈을 풀었다.
 
 어제는 몸이 좋지않아 산행을 하지못했던 회장님이 백무동에 음식집을 마련해 잡아 놓았나 보다. 참기름이 진짜 참깨를 써서 진쪽이라는 주인집 아저씨 말에 덩달아  '날마다 좋은날'님 연신 칭찬을 한다.

손두부 부침, 도토리묵, 막걸리 소박하고 세련된 음식은 아니지만 시골 인심이 곁들인 나무새와 몇 가지 음식에다 막 내려온 산행 뒤 끝에 가라앉지 않은 흥분된 정취가 어두워오는 백무동 골짜기에 불콰한 술기운으로 흥을 돋우었다. 우리는 일박이일의 산행의 피로를 이렇게 풀었다.어느누구에게도 이틀이나 산을 타고 잠을 설친 얼굴은 찾아볼래도 찾을 수 없는 유쾌한 웃음 소리만이 왁자했다. 하지만 따스한 안주와 술이 몸에 펴지기 시작하고 차에 오르면 역시 산행 뒤 끝 피로는 좋은 보약만큼이나 회원들을 꿈길로 인도하였다.

 

예전엔 백무동의 무자字를 巫로 쓴것을 요즘은 호반 무 武로 표기한다는 동네 그래서 지리산은 정기도 강하기도 하거니와 영험한 산으로 내려왔다. 전국의 무당들이 신 내림을 받아서 그 기운이 쇠할 때쯤 어름해서  한 해에 한번은 반드시 찾는 곳이 이 백무동이란다.어쨌거나 지리산은 아무튼 골짜기 골짜기 선학과 불심을 지니며 문학과 인문에 의기가 살아있는 곳이란 그 이름 못지않은  자태를 느끼고 온 우리다.

 

우리는 이틀에 걸쳐 몸으로 부대끼며 웃고 웃으며,어울려 잠자고 출발하고 또 짐꾸리던 여정을 이제 어깨에서 땅에 내려놓았다. 어제 아픈 몸으로 헤어진 회장님이 몰고 온 봉고와 스타렉스 두대의 차량에 몸을 싣고서 힐끗 뒤를 돌아 본다. 어둠 속 그 곳에 있을 그 큰 덩치가... 웅크린 덩치의 곳에서 이젠 차를 달려 빠져나온다. 뒤이어 나른한 어둠이 우리를 덧씌우자 마자 회원들은 하나같이 피로에 파묻혀 비몽 사몽이다.
이럴때엔 ...어떤 어울리는 가락이 있을까?

누가 한번 완판본 춘향전을 창으로  읊어보면 어떨까? 허스키한 남도 창唱으로 목청을 돋우어본다면....

 

 

....이날 부터 목욕재계 정히 하고

명산승지 찾아 갈제~
 오작교 썩 나서서 좌우 산천 둘너보니~
서북의 교룡산은 술해방을 막어 잇고~
 동으로 난 장임수풀 깊은 고대~
 선원사는 은은히  보이고~

남으로난 지리산이 웅장한 대~
 그 가운데 요천수는 일대 장강벽파되어~
동남으로 둘렀으니~
별류건곤 여기로다~
청림을 더우잡고 산수를 발닿으러 가니 ~
지리산이 여기로다~
반야봉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
명산대천 완연하다 ~
상봉에 단을 모아 제물을 진설하고~
단하에 복지하야 ~천신만고 바랬더니~
산신임의 덕이신지 어제는 오월오일 갑자라~
한 꿈을 얻으니 서기반공하고 오채영롱하더니~
일위 선녀 청학을 타고 오는 데 머리엔 화관이요~


...........월매가 춘향이 얻는 꿈을, 반야봉에 빌어 기뻐하는 모습이 ...
한 마당에 흥건하고 일별 감은 눈에도 삼삼하다....
비몽 사몽 넋두리는 밤길에 끝이없다.  졸음이 눈꺼풀에 드리워져온다.
(그 동안 졸고(拙稿)읽어주시며 격려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면서 ...이만 )

 - 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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