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뭄바이
인도 제1의 경제도시… 주민 55%가 슬럼 거주
관련이슈 : 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2009102900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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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목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마린 드라이브의 활같이 굽은 해안선을 따라, 볼리우드의 최신 개봉 영화를 알리는 입간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 멀리 말라바 힐의 전원주택이 보이고, 해안의 끝자락에 인도의 맨해튼이라는 나리만 포인트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인도지만 가장 인도답지 않은 이곳. 한때 봄베이로도 불렸던 인도 제1의 경제도시 뭄바이의 짧은 소경이다. 누군들 알았을까? 벌레들이 우글대던 이 습지가 오늘날 인도 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르리라는 것을? 16세기 포르투갈령이었던 이곳은 1661년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이 영국의 찰스 2세에게 결혼선물로 들고 가버리며 영국령으로 변신한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영국은 당시 기준으로는 불모지에 불과했던 땅을 훗날의 세계적인 항구로 변신시키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다. 영국은 뭄바이가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인도의 항구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발견했고, 불모지를 천혜의 항구도시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더 이상 아프리카의 희망봉으로 우회하지 않아도 되자 뭄바이의 항구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제 뭄바이는 인도 수출만을 위한 전진기지에서 대영제국 해상 무역의 전진기지로 한 차원 위상이 높아졌다. 뭄바이는 당시 영국령 인도의 수도였던 콜카타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평생 빨래만 하는 도비가트의 사람들. 이들도 뭄바이 슬럼의 거주민들이다.
영국이 남겨놓은 포트 구역의 우아한 근대 건축을 보며 이곳이 인도인지 영국인지 잠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이내 차가운 손을 내미는 거지 아이로부터 여기가 인도임을 각성할 정도로 뭄바이는 런던의 거대한 축소판이다.
물론 뭄바이가 이뤄놓은 그 모든 것이 빛일 수는 없다. 뭄바이의 카말라푸람이라는 지역은 10만명이 넘는 매춘부를 거느린 아시아 최대 규모의 홍등가로, 또 아시아에서 가장 끔찍한 슬럼을 가진 도시라는 오명 또한 뭄바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적당한 데이트 장소가 없는 곳이라, 마린드라이브 둑에는 늘 이런 아베크족들이 몰린다.
인도의 슬럼은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상상의 한계를 종종 넘어서곤 한다. 대체 몇 명이나 그 안에 사는지는 진작에 포기한 상태. 10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센서스에도 이 일대만큼은 추정치가 나올 뿐이니 행정력 자체가 미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금기라는 단어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타고난 떠돌이인 전문 여행가들에게 갈 수 없다는 말처럼 심장을 일렁이게 하는 표현이 있을까? 일찍이 탈레반이 정권을 잡던 2000년대 초. 그저 21세기에 벌어진 종교 혁명의 순간을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파키스탄의 이슬람 인맥을 총동원해서 아프간을 방문했던 나였다.
◇뭄바이 형식의 다문화의 상징. 이란산 조로아스터교 사원.
예닐곱 번쯤 시도했을까. 시도가 실패로 끝날 때마다 시간은 몇 년씩 겹쳐가며 흘러갔고 그러는 사이 여행도 변해갔다. 돈자랑 하기에만 골몰하던 선진국 사람들의 여행 형식은 점차 내가 쓰는 돈이 해당 국가의 현지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쓰나미처럼 휘젓고 다니던 여행 스타일을 벗어나, 현지 문화에 최대한 적은 영향을 미치는 방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뭄바이의 상징, 게이트 웨이 오브 인디아와 타즈 호텔. 뭄바이는 한때 인도 제1의 경제도시를 자랑했던 도시답게 곳곳에 웅장한 자취가 여전하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솔직히 나조차 뭄바이 슬럼에 대해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오고서야, 책임여행의 한 일환으로 뭄바이 슬럼가 방문이 프로그램화된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도의 빈곤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책임 있는 이해를 위해 이런 프로그램은 당연히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서운했다. 치기 어린 시절 무작정 들이댔지만 열리지 않았던 그곳이 프로그램화되어 개방된다는 말은 짝사랑으로 끝났던 첫사랑의 그녀가 갑자기 후덕한 인상의 아줌마가 되어 나타났을 때의 그 허무함이랄까?
뭄바이 최대의 슬럼가인 다라비 슬럼을 방문하기 위한 주의 사항은 꽤 길었다. 사진 촬영 금지 같은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여성들에게는 화장조차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드디어 슬럼의 문이 열렸다. 다라비를 후원하는 비정부기구(NGO)가 대부분의 행사를 물밑 조율했다. 인도를 찬양하는 누구들의 말처럼 그들이 절대적으로 행복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주눅 들어 있지는 않았다. 인구의 55%가 슬럼에 거주한다면, 사실 인도 정부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나무 작대기 4개로 받쳐놓은 천막에 살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저 천막조차 개인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 이 일대를 관리하는 조폭들에 의해 대여만 가능하다고 한다. 의외로 전기는 모두 사용하고 있었는데, 모두 전신주에서 강제로 끌어온 일종의 불법 회선이다. 그러고 보니 인도 전기의 30%가량이 불법 도선에 의한 것이라는 통계를 본 기억이 난다.
사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냄새만큼은 저절로 코를 막게 했고, 나중에는 두통이 몰려올 정도였다. 아이들은 그 환경 속에서도 뛰놀며 연을 날렸다. 남과 비교할 필요 없는, 아니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에서만큼은 행복해보였다.
하늘로 날아가는 연속에서 그들이 꿈꾸고 싶어하는 희망과 탈출을 보았다면 철 지난 신파조인 것일까?
여행작가
〉〉여행정보
뭄바이로 가는 직항편은 대한항공뿐으로 1주일에 2회 운항한다. 현재 다라비 내의 슬럼가를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여행사(Reality Tour and Travel·www.realitytourandtravel.com)에서 취급하는 상품 하나뿐이다. 투어로 이루어지는 수익금 전액은 다라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NGO들의 활동자금으로 사용된다. 사실 이건 볼거리로서 접근할 부분은 아니다. 인도를 여행하며 인도에 대해 애정이 생겼다면, 그때쯤 인도의 속살을 한번 들쳐본다는 심정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
- 기사입력 2009.10.29 (목) 23:22, 최종수정 2009.10.29 (목)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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