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 파리 남서쪽 근교에 있는 작업실로 가기 위해 항상 뫼동에 있는 로댕의 아틀리에, 빌라 데 브리앙 앞을 지나다녔다. 뫼동 언덕에서는 파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앞에는 에펠 탑이 신기루처럼 서 있다.
1887년,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에 전대미문의 철골구조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19세기 프랑스는 철강 생산에 주력한 공업 발전과 함께 산업혁명이 완성된다. 전국에 철도가 놓이고 아프리카 등지의 식민지 개척과 더불어 금융자본이 해외로 진출하였으며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새로운 문명세계가 도래하였다. 신시대의 영광과 불안을 상징하듯 하늘 높이 치솟고 있는 에펠 탑을 로댕도 바라다 보았을 것이다.
탑이 완성되었을 때 흥분한 에펠은 "프랑스는 높이 300m 깃대에 국기를 게양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외쳤다. 그 외침은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물질문명이 파리를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문명세계는 서구인들의 가치체계를 이루고 있던 신과 인간의 관념을 와해시켰다.
에펠 탑이 솟아오르던 무렵, 예술가로서 절정에 다다르고 있던 40대 후반의 로댕은 인간주의 신념을 담은 필생의 역작,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문> 제작에 몰두하고 있었다. 로댕의 초연함은 거기에 있다.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경계선에서 물질문명에 맞서 인간의 의미를 조각으로 표현하려 했던 로댕은 마지막 인본주의자의 길을 택한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신곡>의 대서사시를 통해 이루어져야 했다. 단테가 기록한 것과 같이 "탄식과 울음소리와 비통한 외침소리가 별도 없는 하늘에 메아리치고 있는" 세계, 수많은 인간들이 뱀처럼 얽혀 저마다의 죄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지옥에서 로댕은 인간의 원형을 찾는다.
"육체는 영혼이다"고 한 릴케의 말처럼, 로댕은 고뇌와 욕망에 꿈틀거리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육체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구현하려 했다. 이상화한 도식적 인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피와 살과 영혼을 가진 생생한 사람,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사랑의 대상이자 목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을 사실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로댕은 <지옥문> 상단에 단테의 초상을 배치하였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렇게 탄생한다. 지옥의 맨 위에서 깊이 머리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시인 단테의 날카롭고 깡마른 금욕적 모습과 차이가 있다.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로댕은 거친 근육의 단테를 원했다. 근육을 애써 잠재우며 혈관을 질주하는 수성(獸性)을 억누르고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표시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로댕은 신성(神性)의 관념을 석고 덩어리 속에 각인시킨다.
물질문화에 맞서 정신문화의 가치를 지키려 했던 뫼동 언덕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처럼 이제 신화로 남았다. 한 조각가의 분투를 기록하고 있는 그 언덕은 인간의 의미가 갈수록 궁색해지는 속도와 경쟁 사회에 더욱 공명을 일으킨다. 어떠한 시대에도 인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확인시켜 주는 까닭이다.
유학 시절, 뫼동 언덕을 넘을 때마다 느끼던 거장의 감동을 곧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마음이 설렌다. 인간의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37년 동안이나 <지옥문> 제작에 몰두했던 마지막 인본주의자 로댕. 그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이렇게 역설한다. "중요한 것은 감동하는 것, 사랑하는 것, 희망을 갖는 것, 전율하는 것, 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