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나조각의 조형세계그림으로 꽃피우다 | ||
[아프리카 화첩기행] ⑧아프리카 미술의 희망 하라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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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발을 내딛자마자 생각을 바꾸게 된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릴 정도로 도시 환경이 쾌적하기 때문이다. 9∼10월이 되면 자카란다 가로수의 보라색 꽃이 온 도시를 덮어 환상의 마을을 연출한다.
땅에 떨어진 보라색 꽃은 마치 화폭에 점점이 찍어 놓은 붓질 자국 같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말끔한 옷차림은 여느 서방도시 못지않다. 여기가 아프리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온은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을 연상시킨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비행기로 3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하라레 공항엔 쇼나 조각의 나라답게 돌조각 조형물이 곳곳에 눈에 띈다. 자연물(돌)을 최소한도로 손질해 만들어낸 조각품들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하라레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짐바브웨 국립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는 하라레 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으로 미술인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그동안 테마는 주로 ‘과거의 탐색을 통한 미래와의 손잡기’였다. 요즘 예술이 더 이상 삶과 유리되지 않듯이 아프리카미술은 예전부터 그래왔다. 본격적인 아프리카 현대미술은 아프리카인들이 서구 유학을 통하거나 인도 등 해외출신 작가들이 아프리카에 정착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이 땅을 풀어내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라레 비엔날레에선 그런 성과물들을 볼 수 있다.
평면에 3차원 공간을 구현하는 인도 출신 타코르 파텔(Thakor Patel)은 쇼나 돌조각의 조형세계를 평면회화로 풀어내 관심을 끌고 있는 작가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이를 통해 ‘인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인도식이나 아프리카식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다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녹여내면 그만이다. 짐바브웨에서 그리스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헬렌 리에로스(Helen Lieros)는 짐바브웨와 그리스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다. 특히 추상과 원색의 버무림은 일품이다. 모잠비크 현대미술의 상징인 마란가타나 발렌테 응웬야(Malangatana Valente Ngwenya)도 하라레 비엔날레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는 상징과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국가적 폭력과 개인이 타인에게 저지른 폭력을 다뤘다. 그의 작품 중에 서로의 눈을 가까이서 응시하는 얼굴과 붉은 눈의 격노한 형상은 압권이다. 하나의 그림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헤어짐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녹아 있는 듯하다. 내셔널갤러리에 도착한 날이 마침 휴관일이라 아쉽게 돌아서려는데 70대쯤으로 보이는 오스트리아인 수석 큐레이터 에빌리아 윈터 어빙이 몸소 나와 안내를 자청했다. 조금은 귀찮을 법도 한데 먼 데서 온 손님이라며 잠긴 전시공간들을 일일이 손수 열어 보여주었다. 진정한 프로를 아프리카에서 본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서야 시내 변두리에 위치한 롯지에 짐을 풀었다. 주변마을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 들었던 그 소리다. 먼곳을 돌아 귀향한 영혼을 위무하는 소리 같다. 모처럼의 객수에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아프리카 작가들의 사적인 공간이 보고 싶어서다. 짐바브웨인 가이드를 앞세워 부유층이 주로 사는 시내 외곽에 위치한 주택가를 찾았다. 다비드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화가의 집은 넒은 정원을 갖춘 제법 큰 규모였다. 작업실과 살림집을 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 형편에선 대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앞엔 중고 벤츠승용차가 세워져 있다. 가이드는 외국에 작품을 파는 유망한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림 값은 평균적으로 한국에 비해 10∼40% 수준이지만 미국 달러를 만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잘나가는 작가들을 빰친다. 미국 달러는 현지 암시장에서 공식 환율보다 최고 10배 이상 값을 쳐준다. 웬만큼 위치를 확보한 작가들은 작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란다. 정작 다비드의 작품도 한 갤러리에서 전시 중에 있어 구경도 못했다. 하라레 시내 갤러리들은 주로 백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30대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델타갤러리도 그 중 하나다. 쇼나 조각의 전통을 그림에 수용해 짐바브웨 회화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 갤러리 주인이 사전 허락이 없었다는 이유로 흑인 가이드를 문 앞에서 막아서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흑인불신의 식민주의 잔재다. 1980년대 초 짐바브웨로 온 인도 출신 작가 타코르 파텔의 작품도 델타갤러리에서 볼 수 있었다. 사하라 이남의 최대 석조문명인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보기 위해 하라레에서 5시간을 달려 마스빙고로 이동했다. 길가엔 인근 쇼나족 마을에서 대량 생산된 쇼나 조각을 파는 노점들이 지천이다. 차로 한 시간을 더 달리니 야트막한 바위로 이뤄진 산자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11세기쯤 쇼나왕국의 궁전이 위치했던 곳이다. 짐바브웨라는 국가명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쌓은 돌과 바위의 조화는 쇼나 조각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멀리서 보면 자연물 같다.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곳엔 200여명의 왕의 여자들이 사는 거처가 있다. 반경 300m쯤 되는 공간은 5m 두께의 돌담이 11m 높이로 둘러쳐져 있다. 그 한켠엔 남성의 심벌인 돌탑이 우뚝 서 있다. 바로 ‘그레이트 짐바브웨’다. 힘의 상징이 여성 거처에 있다는 것은 모계사회 전통을 엿보게 해준다. 산 위 궁전엔 확성기 역할을 하는 바위 동굴이 있다. 산 아래 왕비거처와 의사소통의 구실을 했다는 것이 쇼나족 가이드 설명이다. 왕 거처 옆엔 왕의 누이들이 살았다. 모계사회의 전통에 따라 왕을 조언해 주기 위해서다. 왕은 사실상 여성에 의해 통치된 셈이다. 초원의 사자들처럼. 산 아래 왕의 여인들은 첫째 왕비의 선택에 따라 왕을 시중들 수 있었다. 왕은 자신이 원하는 여인을 고를 수가 없었다. 왕은 첫 번째 왕비의 눈치를 보며 바위 동굴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애달프게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하라레(짐바브웨)=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
2007.03.19 (월) 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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