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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9> 이태리 와인의 숙성력을 증명하다-알

눌재 2010. 6. 10. 02:47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9> 이태리 와인의 숙성력을 증명하다-알프스가 잉태하는 ‘네비올로’ 와인<세계일보>
넘실대는 장미香 그리고 짙은 타닌‘이태리 와인의 왕’ 바롤로의 본향
로에로… 바르바레스코… 바롤로…
부르고뉴 레드처럼 우아하고 여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오래두어도 변치않는 연인같아
  •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슬며시 신발을 꺼냈다. 먼지를 털어 내며 끈을 질끈 묶고는 둥근 몸매를 이리 저리 돌려 보았다. 한 경기장에서 친선 축구 경기가 열렸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 위치한 이곳은 알프스의 마지막 자락들로 이루어진 랑게 지역에 속해 있다. 이 축구장은 랑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기에, 산소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말을 같이 들었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 즉시 남아공월드컵에서 뛸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롤로를 만드는 노벨로는 일 년 내내 알프스 빙하에 의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경기가 벌어진 이 곳은 ‘라 모라’마을로 네비올로 품종을 주로 재배한다. 이곳 와인메이커들과 국제 와인저널리스트들간의 축구 시합은 육중한 몸매 탓에 월드컵 같은 기술은 없었지만, 안간 힘을 쓰며 공을 차지하려는 의지는 대단했다. 아주 오랜만에 축구화를 신고 인조잔디 위에서 흠뻑 땀을 흘린 후 선수들은 지역에서 나오는 스파클링 와인, 즉 ‘스푸만테’ 잔을 돌리며 친선을 다졌다. 모두 경기력이 저조한 것은 세월이나 몸매가 아니라 산소 부족이라며 껄껄거렸다. 해발 600m에서 스푸만테의 거품과 함께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비올로 분야의 탁월한 과학자인 토리노 대학의 식물바이러스 연구소 안나 슈나이더 박사는 “네비올로가 랑게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아직 학문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네비올로를 가장 많이 키우는 곳은 분명 랑게 지역이며, 여러 마을 중에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그리고 로에로가 유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네비올로는 알프스 끝자락이 똬리를 틀고 감싸는 모양으로 펼쳐진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주로 분포하는 품종이며,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글로벌 품종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시종일관 자세한 통계자료를 언급하며 진행된 네비올로 연구 결과 발표는 식물학이나 유전학 전공자가 아닌 와인저널리스트들의 관심을 붙드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는 “전세계 네비올로의 90%가 알프스 아래에서 재배되며, 그 중의 90%가 피에몬테에서 재배된다”고 말했다. 바롤로 양조장 ‘주세페 리날리(Giuseppe Rinaldi)’의 마르타는 “슈나이더 박사의 강의는 대학 시절 명강의였다”고 옛일을 추억했다. 

    ◇베르두노 마을의 대표적인 바롤로 와인들. 1968년 와인도 여전히 맛이 살아 있어 네비올로의 오랜 숙성력을 느낄 수 있다.
    발표가 있었던 곳은 피에몬테 지방의 소도시 알바. 피에몬테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원이 있었던 곳이며, 알바는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이 거래되는 중심지다. 사실 알바에는 전세계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초콜릿 ‘페레로’의 본사가 있지만, 그다지 알려지진 않았다. 이탈리아 와인의 최고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곳에서 ‘네비올로 프리마(Nebbiolo Prima)’라는 와인 전시회가 열렸다.

    네비올로의 특징은 동화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막내가 만든 벽돌집 같다. 아주 단단하고 견고한 타닌으로 인해 입맛이 뻣뻣하고 텁텁하다. 특히 네비올로의 강성은 바롤로에서 분명해진다. 영국의 와인 거래상 마이클 가너가 지은 어떤 저서의 제목처럼 바롤로는 장미와 타르가 가득한 와인이다. 다시 말하면 바롤로는 장미꽃 넝쿨 우거진 벽돌집이 연상되는 와인이다. 장미향기가 넘실거리며 짙은 타르의 복합적인 향취가 난다. 투명한 루비 색이라서 부르고뉴 레드처럼 우아하고 여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엄청난 타닌이 숨어 있어 강력한 입맛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장기 숙성용 와인이 바로 바롤로의 특징이다. 이에 비해서 바르바레스코는 비슷한 토양적 환경을 지녔지만, 바롤로보다 강가에 더 가깝고 그 미세 기후의 영향으로 좀 더 부드러운 면모를 지닌다. 하지만 둘을 마시면서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눈을 감고 마실 경우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구분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로에로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이웃이긴 한데, 그 사이로 흐르는 강에 의해 나뉘어져서 사실 그리 이름이 나 있지는 않다. 이 점이 로에로 와인이 넘어야 할 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로에로 지역은 모래 토양이 많아 질감이 더 풍부하고 향기도 더 미세하지만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처럼 힘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로에로, 바르바레스코, 바롤로 순서로 와인을 시음하고, 숙성력도 그 순서대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와인을 항상 마지막에 마신다면 바롤로가 항상 그 자리를 차지하므로 바롤로가 소비자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다.

    같은 네비올로로 와인을 만들지만 로에로 지역에서 만들면 와인 이름이 로에로, 바롤로에서 만들면 바롤로가 된다. 이는 유럽의 일반적인 명명법으로 품종보다는 지역이름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지역 전체의 이미지와 부가가치 제고를 도모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의 결정판이 샴페인인 것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베페 마스카렐로는 아버지와 함께 전통적인 대형 오크통에서 바롤로를 숙성한다.
    바롤로를 만드는 방법은 현재와 과거가 좀 다르다. 과거에는 여러 밭의 와인을 섞어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특정한 밭의 포도만을 골라 따로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전통과 혁신은 늘 있는 법. 바롤로 생산자 중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 혹은 그 이전 세대의 양조법을 그대로 따르는 이가 있는 반면 혁신적인 방법으로 품질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구분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으로 결국 어떤 게 좋으냐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바롤리스타(Barolist), 즉 철저한 전통주의자로 알려진 ‘바르톨로 마스카렐로(Bartolo Mascarello)’의 마리아 테레시아는 여러 곳의 포도를 수확해서 한 가지 바롤로를 만든다. 양조장 자코모 페노키오는 밭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라벨을 구분해서 만든다. ‘바일로’ 밭 와인은 여성들에게 권하면 최고로 치는 바롤로다. 세밀하고 우아한 터치가 있기 때문이다. ‘부시아’는 단단한 뚝심이 느껴지는 힘찬 성격이다. ‘카누비’는 둘의 성격이 뭉쳐진 복합적인 느낌의 와인이다.

    한편 바롤로의 값은 생산자별로 차이가 많다. 마우로 마스카렐로(Mauro Mascarello)의 주세페는 “바롤로는 지역 가운데 미세 기후를 가진 좋은 밭에서만 재배되므로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와인이라기 보다는 우리 땅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와인”이라고 했다. 그의 바롤로는 일반 바롤로보다 배 이상 비싸지만 찾는 이들이 많다.

    알바는 세계적인 기업 두 곳을 품고 있어 주민들의 지갑이 두툼하다.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유하다. 초콜릿 회사뿐 아니라 트랙전문 업체 몬도도 알바에 있다. 몬도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주경기장에 탄성고무 시트 트랙을 깔 예정이다.

    피에몬테는 토스카나와 다르다. 알프스에서 치즈를 만들고, 스위스와 프랑스가 가깝다.

    피에몬테 사투리는 프랑스어와 비슷하며 독일어의 움라우트도 쓴다.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한다는 독일인들은 가을이 되면 피에몬테로 몰려 온다. 바롤로와 함께 지역 특산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다. 특히 송로버섯이 제철 음식이라 알바의 골목은 그 버섯 향기로 가득 찬다. 와인과 음식의 향연, 거기다 눈 쌓인 알프스가 일년 내내 병풍처럼 감싸는 절경이 있는 피에몬테로 떠나보자. 바롤로의 뒷맛처럼 여행의 추억이 오래 갈 것이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추천

    레스토랑 라챠우델토르나벤토(http://www.laciaudeltornavento.it/)

    ◇레스토랑 ‘라챠우델토르나벤토’의 지하 셀러는 레스토랑의 경쟁력이 음식 뿐 아니라 와인에도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그 곳에 가면 적어도 네 번 놀란다. 첫째는 지하 셀러. 3만병이 넘는 와인이 주인을 기다린다. 좀 더 좋은 와인은 은행 대여금고 같은 큼지막한 철문 안에 저장한다. 로마네 콩티, 페트뤼스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둘째는 탁 트인 전망의 잔디밭이다. 굽이치는 랑게 구릉을 한 눈에 조망할수 있다. 셋째로는 격조 있는 실내 분위기다.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에 기분이 좋아진다. 대접을 잘 받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으로 맛이다. 랑게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많다. 어떤 메뉴를 골라도 맛이 으뜸이다. 맛있는 음식을 보기 좋게 내어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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