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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우리역사] <5> 바다와 육지의 경계, 갯벌

눌재 2010. 6. 23. 03:38
[바다에서 건진 우리역사] <5> 바다와 육지의 경계, 갯벌<세계일보>
  • 입력 2010.06.22 (화) 23:01, 수정 2010.06.21 (월) 23:01
수중고고학 귀중한 유적·유물 보고… ‘살아있는 박물관’
  • 밀물이 들면 바닷속이 되었다가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갯벌. 바닷속 유물과 유적이 주요 대상인 수중 고고학에서는 갯벌 역시 중요한 유물 분포지역이다. 우리나라 갯벌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자연 상태의 갯벌이 많이 남아 있다. 갯벌은 풍족한 자원의 공급처이자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다.

    ◇2005년 전남 신안 안좌도선 발굴현장 모습. 갯벌에 묻혀 있는 선박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현장에 나무다리를 설치하는 것으로 발굴이시작됐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국토가 좁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갯벌을 간척했다. 인류의 자연유산을 보호하자는 국제적인 운동이 확산되면서 간척사업이 주춤하고 있으나 아직 우리 갯벌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개발과 간척사업은 자연계의 법칙을 위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소중한 문화유산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갯벌 속에 문화재가 남게 되는 이유는 두꺼운 퇴적층이 이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은 갯벌 속의 진귀한 유물들의 특이한 현상을 관찰하고, 2차 파괴에 이르지 않도록 신중하게 문화재 발굴 작업을 수행한다.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바다는 이처럼 귀중한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영산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영산강 하구언이 설치된 후 해안 퇴적물이 점차 씻겨 내려가며 갯벌 속에 묻혔던 고려시대 선박이 1995년 발견됐다. 목포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달리도에서다. 1983년 발굴된 완도선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발견된 고려시대 선박이다. 무엇을 싣고 어디로 가던 배였을까? 여기에서는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등 과학적 분석을 통해 침몰선은 대략 14세기 후반기 것 임을 밝혀냈다..

    ◇2004년 원산도에서 출토된 유물. 비록 단 한점의 완형도 없었지만, 고려청자로 눈이 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비색을 띠고 있다. 갯벌이 유물의 손상을 막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보다 앞서 1991년 전남 진도 해안에서도 14세기경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대형 통나무배가 발굴됐다. 선체는 간척지 배수로에 묻혀있었는데 이 역시 갯벌 덕분에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로 출토됐다.

    자연계의 질서는 바다에서도 엄중하다. 갯벌의 배 좀벌레는 떠 있는 목선들에도 피해를 주지만 갯벌에 남겨진 목재도 흔적없이 먹어 치운다. 그러나 이들과 공존하는 갯벌 속에는 문화재를 지켜주는 비밀이 있다. 수백 년 동안 고대 목선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산소가 통하지 않는 밀폐된 갯벌 속의 환경 때문이다.

    갯벌 속의 문화재 발굴은 많은 부담을 안기 마련이다. 발굴조사 과정은 대체로 육상과 대동소이한 과정을 거치지만 조간대에 위치한 갯벌의 특성상 매일 두 번씩 교차하는 밀물과 썰물, 그리고 일정하지 않은 시간 등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과정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갯벌을 걷어내는 작업은 경험 많은 숙련자의 몫이다. 토양 층위조사가 필요로 한 경우 플라스틱 관을 박아 그 속의 퇴적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거친 파도는 발굴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때문에 발굴현장은 매일 새로운 모습이다. 어제와 오늘의 갯벌 모습은 다르다. 물의 위치에 따라 수중발굴이 되기도 하고, 육상발굴이 되기도 한다.

    갯벌에 묻혀 있는 배를 건져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밀려온 바닷물에 쫓겨 허겁지겁 나와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때도 조사원들의 안전보다는 행여나 유물이 손상될까 걱정돼 가슴까지 차오르는 바닷물 속에서 유물을 안전하게 놓고 나오기 위한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조사원의 물건이 없어지기도 하고, 카메라가 물에 잠기는 것은 다반사였다. 겨우 뭍으로 나온 조사단은 바닷물에 잠겼던 조사도구들을 수돗물로 씻어내고 말리는 작업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숙소의 헤어드라이기는 조사원의 미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사도구를 건조하는 기구로 변하기 일쑤다.

    이철한 국립해양문화재硏 학예연구관
    이보다 더 어려운 점은 노출된 유물의 신속한 조치다. 오랜 시간 갯벌 속에 묻혀 있던 목재의 상태도 매우 연약해 밀물이 들어오기 전 포장과 운송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1995년 달리도 발굴 당시 갯벌에 묻혀 있던 선박을 노출시킨 후 안전한 운송을 위해 포장을 마친 시점이었다. 이때도 시간을 급박하게 다퉈 일을 처리했지만, 밀려오는 바닷물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차오르는 물은 순식간에 선박을 띄워버리고 말았다. 조사원들은 신상의 안전보다는 유물 손상을 염려해 포장된 선체를 몸으로 눌러가며 크레인의 도착을 기다렸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한 크레인으로 선체 하나하나를 옮겨 무사할 수 있었다. 필자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갯벌에서 발견되는 문화재들은 대부분 난파된 배에 실린 화물들이다. 침몰한 선체는 갯벌 속으로 묻히는 과정 중 매우 오랜 시간을 경과해야만 이른바 비산소층에 안착된다. 그러나 수시로 밀어 닥치는 파도는 유물들을 한꺼번에 부숴버리기도 한다.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보령 원산도 유물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한점도 남기지 않고 모두 파손된 채 발견됐다. 거친 파도가 주요인이었다. 원산도 유물이 처음 발견됐을 때 파편을 보면서 조사단은 국보급 유물이 얼마나 쏟아져 나올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물이 들면 끊임없는 잠수작업을 통해 수중발굴을 진행했고, 갯벌이 드러나는 썰물 때에는 노출된 파편을 수습했다. 그런데 발굴이 마무리될 때까지 단 한 점의 원형도 찾을 수 없어 허탈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갯벌에 묻힌 원산도 출토 도자기가 찬란한 색이나 문양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점이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현재까지 발견된 갯벌 속의 선박들은 11세기 초부터 14세기 후반에 이르는 고려시대 선박들이다. 고려 선박은 두터운 선체와 치밀한 구조 때문에 오랜 기간 잘 보전된 채 갯벌 속에 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발굴된 몇 척의 고려 선은 밑판 연결 구조 부분이 조금 다를 뿐 모두 같은 양상을 취하고 있다. 우리 고대 전통 선박은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오로지 나무못만을 이용해 건조한 특징을 갖고 있으며, 주재료는 대부분 소나무다.

    갯벌은 8000년 이상 긴 세월 동안 자연 현상이 상호작용을 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갯벌에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 주듯 다양한 해양활동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서남해안 갯벌은 위대한 자연유산일 뿐 아니라 문화재의 보고인 셈이다. 갯벌이 사라지는 날 우리 해양의 역사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갯벌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이철한 국립해양문화재硏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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