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 <15> 독일 와인<세계일보>
- 입력 2010.09.01 (수) 22:05, 수정 2010.09.02 (목) 10:15
-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괴테·바그너·브람스… 무지개 뜬 초원서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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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바그너, 브람스가 자주 찾아 묵었던 비스바덴은 ‘초원의 온천’이란 뜻을 가진 독일의 대표적인 온천도시이다. 브람스는 여기서 교향곡 3번을 작곡했다고 한다. 비가 갠 뒤 풍경을 살피며 렌즈를 바꾸는 사이에 무지개가 떴다.
금세 활짝 피더니 그 옆으로 하나를 더 복제했다. 초원에 무지개가 뜨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스바덴은 프랑크푸르트 광역시에 속하니 그런 대도시에서 쌍무지개가 뜨는 광경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항상 놀라운 법이어서 인근 라인강 근처에서는 온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최고 품질의 포도가 자란다. 가파른 언덕배기와 완만하거나 평탄한 지면에서 독일 화이트의 자랑인 리슬링(Riesling)이 자라고, 레드 품종 슈페트부르군더(Spatburgunder)가 자란다. 이 복잡한 이름은 프랑스 피노 누아의 독일식 표현으로, 부르고뉴 외에 최고의 피노 누아를 만나려면 여기로 와야 할 정도로 품질 수준이 높다.
◇네로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스바덴 시가에서 쌍무지개의 공연을 관람했다. 비스바덴은 와인 원료인 품질 좋은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도시로 괴테, 바그너, 브람스도 자주 찾던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쑥대밭이 된 인근 도시와는 달리 비스바덴의 전쟁 피해는 작았다. 그 이유가 부유했던 러시아 주민들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렇다고 골목을 돌 때마다 만나는 벤츠나 BMW에 놀랄 필요는 없다. 여긴 독일이니까.
하여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따낸 바덴바덴의 기적처럼 오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비스바덴의 기적임에 틀림없다. 이 도시에 들러 신경통의 기적을 바란다면 코흐브룬넨으로 가야 한다. 이는 시청광장에 있는 온천수 맛보는 곳으로, 온천수가 24시간 철철 흘러 넘친다. 하루 한 잔을 권장하는데, 지붕이 없는 온천수는 식용이 아니니 명심하자.
◇라인가우 지역의 리슬링 1909년산. 색깔을 보면 아직도 청춘이다. 리슬링의 화려한 아로마 못지않게 끈덕진 숙성력이 매력이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처럼 땅속의 에너지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리슬링은 독일의 대표 품종이지만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부르고뉴의 샤르도네보다 휠씬 투명하게 테루아를 드러내는 리슬링은 20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혼란을 겪은 후에 리슬링의 영화는 사라졌다.
최근 들어 더욱 인정받는 리슬링의 탁월함을 통해 독일 와인 당국은 ‘리슬링 르네상스’란 표현을 즐긴다. 과거로 회귀하고픈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비스바덴의 중심 나사우어 호프 호텔. 이 호텔 맞은 편에 쿠어하우스가 있다.
그런데도 왜 독일 와인이 유명하지 않을까. 한국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2010년 상반기 수입금액 실적을 보면 독일 와인의 시장 점유율은 2.5%에 불과하다. 빼어난 품질과 개성 만점의 테루아를 지닌 독일 와인이 무명인 이유는 독일 내부에 있다.
독일 소비자들의 왕성한 수요로 인해 고급 와인의 70∼80%가 자체 소비된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눈에 자주 나타나야 품질이 확인되는데, 그럴 겨를이 없는 것이다. 특히 ‘천국의 동산’이란 뜻을 가진 파라다이스 가르텐(Paradiesgarten) 밭의 와인을 맛보고 싶어 불 양조장에 물어보니 독일 상인과 독점 계약해서 와인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브의 환생’이란 테마를 스토리텔링화해서 큰 인기를 누리는 그 와인은 그림의 떡이다.
◇진짜 금으로 덮혀있는 러시아교회는 네로산으로 오르는 중간에 볼 수 있다.
독일은 특히 양조장 너른 마당에 나무 식탁을 착착 차려놓고 푸짐한 음식과 함께 와인을 판매하는 게 전통이다. 소시지와 양배추 절임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
양조장 안주인이 주로 손님을 맞이한다. 남편은 와인을 만들기에 정신이 없는 데다 아무래도 친절함에서 부인이 나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보르도 샤토는 이 모든 일들을 직원들이 하지만, 독일 양조장은 보통 가족들이 다 한다.
비스바덴의 8월은 와인전문가에게는 최고의 계절이다. 9월부터 출시하는 와인들을 대거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옥석을 가린 와인만 대령하니 기대가 크다. 황제가 마련했던 대극장이자 카지노인 쿠어하우스 측면 건물에 마련된 시음회는 매년 독일양조가들의 단체인 VDP(www.vdp.de)가 주관한다.
오랜 기간 공론화를 거쳐 확정된 독일 최고의 포도밭에서 나온 단일 포도밭 와인만이 준비된다. 찐빵에서 팥소만 제공되는 것과 같은 비유가 가능하겠다. 그러니 시음자들은 바짝 정신을 차려 최대한 집중하려 한다. 여기서 맛보는 것이 거의 마지막인 와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리슬링의 매력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1909 리슬링’을 며칠 전에 시음했다. 놀라운 것은 아직 와인의 상태라는 점이다. 식초가 아니었다. 수십명의 전문가들이 잔에 연방 코를 박고 있었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데 말이다.
코를 대니 바로 익은 리슬링에서 석유 냄새가 풍겼다. 싱싱하진 않지만 맛이 간 건 분명 아니다. 산화됐지만 화이트 특유의 긴장감 있는 향기가 남아 있어 리슬링의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리슬링의 힘은 백 년을 가니 앞으로 독일 리슬링이 과연 르네상스를 향유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 추천 레스토랑
<엔테(www.nassauer-hof.de/go/ente)>
◇레스토랑 엔테는 복층 구조이며, 날아다니는 오리를 위해 천정에 하늘을 그렸다. 지하에 굉장한 와인셀러가 있다.
파리 유명 레스토랑들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 이 오리 요리는 기름을 쫙 뺀 후에 껍질이 붙은 살점을 가지런히 접시에 담아낸다. 예약하지 않고 즉석에서 주문하면 준비할 수 없을지 모르니 미리 예약하기를 권한다. 이 요리에 그리 달지 않은 리슬링을 곁들이면 좋다. 슈페트부르군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슐랭 별 한 개의 고급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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