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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4> 칠레 와인행사

눌재 2011. 6. 28. 19:06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4> 칠레 와인행사<세계일보>
한식과 곁들인 포도주 성찬에 절로 “살루”
  • 지구 반대편 나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한 와인행사가 뜨거운 열기 속에 폐막을 알리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심사위원들은 참가한 양조장들과 함께 모두들 어떤 와인이 입상했을까 궁금해하며, 연회장 복도에서 만찬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천장에서 내려진 색동 이미지들은 미세한 바람으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마치 내빈들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이 활기차게 보였다. 태극 무늬였다. 만찬은 한식이었다. 이날 행사의 주최는 주칠레 한국대사관이었다.

    ◇주칠레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한국의 밤’행사 모습.
    # 한식과 맛 조화를 이뤄가는 지구 반대편의 와인


    대사관의 적극적인 홍보와 국내 대표기업들의 활발한 사업 활동으로 한국 이미지는 상당히 고양되어 있다.

    “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 와인은 필수적인 소통 수단”이라 말하는 LG전자의 박재유 법인장은 이번 행사를 후원한 것에 만족해하면서 브랜드 홍보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평했다.

    ◇유기농 양조장으로 이름난 에밀리아나(Emiliana)의 알파카들은 잡초를 뜯어먹고 배설함으로써 유기농을 구현해 낸다.
    행사를 흔쾌히 주관하고 지원한 임창순 주칠레 대사는 “한국 가전 3사의 시장 점유율은 품목별로 70%에 육박하며, 현대자동차는 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박 법인장은 “늘어난 실적 덕분에 이제 지역사회 공헌을 더 높일 수 있게 되었다”며 “올 초에 발생한 지진 피해 구호를 위해서도 성금을 기부했다”고 말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 꿈을 주는 사회사업에 국내 기업이 적극 나서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2010남아공월드컵 기간 중에는 현대자동차가 마련한 옥외천막 아래로 시민 2000여명이 몰려들어 지진 피해의 시름을 달랬다.

    그들의 국목인 아라우카리나처럼 길기만 한 칠레는 지형의 열악함이 가난으로 자동 연결되지 않도록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미 그들의 항공기 란(LAN)은 라틴아메리카를 석권하고 있고, 쇼핑산업 역시 인근 국가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와인 수출도 성장세이며, 대표 와인숍 몬도델비노 역시 남미 최고 규모를 자랑한다. 깨끗한 업무처리로 유명한 칠레 경찰학교에는 남미 경찰관들이 매년 사례 연구를 하기 위해 몰려든다.

    관계는 먹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폐막 디너의 메뉴는 이랬다. 백김치와 무채에는 깔끔한 신맛이 도는 칠레의 소비뇽 블랑이 낫고, 전채로 마련된 빈대떡과 그 위의 얹어진 삶은 해산물들은 샤르도네랑 잘 어울렸다.

    메인 요리로 나온 뼈 붙은 갈비는 칠레의 자존심 카르미네르와 조화로웠다. 고기 선정이 좋았으며 부드럽고도 연하지만, 육즙이 많은 갈비 부위를 한 입 물면 스파이시하면서도 진한 카르미네르가 고기 맛을 살려주며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많은 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보르도 라피트 로쉴드가 투자한 양조장 로스 바스코스(Los Vascos)의 후아소.
    성대한 잔치 이면에는 고달픈 노동이 응당 따르는 법. 정작 음식을 책임진 두 사람의 한국인 요리사는 그날의 찬사와 칭찬을 뒤로 하고 “아주 어렵사리 행사를 준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가 마무리될 무렵 연단에 올라 갈채란 갈채는 다 받았지만, 소감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에는 “정말 힘들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무엇이 힘들었을까. 어찌 보면 한식의 국제화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우선 두 사람은 칠레가 어떤 나라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칠레는 세계와 담을 쌓고 있는 특이하고도 특별한 지형이라서 과일이나 채소, 씨 등의 반입이 대단히 엄격하다. 약식을 위한 말린 대추, 수정과를 위한 잣 등을 세관 검사 시에 모두 자리에 놓아두어야 했다. 칠레는 여행객이 입국 세관을 통과할 때 소지품과 여행 가방을 전수 검사한다.

    ◇양조장 테라마테르(Terramater)의 대규모 외부 양조시설.
    아예 모두를 스캐닝해서 후환을 남기지 않는다. 세 번 갈아탄 비행 시간만 26시간이라고 해도 하나도 안 통한다. 최고의 음식은 최고의 재료에서 시작되건만 이들은 출발부터 불리했다.

    역경을 헤쳐나가는 데 탁월한 한국인은 이럴 때에도 예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대추를 빼앗겼지만 대신에 무화과나 자두로 약식을 매력적으로 탄생시켰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갈수록 맛이 깊어지는 게 발효음식의 비밀이라서 행사 막바지에는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갔다. 부족한 재료로 만든 김치였지만 행사 개막일보다 갈라 디너 때의 김치 맛은 한결 좋아졌다. 자칭 김치 마니아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와인 수입상 알렉스는 “김치 맛이 처음보다 훨씬 깊어졌다”고 말했다. 

    칠레와인 쌍두마차 칠레 와인의 대표주자 콘차이토로의 두 주역. 와인메이커 마르셀로 파파(위)와 아시아담당 사장 크리스티안 로페스. 이들이 들고 있는 ‘카시예로 디아블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공동마케팅이 예정돼 있다.
    문화를 전파하는 것은 단시간 내에 완성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오징어 볶음이 매워 물을 연방 마셔대면서도 젓가락을 놓지 않는 칠레 여인들을 보면서 재료를 구하기 쉬운 메뉴 몇 가지로 먼저 승부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화된 몇 종류를 줄기차게 품질 개량하는 것이다. 돌솥비빔밥이나 잡채처럼 딱 떨어지는 음식으로 말이다.

    칠레 수출지원단체 프로칠레(Prochile)가 주관한 ‘아시아 신흥 마켓 세미나’에서는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시장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왜 한국은 발표하게 안 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관계자는 “한국 시장은 우리에게 이미 신흥시장이 아니다. 칠레 와인이 한국에서 부동의 2위를 거두고 있지 않느냐”며 희색이 만연한 표정을 지었다. 칠레 브랜드 대부분이 한국에서 유통되는 현실이다.

    2010년은 의미심장한 해다. 엄청난 지진을 극복한 칠레는 독립 200주년을 맞고 있다. 임 대사는 “정부는 유례없이 이번 칠레의 독립기념을 위해 다보탑 모형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9월18일이면 산티아고에서도 유네스코마저 감탄한 신라 예술미의 극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한·칠레 FTA로 인해 양국 간의 경제가 서로 통하더니, 이제 양국은 상생 협력하는 더 높은 단계로 향하고 있다. 다보탑 앞에서 칠레 와인과 한식을 앞에 두고 양국 관계자들이 다 같이 “살루(Salud)!”를 외치는 날을 기분 좋게 상상해 본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 추천 레스토랑

    <미라올라스(Miraolas)>

    ‘파도를 보라’는 뜻의 레스토랑 미라올라스는 이름에 걸맞게 신선한 해산물 요리 전문점이다. 교민이 많이 거주하는 비타쿠라 지역에 소재하는데, 이 지역은 서울의 강남구 같은 곳으로 고급 주택과 상점들이 운집해 있으며, 독립 200주년 기념공원도 있다. 이 식당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신선도. 그날그날의 해산물을 엄격하게 골라낸다. 하지만 이 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간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번지수만 보고 찾을 수밖에 없다. 칠레 해산물 식당에서는 보통 오징어튀김, 새우튀김, 갖가지 세비체(생선살을 레몬즙에 절인 것)를 2∼3인분 시킨 것으로 전채를 삼고, 메인으로 킹크랩이나 삶은 전복 혹은 생선 요리를 먹는다. 디저트는 칠레 파파야가 좋다. 열대지방 파파야와는 달리 특유의 쫀득쫀득한 씹는 맛이 일품이다. 주소는 산티아고 비타쿠라 417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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