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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6> 아르헨티나 와인

눌재 2011. 6. 28. 19:11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6> 아르헨티나 와인<세계일보>
1000m 고원 멘도사 천혜의 포도재배 환경
강렬한 햇살·저습한 기후 등 ‘와인생산 대명사’
스페인 출신 와인 패밀리 등 이민… 메카 급부상
  • 맛의 비밀을 찾아가는 와인 기행이 아무리 신난다 해도 하루 이상 비행기의 좁은 좌석과 씨름해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그 좌석에 앉은 채 남·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아콘카과 봉우리(해발 6972m)를 어깨 바로 아래 두는 순간에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칠레와 안데스를 공유하지만 그 꼭대기는 아르헨티나에 있고, 그런 까닭에 아르헨티나 포도밭은 칠레보다 안데스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이 나라 와인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멘도사는 1000m 고원에 발달한 유일한 본격 와인 산지다. 그러기에 멘도사는 곧 아르헨티나 와인의 대명사가 된다.

    ◇아메리카대륙의 최고봉인 아르헨티나에 있는 아콘카과.
    탱고와 마라도나의 나라 아르헨티나는 세계 5위 와인 생산국이자 6위 소비국이며, 칠레도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다. 바로 와인 문화다.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를 거친 외과 의사이자 최고급 양조장 ‘카테나 사파타’의 사장인 라우라 카테나의 저서 ‘비노 아르헨티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방년 아흔의 한 노파는 유년 시절 자신의 부엌에는 항상 물, 물과 와인을 섞은 것 그리고 와인, 이렇게 세 음료수만이 있었고, 몇 살이냐에 따라 와인의 양이 결정됐다.”

    수출을 위해 와인을 제조하는 칠레와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스스로를 위해 와인을 만든다. ‘카테나 사파타’도 내수용과 수출용이 각각 절반을 차지할 만큼 내수가 두텁다. 양조장 루티니(Rutini)의 와인 박물관에는 수백 년 묵은 재래식 양조 도구들이 진열돼 멘도사의 풍부한 양조 전통을 잘 설명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와인은 칠레보다 덜 유명하다. 경작 면적이나 생산량이 칠레보다 월등히 많아도 수출이 적어 해외시장에서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자랑 아사도(바비큐)를 철제 그릴 파리야에 올려 요리하는 식당의 부엌이다. 파리야 위에서 준비되는 염소 고기 요리 치비토.
    아르헨티나를 보고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무엇을 가졌는지를 잘 모르는 나라라고 말한다. 고기파티와 탱고에만 정신이 팔린 건 아닐까. 왜냐하면 그들은 지하자원과 풍요로운 대지 등 많은 걸 가졌는데, 어떻게 그렇게 경제 수준이 낮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라틴계 이주민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식당에 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고, 식탁마다 요리와 와인이 넘쳐난다. ‘돈 벌어서 먹는 데 모두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사람들은 들뜬다. 파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파티는 좀처럼 끝날 줄 모른다. 파티에는 당연히 아르헨티나의 명물 아사도(바비큐)가 마련된다. 육질이 세계 최고 수준인 쇠고기부터 염소고기까지 다양하며, ‘파리야’라 불리는 철제 그릴은 없는 집이 없다. 

    ◇양조장 루티니가 운영하는 와인박물관에는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전통 와인 양조기구들이 즐비하다. 소가죽으로 만든 틀 위에서 발로 포도를 으깨면 포도즙이 아래로 흐른다.
    태양과 와인의 땅 멘도사에 반년 정도 관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막에 세운 와인 관광 도시 멘도사는 곧 폐허가 될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의지는 이런 척박한 땅도 사람 살만 한 곳으로 변모시킨다. 멘도사의 연평균 강수량은 200㎜(보르도는 약 700㎜)에도 못 미쳐 작물재배가 불가능하지만, 비와 눈이 주변 강으로 흘러들어 귀중한 관개용수가 된다.

    멘도사에 정착한 보르도 품종 말벡은 오늘날 아르헨티나 와인의 자랑이다. 안데스 산맥이 주는 서늘한 밤 기온, 높은 해발고도가 주는 강렬한 햇살, 사막이 주는 저습한 기후 그리고 척박한 토양은 멘도사에 천혜의 포도 재배 조건을 부여한다. 이곳에서 소출은 자연스럽게 저수확되고 열매는 고농축돼 고기 반찬에 어울리는 강렬하고 진한 레드가 된다.

    19세기 말까지 멘도사는 아르헨티나의 변방에 불과했기에 칠레와 주로 교역했다. 마차를 타고 안데스만 건너면 거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멘도사와 산티아고 간의 비행노선국제노선이 아니라 지역노선 같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정도다. 까다로운 이민국 절차나 보안 절차가 없다. 와인을 그냥 손가방에 여러 병 싣고 탈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 

    ◇돈마리오 레스토랑의 베테랑 웨이터와 소믈리에.
    1882년 철도 건설은 멘도사를 급성장시켰다. 멘도사는 드디어 자국민의 반이 사는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시장으로 얻었다. 철도가 멘도사에서 수도로 통하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의 와인 패밀리들이 멘도사로 이민오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멘도사가 ‘와인의 메카’가 된 것이다.

    로버트 몬다비처럼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 출신인 카테나 패밀리도 이때 건너왔다. 영국의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이 집안을 이렇게 표현했다. “니콜라스 사파타. 그는 아르헨티나 와인을 세계 와인 지도에 올린 인물로 오직 품질 향상에만 골몰한다. 드디어 아르헨티나에도 와인 왕조가 생겼다.”

    라우라의 아버지 니콜라스는 해발 고도와 토양별로 말벡의 재배를 달리해서 멘도사 말벡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고, 이를 통해 고품질 와인을 획득했다. 미국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이 양조장 와인에 94점을 주었고, 이 점수는 1998년 당시 아르헨티나 와인 최고 점수였다.

    루티니 양조장의 와인메이커는 세간에 알려진 말벡의 특징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말벡은 향기가 좋고, 질감이 부드러워 무척 여성적이라고 했다. 국내에 알려진 진하고 텁텁한 느낌과는 다른 얘기가 된다. 집중 시음하면 싱그러운 향기와 섬세한 질감을 그 특징이라 여길 것이다. 액세서리 회사 스와로브스키가 소유하는 양조장 노르통(Norton)에는 아콘카과를 세 번이나 오른 와인메이커가 맑은 눈동자로 와인을 설명한다. 그 봉우리를 편히 앉아서 내려다보았으니, 다음 번에는 그 절반이라도 올라 올려다 보고 싶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 추천 레스토랑

    <돈 마리오(Don Mario, www.donmario.com.ar>

    ◇전통차 마테. 금속 빨대를 꽂아 마시는 전통 방식의 차로, 빨대 하나로 여러 사람이 돌려 먹는 것은 아르헨티나에서 우정의 표시로 통한다.
    멘도사 시내에서 택시를 타면 십여분 걸리며 택시비는 부담 없는 수준이다. 쇼핑몰 팔마레스에 소재한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으로 식사 때마다 손님이 넘친다. 소시지나 각종고기 요리가 특징인데, 양은 못 먹을 만큼 푸짐하니 먹고 싶은 양의 절반 이하로 시켜야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다. 닭 요리는 반 마리, 반의 반 마리 등의 표시가 있다. 특히 닭은 장작불에다 바비큐를 하는데, 은은한 나무 향기와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다. 어디를 가나 음식은 맛있다. 고기, 곡식, 채소, 과일 등 재료 자체가 품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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