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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9) 이탈리아 바르돌리노 와인

눌재 2011. 6. 28. 19:18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9) 이탈리아 바르돌리노 와인<세계일보>
로미오와 줄리엣도 즐겼을 ‘그 맛’… 옛 명성 꿈꾼다
  • 바르돌리노는 강건하고 풍성한 이웃 와인 발폴리첼라에 가려 최근까지도 비틀거렸지만, 맑고 순수한 향기, 풋풋하고 생동감 넘치는 맛을 발판 삼아 명예회복을 꿈꾼다. 과연 바르돌리노가 한 세대 전 지역 최고 와인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지 와인여행자가 그 땅을 찾아 나선다.

    ◇바르돌리노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가르다 호수 건너편 마을로 편리하게 갈 수 있다. 차로 가면 몇 시간이지만 배로 가면 몇 십 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레드는 아마도 바르돌리노(Bardolino)였을 것이다. 투명하고 고운 색깔은 풋풋한 청춘을, 딸기와 산딸기, 체리와 같은 붉은 과일 맛은 타오르는 열정을, 계피 맛과 스파이시한 풍미는 안타까운 운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바르돌리노는 북부 이탈리아 세 지방에 걸쳐 분포하는 드넓은 호수 가르다에 연한 호반 마을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인 베네토 지방에 속한다. 바르돌리노는 풍요로운 남도와는 달리 매섭고 세찬 바람이 부는 산기슭에 위치하여 척박한 토양을 지니나, 가르다로 말미암아 얻게 된 온화한 호수 기후로 인해 올리브의 북방 한계선에 속하며 평탄 지형에서는 포도 농사도 가능하다. 인근 마을 콜라는 이미 로마시대부터 유명한 와인 양조 마을이었다. 19세기 중반부터 가난을 피해 미국이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빈 자리는 인근 지방 사람들이 찾아와 채웠는데, 그들은 각자 고향 마을에서 가져온 여러 종자로 밭을 일구었으며 그중에는 포도나무도 있었다. 평탄하고 비옥한 밭에는 키위나 각종 과일을 재배하고 일정한 장소에서는 다양한 포도를 키운다. 그 포도들을 혼합하여 양조하는 것이 바르돌리노의 전통이다. 근처에서 만드는 화이트 와인 구스토차 역시 이런 이유로 품종 간의 혼합 와인이 되었다.

    ◇유서 깊은 구에리에리-리자르디(Guerrieri-Rizzardi) 양조장이 만든 바르돌리노의 라벨.
    바르돌리노는 코르비나를 중심으로 해서 몰리나라, 론디넬라 등의 포도를 섞는다. 이는 발폴리첼라의 제조법과 같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바르돌리노가 발폴리첼라보다 휠씬 비쌌으며, 베네토 지방의 대표 와인은 바르돌리노였다”고 말하는 안젤로 페레티(Angelo Peretti)의 눈가엔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그는 계속 말한다. “강건하고 진한 발폴리첼라의 성공을 목격한 바르돌리노 생산자들은 전통 스타일을 무시하고 발폴리첼라를 복사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결국 소비자들로부터 배척당했다”고.

    호수 동편이 바르돌리노, 바르돌리노 동편이 발폴리첼라다. 바르돌리노와 발폴리첼라는 동일한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지만 와인은 사뭇 다르다. 발폴리첼라는 호수에서 더 멀고 해발 고도가 좀 더 높아 일교차가 더 크고, 또 토양도 화산 토양이라서 더 강건하고 육중한 맛이 특징인 반면, 바르돌리노는 온화한 기후와 토양 덕분에 가볍고 싱그러운 맛을 지닌다. 바르돌리노와 발폴리첼라 둘 다 봄에는 체리꽃이 만발하며 와인의 향기에서도 체리가 느껴지지만 입 안에서 바르돌리노가 휠씬 생동감이 있고, 경쾌하며 발폴리첼라는 억세고 거친 타닌을 남긴다.

    ◇바르돌리노 파티에 제공된 다양한 바르돌리노 키아레토.
    포도밭의 특징을 와인으로 치환하는 과정은 항상 험난하고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웃이 대신해 주진 않는다. 개성을 병에 담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라는 교훈을 얻은 바르돌리노 생산자들은 “내가 왕년에는 어마어마했거든”이라 했을 것이다. 소비자는 왕년의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지금의 와인을 마실 뿐….

    바르돌리노를 고를 때 주의할 점 한가지가 있다. 현지 소비자 가격이 2∼5유로인 바르돌리노는 양조장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원가 관리가 중요하다. 80여 가지의 바르돌리노를 시음하던 중에 마개 불량으로 와인 맛이 상한 경우가 약 10% 있었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수치로 싸구려 합성마개나 짧고 불량한 코르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레 프라게 양조장의 오너 겸 와인메이커인 마틸데 포지(Matilde Poggi). 그녀의 바르돌리노는 수준급이다. 싱싱하고 상쾌한 딸기 맛이 가득하다.
    바르돌리노의 전형성을 드러내는 와인이라면 우선 스파이시한 맛이 난다. 이는 코르비나에서 온다. 맑고 생생한 산딸기나 딸기 혹은 체리 맛이 난다. 약간 짠맛이 풍길 수 있는데, 이는 땅에서 비롯되는 특징이다. 이런 과일적 특징을 싱싱한 상태로 마시는 것 그것이 바르돌리노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이다. 그러니 묵혀서는 곤란하다. 출시되고 몇 년 내에 다 마셔야 좋다. 길면 오 년 정도다.

    바르돌리노 이름에 키아레토(Chiaretto)가 붙은 건 로제 와인이다. 일반 바르돌리노보다 색이 더 투명한 것은 물론이다. 깨끗하고 싱싱한 맛이 나야 하는 키아레토는 바르돌리노보다 약간 비싸기도 하지만 절대 싼 법은 없다.

    바르돌리노에다 슈페리오레(Superiore)가 붙으면 월등한 것 같아도 맛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시음 경험상으로 슈페리오레는 분명히 색이 더 진하고 타닌이 더 많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종합해서 더 좋은 맛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거기다가 더 비싸다. 바르돌리노에 클라시코(Classico)가 붙어도 좋아하지 마라. 키얀티의 클라시코와는 차원이 다르니 말이다.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품질의 차이가 나는 점이 반영되지 않은 자의적인 구분의 클라시코일 뿐이다. 바르돌리노 스푸만테도 있다. 로제 스파클링의 일종이다. 분홍빛 거품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과거 대접받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바르돌리노 양조가들 중 몇몇은 이미 명예를 회복했다. 미국에만 생산량의 60% 이상을 수출하는 코르테 가르도니(Corte Gardoni), 딸기의 곱고 정연한 맛이 인상적인 레 프라게(Le Fraghe), 고품질대량생산하는 몬테 델 프라(Monte del Fra) 그리고 구에리에리 리자르디(Guerrieri-Rizzardi), 제니(Zeni)를 추천한다. 일상 생활 와인으로 바르돌리노만 한 게 없다.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추천 레스토랑 로칸다 산 비질리오(www.locanda-sanvigilio.it)

    바르돌리노까지 왔다면 산 비질리오를 빠뜨릴 수는 없다. 자동차로 십 분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서 내려 걸어 들어간다. 사시사철 푸른 길다랗고 높다란 키프로스 사이를 걷노라면 마치 나무들이 “걱정과 시름은 도시에 내버려 두고 오셨겠지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영국 윈스턴 처칠 전 총리와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도 여기서 휴식을 얻었으며, 비비안 리도 찰스 영국 왕세자도 쉬어갔다. 좀 걷는가 싶으면 곧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며, 그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보이면 걷기는 그만이다.

    ◇로칸다 산 비질리오의 테라스에는 과거 윈스턴 처칠 총리처럼 호수와 태양을 즐기려는 방문객이 넘친다.
    산 비질리오는 미니 마을이다. 바르돌리노에 비하면 장난감같이 작은 동네다. 거기에 속한 꼬마 항구, 교회, 빌라, 호텔 등을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오백 년 그 이상 됨 직한 돌 건물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세월에 물들어 청정한 호수 물색을 더욱 깨끗하게 보이게 한다. 부지런한 여행자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전망이 가장 좋은 자리에서 호수에 깔리는 햇살과 함께 아침을 즐길 수 있다. 작은 호텔에 레스토랑이 달려 있는 걸 이탈리아에서는 로칸다라고 부른다. 이 로칸다 산 비질리오의 단점이라면 호수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테이블이 고작 다섯 개뿐이란 사실이다. 호텔에는 방이 모두 열두 개가 있어 짧게 머무는 경우에는 창가에서 식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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