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7) 남부 독일 팔츠 와인<세계일보>
- 입력 2010.10.06 (수) 22:05
-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千의 얼굴 지닌 ‘리슬링’ 그 오묘한 맛에 흠뻑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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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가 골목마다 피고, 로즈마리가 사람 키만큼 자라는 곳이 남프랑스라고 한다면 너무 프랑스 친화적인 생각일 것이다. ‘독일의 토스카나’라 불리는 이곳은 남부 독일의 팔츠 지방이다. 남프랑스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남부 독일 역시 온화하고 풍요로운 대지에서 포도뿐 아니라 레몬을 비롯한 각종 과일과 푸성귀를 길러낸다.
◇팔츠의 수많은 양조장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정다운 식사 풍경.
한때 독일을 주름잡던 헬무트 콜 전 총리의 고향이 팔츠다. 그는 국빈으로 방문한 인물들을 인근 다이데샤임 마을로 초대해 자신의 단골식당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여기에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대처 전 영국 총리, 마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등이 포함된다. 마을 중심에 위치한 별 다섯 개의 호텔 다이데샤임 호프에는 그들의 방문을 사진으로 남겨 놓은 레스토랑 ‘슈바르처 한(검은 수탉)’이 지금도 큰 인기를 끈다. 콜 총리가 레스토랑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 때 아마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고향 마을 와인 자랑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팔츠 지방은 스위트 와인으로 알려진 독일 와인의 이미지와는 다른 곳이다. 물론 아이스와인을 비롯한 스위트 와인을 여전히 생산하고는 있지만, 팔츠의 대표적인 와인들은 모두 드라이 와인이다. 독일 와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아이스와인은 여기서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이미지 관리상 어쩔 수 없이 소량 생산하는 곳이 많다.
◇이솝 우화 ‘여우와 신포도’를 주제 삼은 프레데리히 베커의 재미난 라벨.
다이데샤임 마을에서 가까운 한 봉우리에 소재한 함바허성에서는 뜻있는 일단의 독일인들이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소망하며 외쳤다. 품질로써 세상에 팔츠 와인을 외치는 양조장으로는 프리드리히 베커(Frederich Becker)가 손꼽힌다. 그는 프랑스에서 일반적인 오크통 바리크(225ℓ 소용량)을 처음으로 채택해 독일의 피노 누아도 프랑스 못지않음을 보여주었다. 30여 년 전에는 바리크 사용이 합법적이지 않아 아무리 맛이 좋아도 바리크에서 숙성한 와인은 등급을 받지 못했다. 프리드리히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피노 누아의 품질만을 따졌다. 그가 만드는 최고 와인은 ‘타펠 바인(테이블 와인)’이란 이름으로 팔린다. 과거 등급을 받지 못해 가장 수준 낮은 이름인 테이블 와인을 붙여야 했던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함이다. 이제 바리크 사용은 독일에서 일반화됐다.
◇팔츠의 대표 음식 자우마겐은 비리지 않아 우리 입에도 잘 맞다.
레브홀츠 양조장이 만드는 바이스부르군더도 세계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맑고 진한 꽃향기가 두꺼운 질감 속에서 뿜어져 나온다. 1993년 바이스부르군더는 여전히 싱싱한 산도를 지니고 있어 앞으로도 그 와인의 진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화이트의 숙성력 역시 레드 못지않음을 쉽게 경험한다.
◇레브홀츠 양조장의 대표 한스요르크. 그의 바이스부르군더(피노 블랑)는 맛이 특별하다.
팔츠는 프랑스 부르고뉴와 비슷한 토양에서 부르고뉴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지만 내수가 강해 국제 인지도를 쌓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팔츠는 아몬드, 무화과, 밤나무가 포도와 함께 익어가는 풍요로운 땅 위에 아델스부르크(고귀한 산), 로젠베르크(장미산), 바이센슈타인(흰돌), 실버베르크(은빛산), 파라디스가르텐(낙원) 등 이름이 예쁜 마을도 많다.
가을에 팔츠를 여행한다면 양조장에서 필시 페더바이젠(막걸리 같은 색과 단맛을 내는 발효 중인 와인)과 자우마겐을 추천 받을 것이다. 맛이 제법 잘 어울린다. 끝없이 즐기다가는 배탈이 나기 십상이지만,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밤으로 수프를 끓여 마시면 속을 달랠 수 있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추천: 와인바 에젤스부르크 (Eselsburg)
◇와인바 에젤스부르크의 실내 모습. 실내가 아닌 마당에 자리를 잡고 싶다면 꼭 예약해야 한다. 마당 자리가 먼저 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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