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2) 독일 ‘에곤 뮐러’ 와인<세계일보>
- 입력 2010.12.15 (수) 22:54
-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그 맛에 빠져 잊지못할 낭만을 원한다면 “에곤 뮐러”
- 팜므 파탈 같은 유혹을 지닌 스위트 와인 중에서도 가장 유혹적인 맛은 단연 ‘귀부(貴腐) 와인’이다. 아이스와인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독일에서 귀부 와인을 찾는다면 애호가들은 한결같이 ‘에곤 뮐러’를 추천하곤 한다. 필자의 신간 ‘라이벌 와인’에서 소개했듯이, 자르 강가에 자리 잡은 바인구트 에곤 뮐러(Weingut Egon Mueller)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독일 와인의 역사와 수준을 살피는 일이다.
독일은 와인에 관한 한 프랑스의 영원한 라이벌이다. 프랑스 레드가 강하지만, 독일 화이트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 동부지방 알자스의 와인문화는 독일을 빼다 박았다. 역사적·문화적으로 파리와는 너무 거리가 멀고, 라인강 문화와 아주 유사하다.
◇샤르츠호프베르크 정상에서 내려다 본 에곤 뮐러 성.
독일 당국은 이런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많이 했다. 와인의 등급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보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모두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른바 원산지 개념인데, 전통과 실질이 부합되는 원산지를 선정하고 그 경계 내에서 약속된 방식으로 양조된 와인은 해당 원산지 이름을 라벨에 새길 수 있는 것이다. 보르도 혹은 샴페인, 바롤로 혹은 모스카토 다스티처럼 말이다.
하지만 독일은 원산지 개념보다는 포도의 당분 함유량으로 등급을 나누었다. 포도알이 많이 익으면 익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이스바인은 정점 바로 아래 위치하는 고등급인데, 국가의 최고 등급 와인이 아주 달다는 이미지만 주고 있는 것이 독일 와인의 문제점이다. 그러니 특히 레스토랑에서는 디저트 순서를 제외하고는 독일 와인을 좀처럼 주문하지 않는다. 다디 단 와인에 어떤 음식이 어울리겠냐면서. 사실 독일 와인은 단것보다는 달지 않은 게 더 많다. 그러나 독일 와인 등급이 복잡하고, 철자도 길고, 독일어 자체의 생소함과 난해함이 더해져서 선택하기 가장 힘든 와인이 되었다.
◇콩알보다 조금 큰 리슬링 포도알. 50센트 동전의 절반 크기에도 못 미친다. 사진처럼 알이 성겨야 고루 익어 좋은 와인이 된다.
독일 최고의 포도밭은 대부분 강변에 포진한다. 남향의 언덕에 조성된 것을 제일로 친다. 단, 라인강의 지류인 자르강가로 가면 예외다. 자르강은 모젤강으로 연결되는데, 특이하게도 북으로 흘러 남향 언덕을 조성하지 못한다. 이 지역은 지도상으로 보면 룩셈부르크에 휠씬 가깝다. 한 시간만 뜀박질하면 닿는다. 자르강 최고의 포도밭은 샤르츠호프베르크이다. 강에서 좀 떨어진 남향 언덕이다. 예외 없이 남향 언덕이 최고다. 여기서 와인을 만드는 에곤 뮐러는 자타가 인정하는 독일 대표 양조장이다.
◇에곤 뮐러 양조장의 유서 깊은 지하 셀러에는 수십년간 사용해온 오크통들이 즐비하다.
에곤 뮐러 양조장은 1797년부터 가족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군은 독일 라인강 지역까지 접수했다. 이후 나폴레옹의 교회 재산의 세속화 정책에 따라 수도원과 부속 포도밭은 경매 처분되었는데, 1797년에 요한 야코프 코흐가 낙찰받았다. 그의 사위 펠릭스 뮐러가 1829년부터 이 장원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1880년에는 에곤 뮐러 1세가 가족 재산을 되찾았고, 이후 계승되어 1959년생인 에곤 뮐러는 4세가 된다. 지금 청년인 그의 아들은 물론 5세이다. 그 집 개 이름도 에곤이고, 4살짜리 두 형제 이름에도 에곤을 붙였다. 아버지, 즉 3세 생각에 누가 물려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쨌거나 후손 이름을 모두 에곤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8ha 샤르츠호프베르크와 그 외 포도밭을 합쳐 약 12ha의 규모로 매년 약 7만병을 생산한다. 98%가 리슬링이다. 샤르츠호프베르크에는 2차 대전 당시 미 공군기가 추락해 밭의 일부가 망실되었지만 일부는 수확이 가능했다. 또 미국에서 건너온 필록세라에 의해서도 일부 밭이 황폐화되었지만 일부는 남았다. 아직도 필록세라 이전 시대의 클론들이 3ha 면적에서 여전히 경작되고 있다. 1945년 가을에는 전투기의 영향과 관리 소홀 탓에 약 1000병 정도만 병입했다.
◇양조장 후문에 달라붙어 있는 샤르츠호프베르크. 여기서 나오는 화이트는 한때 세계 최고가 와인이었으며, 여전히 독일 최고가 화이트이다.
에곤 뮐러의 아우슬레제는 매년 약 5000병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으며, 이보다 더 당도가 높은 베렌아우슬레제나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는 빈티지가 허락해야 조금 담글 수 있다. 그러니 디켐 평균 생산량 11만병에 비하면 이곳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맛과 향기만은 뒤지지 않는다. 에곤 뮐러 4세의 생년이기도 한 1959년 트로켄베렌아우슬레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와인으로도 꼽힐 정도다.
그는 이 점을 아주 든든하게 여긴다. 사실 두 형제가 다 뱅커라서 돈은 자신이 제일 못 번다고 말하는 에곤 뮐러 4세는 마음속으로는 그리 낙담하지 않는다. 지하 깊숙이 저장되고 있는 1959빈티지 와인 병 수를 감안하면 자신이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곤 뮐러는 일반 대중을 위한 와인이 아니다. 이 점이 유감이다. 철저히 와인 사회 내부자들을 위한 와인, 와인 심미주의자를 위한 와인이다. 오직 품질과 전통 그리고 철저한 고급화 전략으로 오늘날 독일를 대표하는 와인이 됐다. 에곤 뮐러는 저물어 가는 2010년의 마지막 와인으로 추천할 만한 와인이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 추천: 자르부르크 마을의 레스토랑 켈러(www.villa-keller.de)
◇켈러 레스토랑의 단골 일품 요리인 쇠고기 감자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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