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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4> 프랑스 퓔리니 몽라셰 와인

눌재 2011. 6. 28. 19:26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4> 프랑스 퓔리니 몽라셰 와인<세계일보>
레드의 파워와 질감 지닌 화이트… 그 쾌활하고 유쾌한 ‘미각여행’
  • 필자는 올해 모든 일이 술술 풀리라는 뜻으로 프랑스의 퓔리니 몽라셰 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청포도 샤르도네로 화이트 와인을 빚지만 촌부들 어느 누구도 샤르도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퓔리니 몽라셰라고 말하며, 화이트지만 힘이 있고 골격이 있지만 속에는 섬세한 기품이 있다고 자랑한다. 상큼한 신맛이 끝도 없이 풀어지는, 그래서 쾌활하고 유쾌한 미각의 세계로 여행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는 화이트가 나오는 포도밭 몽라셰가 이 마을에 소재한 까닭에 애초 퓔리니 마을이었던 것이 1879년 마을회의 결과 퓔리니 몽라셰로 탈바꿈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뉴질랜드 소설 ‘천사의 와인’의 공간적 배경 부르고뉴는 와인 명산지다. 부르고뉴 지방이 원산지인 피노누아로는 레드 와인을, 샤르도네로는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프랑스는 지중해를 끼고 있어 지중해성 기후라 배웠지만, 어째 이곳 부르고뉴에서는 푸른 하늘 보기가 쉽지 않다. 영락없이 대륙성 기후로 비와 바람이 많다.

    ◇도멘 르플레브의 발효조는 구획별로 따로 발효하므로 여러 통이 필요하며, 발효는 철저한 위생 관리를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실시한다. 가운데 놓인 오크통은 시음을 위한 탁자 용도이다.
    부르고뉴는 땅의 기운이 중요하다. 온기를 머금은 대지의 영향으로 궂은 날씨와 변덕스러운 기후에도 포도를 제대로 익힐 수 있고, 이런 토양의 비결을 그들은 테루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와인 맛은 테루아에 따라 달라지며, 그 테루아는 오직 땅에서만 비롯되기에 부르고뉴 와인의 품질은 진작 밭에서 결정된다. 부르고뉴에서도 화이트 품질이 특히 우수한 마을로 뫼르소, 샤사뉴 몽라셰, 그리고 퓔리니 몽라셰가 있다. 뫼르소와 샤사뉴 몽라셰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인 퓔리니 몽라셰는 질감이 도톰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섬세한 기운을 유지하여 생산량이 적지만 품질이 뛰어나며 특히 고급 수준으로는 부르고뉴에서 최고의 와인 마을이다.

    와인 여행자들이 퓔리니 몽라셰 마을을 찾아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파리∼디종행 테제베에서 내린 다음 렌터카를 몰고 남하하거나, 보르도 투어를 마친 후에 렌터카로 부르고뉴까지 연장하는 방법이다. 이 마을은 부르고뉴 와인의 중심 도시 본에서 가깝다. 뫼르소 마을과 샤사뉴 몽라셰마을 사이에 있는데 마로니에 광장을 찾아오면 된다. 

    ◇도멘 르플레브에서 맛본 슈발리에 몽라셰의 1999년 산과 2005년 산. 두 와인 모두 단단한 뼈대 위에 중립적이면서 금속성의 미네랄 향취가 물씬 풍겨 나오는 맛이 일품이었으며 각각 초점이 잘 잡히고 씹히는 듯한 질감이 돋보였다.
    시골 마을답지 않게 너른 그 광장에는 몽라셰 호텔이 있고 호텔 코앞에 마을 최고의 양조장 도멘 르플레브(Domaine Leflaive)가 있다. 르플레브 양조장이 하나 더 있다. 가족에서 파생되었지만 둘은 다른 회사다. 사촌 올리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올리비에 르플레브라는 중개회사를 열고 와인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자신 이름의 와인을 만든다.

    퓔리니 몽라셰의 품질은 르플레브에서 확실히 증명했다. 그래서 와인여행자들의 방문 일번지가 여기다. 하지만 지도만 보고 여길 찾는다면 그 광장을 백 번 돌아도 찾을 수 없다. 소규모의 개성 강한 프랑스 양조장 주인들이 다 그런 것처럼 여기 주인장 역시 문패를 달지 않는다. 시골 마을에 다니는 이라고는 관광객밖에 없기 때문에 행인은 도움이 안 된다. 운이 좋다면 일 보러 나가는 촌부가 안내를 해주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여유 있게 도착해 근처 식당에서 차 한잔 한 다음 약도를 물어보는 편이 제일 낫다. 물론 종이를 꺼내야 도움이 될 것이다.

    애호가들의 소원 목록 1번 로마네 콩티에 유일하게 대적하는 와인이 있다면 그게 몽라셰다. 화이트가 주는 청량감이 상큼해서 좋지만 어째 레드의 무게감이 없기에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화이트라고 생각한다면, 몽라셰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이트에서 레드의 힘과 구조감을 찾는다면 몽라셰다. 그래서 몽라셰는 마시는 게 아니라 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몽라셰의 반쪽은 샤사뉴 몽라셰 마을에 소재한다. 이 마을 역시 샤사뉴의 마을 이름을 결의를 통해 샤사뉴 몽라셰로 바꿨다. 다만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샤사뉴 쪽 몽라셰에는 정관사를 붙여 르 몽라셰로 부른다.

    마을 이름을 바꿀 정도로 유명한 몽라셰의 위세는 근처 포도밭의 이름까지도 물들일 정도이다. 몽라셰 서쪽은 슈발리에 몽라셰, 동쪽은 바타 몽라셰로 불린다. 이렇게 해서 몽라셰란 꼬리가 붙은 포도밭은 모두 다섯 개로 테루아를 숭상하는 부르고뉴에서 화이트로는 최고가 될 만하다.

    해질녘 노을이 진 퓔리니 몽라셰를 바라보면 박목월의 시 ‘나그네’ 중 한 소절인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이 떠오른다. 도멘 르플레브를 지휘하는 여주인 안-클로드 르플레브(55)의 유난히 흰 백발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이트의 연금술사라서 머리가 하얗게 세었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바이오 다이너미즘’ 신봉자다. 이 농업 사상은 요즘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전근대적 농법을 주창한다. 

    ◇몽라셰 포도밭에서 선 필자.
    화학 비료나 제초제 등 인위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극히 자연에 순응하면서 포도밭을 가꾼다. 음력 주기에 맞춰 필요한 작업을 밭에 행하여 종국에는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열매의 튼실함을 얻어낸다. 가장 보수적인 양조가들이 운집한 부르고뉴 밭에서 그녀는 혁신을 도모하였다. 많은 반대를 극복하고 결국 그녀는 밭 23ha 전체를 이 농법으로 경작한다.

    한때 품질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가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그녀가 만든 퓔리니 몽라셰는 생기가 있고 활기를 띠어 없어서 못 살 정도다. 20년 이상 숙성되는 그녀의 몽라셰나 슈발리에 몽라셰는 레드만큼의 파워와 구조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사방 30m 넓이에도 못 미치는 손바닥만 한 곳에서 태어나는 몽라셰는 수집가들을 긴장시킬 정도의 극소한 수량으로 생산된다. 해마다 300병 정도 병입된다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표현처럼 “몽라셰는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마셔야 한다는 말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 추천 레스토랑 ‘몽라셰 호텔 겸 레스토랑(www.le-montrachet.com)’

    ◇한 관광객이 본 시내의 와인 가게를 사진에 담고 있다.
    부르고뉴 와인 여행의 길잡이는 N74 도로다. 이 길을 따라 남북으로 다니며 관심지 하나하나를 방문한다. 유서 깊은 본에서 남쪽으로 이 길을 타고 12㎞ 정도 내려오면 퓔리니 몽라셰 마을에 당도한다. 뫼르소 다음에 바로 나타난다. 너른 마로니에 광장에 들어서면 시원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만 봐도 설레는 몽라셰, 이런 이름을 가진 작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반갑다. 사람을 피해 조용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본이나 뫼르소보다는 여기가 낫다. 이 호텔 투숙자들은 아마도 몽라셰를 알리라. 이 레스토랑의 와인 셀러도 멋지고, 음식과 와인 메뉴 역시 부르고뉴 특색으로 가득하다. 달팽이나 개구리 다리 혹은 민물고기 요리에 퓔리니 몽라셰를 골라 힘껏 ‘상테(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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