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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3>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

눌재 2011. 6. 28. 19:25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3>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세계일보>
강건하고 진하고 기운 찬 다채로운 그 맛 세계인 홀리다
  • 800년 전부터 영국인을, 150년 전부터 벨기에와 네덜란드인을, 30년 전부터 미국인을, 20년 전부터 일본인을, 그리고 10년 전부터 한국인을 매료시킨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이제는 중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다. 강건하고 진하며 기운 찬 와인으로 그 보르도를 알고 있는가. 보르도의 개성은 그게 다일까. 보르도의 매력은 단지 카베르네 소비뇽의 엄격한 타닌 맛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며, 육감적인 메를로 맛 때문도 아니다. 보르도에는 다채로운 와인 스타일이 존재하기에 그 인기가 지속되는 것이다. 동일한 품종들을 혼합한다 해도 미세한 스타일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게 만드는 생산자들의 개성이 까다로운 세계인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보르도는 와인의 영원한 이상향이다. 여기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를 소개하자면, 보르도 와인에 또 하나의 새로운 스타일을 더한 양조장으로 와인 여행자들에게 맛의 관능미와 양조가의 철학미를 선사할 것이 틀림없다.

    ◇비석 같기도 한 이 돌문패가 없다면 결코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를 찾을 수 없으리라.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에는 개성이 있다. 웬 개성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와인은 땅에 심은 포도로부터 얻는 것이니 모든 와인에는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는 법인데 말이다. 땅의 생김이 다르기에 각각의 와인에는 필히 개성이 스며든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와인에 개성이 결여되기 시작했다. 고품질 와인은 많은데 정작 개성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를 소개하는 일은 스타일의 다양성을 확인하는 일이라 의미가 있다 하겠다.

    테르트르 로트뵈프(Tertre Roteboeuf) 그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라벨을 처음 대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걸 뭐라고 읽을까 염려할 것이다. 두 단어 다 샤토에 속한 포도밭의 이름이니 그저 땅이름을 그대로 붙인 단순한 작명법에 불과하지만 각각의 뜻은 남다르다.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 와인 라벨에는 딸꾹질하는 소 대신 그 소가 힘들게 일하는 밭만 있다.
    우선 테르트르는 ‘땅’ 혹은 ‘언덕’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로트뵈프는 가파른 언덕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소가 힘겨워 헐떡거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 소리가 딸꾹질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주인장 프랑수아 미차빌(62)이 그 소리를 열심히 흉내 낸다. 하지만 로트뵈프의 첫 모음을 굴절시켜 발음하면 ‘로스트 비프’로 해석되는 해프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종종 이 와인을 맛있게 먹으려면 로스트 비프와 함께하라거나, 이 와인은 기가 막힌 스테이크용 와인이라고 오해받는다.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는 생테밀리옹에 어울리는 양조장이다. 8세기에 에밀리옹 수사가 은둔해서 붙여진 이름 생테밀리옹에 20세기 또 하나의 은둔자 프랑수아가 양조장으로 은둔하였다. 동네 전체가 유네스코 자산인 고대 돌집 같은 생테밀리옹은 오늘날 번지르르한 현대식 양조장이 앞다투어 조성되는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찾아가기도 힘든 언덕배기에 있으며 거기다가 건축물의 외양이나 진입로 또한 오래되었다.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최근 빈티지를 관으로 뽑아 시음을 준비하는 양조장 주인 프랑수아 미차빌.
    프랑수아는 보르도의 이단아로 불린다. 모두가 목매는 등급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품평회에 단 한 차례도 신청하지 않았다. 10년마다 벌이지는 생테밀리옹의 와인 품평회는 와인의 품질을 인정받는 중요한 행사다. 가격은 보통 이런 등급을 기반으로 해서 수요가 형성되기에 양조장 번영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다.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는 무등급이다. 하지만 상당히 비싼 값에 거래된다. 생테밀리옹 등급의 최고위에 오른 슈발 블랑과 오존에는 못 미치지만 나머지 와인들보다는 높은 값을 받는다. 만약 최고위에 와인 하나를 더 오르게 한다면 항상 후보로 꼽히는 샤토 파비와 샤토 앙젤뤼스, 이 둘만큼 혹은 이보다 더 높은 값이 매겨진다. 등급도 없는 와인인데 말이다.

    프랑수아는 샤토에 등급이 없어도 포도밭만은 특급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처가에서 버려둔 양조장을 1978년 빈티지 양산부터 본격 재가동하여 오늘날 위대한 와인 반열에 오른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는 대표적인 ‘거라지 와인’(garage wine·창고 와인이란 뜻으로 수확량이 적은 고품질 와인을 이른다)이다. 생테밀리옹 특유의 석회암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비탈진 남동향 언덕 5.7ha의 밭에서 해마다 겨우 2000상자(2만4000병)를 양조한다. 보르도의 최고가 와인 페트뤼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인기가 높아 고가에 팔린다.

    샤토 테르트르 로트뵈프는 당대에 성공한 와인이다. 동일한 밭이지만 이전의 관리자는 그 잠재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테루아의 허상을 깨달아야 한다. 테루아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그 중요성을 발견할 때에야 비로소 테루아가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자신의 밭이 원형경기장처럼 열기와 온기를 잘 보존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이 아주 잘 익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급 와인의 성공 방정식 같은 열매 솎기는 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밭은 수령이 45년 이상이며 저수확 바이러스에 일부 감염되어 소출이 적으니 의도적으로 소출을 줄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생테밀리옹은 돌집들이 운집된 고대 도시 모양이며 유네스코 보호 대상이라 함부로 지붕을 바꿀 수도 없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포도알이 더이상 잘 익을 수 없는 상태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확 일꾼들과 특약을 맺는다. 수확 중이라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즉각 수확을 멈추고 다른 날 다시 부를 때 일꾼들은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는 계약이다.

    프랑수아의 와인은 스타일이 있다. 맛과 향기가 개성이 있다. 보르도 와인이지만 거칠고 강한 구석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늦수확을 통해 얻은 고운 타닌이 글라스 안에서 실비단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보르도에서 가장 부르고뉴 같은 와인이랄까. 연하고 담백하지만 심지가 있고 뚝심이 있어 말 그대로 피네스를 느낀다.

    지하실 와인 저장고에서 방금 꺼낸 와인을 프랑수아랑 함께 시음했다. 이런 시음후기는 사실 참고일 뿐이다. 실제 소비자가 구매한다면 이보다는 덜 한 환경에서 저장된 와인이기에 품질의 하락을 감안해야 한다. 와인평론가들의 입맛을 만족시킨 두 가지 올드 빈티지를 요구했는데, 1990 빈티지는 왜 이 와인이 무명에서 위대한 반열에 올랐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무려 2개월 동안 발효했는데, 발효 후에도 엄청난 즙이 고체로 남아서 그것까지 다 짜냈다. 보통은 그런 잔여물을 압착하면 나쁜 냄새가 나는 데 비해 1990년에는 아주 좋은 향기가 났다고 그는 추억한다. 씹히는 것 같은 질감에다 부르고뉴 와인 같은 붉은 빛깔이 내비친다. 느낌이 세련되고 경쾌해 유쾌하게 시음했다. 하지만 5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1985년 빈티지에서는 다 지나간 전성기 같은 허무함이 풍겼다. 산화가 가속화되어 특유의 생기와 활기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병 탓이라고 여긴다. 아직도 그 빈티지가 좋다고 하는 평론가들의 견해는 내가 개봉한 병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토속 레스토랑 ‘라르 에 부숑’.
    추천 레스토랑:라르 에 부숑(www.lardetbouchon.fr)

    생테밀리옹 타운으로 들어서면 일방통행의 좁다란 길이 오르막으로 펼쳐지는데 왼쪽으로 굽어지는 길이 끝날 무렵 ‘베이컨과 코르크’란 뜻의 레스토랑 ‘라르 에 부숑’을 만날 수 있다. 지하에 있으며 간단한 안주에 와인을 잔으로 마실 수도 있고, 아치형 천장을 바라보며 토속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천장은 모두 지역의 암반을 이루는 석회암에서 쪼개어낸 벽돌로 짜맞추어져 있는데, 점점이 흩뿌려진 듯한 파스텔 톤의 베이지색은 이국적 정취를 풍기기도 하지만 은근히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는 힘이 있다. 전채 요리로는 대개 푸아 그라를 시킨다. 보르도 지방 전체가 이 요리로 유명하다. 여기는 격식을 차리는 곳이 아니라 지역인들이 부담 없이 먹고 가는 곳이므로 프라이팬에서 포트 소스에 절인 모양 대신 가볍게 즐기는 파테로 준비된다. 파테는 바게트에 발라 먹든지 아니면 칼로 조금씩 베어 빵과 함께 먹으며 와인여행자의 배를 채울 메인 요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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