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5> 독일 나헤지방의 리슬링 와인<세계일보>
- 입력 2011.01.26 (수) 21:10, 수정 2011.01.26 (수) 22:07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만드는 ‘향긋한 아로마와 활기찬 그 맛’
- 알코올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해석하면 동물도 우리와 같은 애주가란 사실을 발견한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오랑우탄은 두리안을 일부러 으깨어 일정 기간 내버려 둬 쿰쿰한 냄새가 나면 그 즙을 핥아먹는다. 발효의 원리를 아는 것이다. 인간만이 알코올을 즐기는 만유의 영장이 아니다. 오랑우탄이나 원숭이들도 알코올로 승화된 과일즙의 아로마에 빠져든다. 하물며 인간은 와인의 맛과 향기를 언어로 기록하고 숫자로 평가하여 품질의 고저를 구분하기도 한다.
◇좁다란 나헤 강과 남향 언덕에 자리 잡은 포도밭. 이런 강변 풍경은 독일 포도밭의 전형이다.
이제 좋은 와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애호가들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새롭게 좋은 와인 반열에 오른 와인들은 예외없이 알코올 도수가 높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부족할 리 없는 캘리포니아나 남미 혹은 호주의 벌판은 포도가 뼛속까지 확 익어버릴 정도로 정열적인 태양 아래 놓여 있어 대단한 당분이 포도 속에 자리잡고, 그 당분은 모조리 알코올로 치환된다. 좋은 와인이 많이 등장하여 좋을 듯싶어도 하나같이 도수 높은 와인이기에 그리 달갑지는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고알코올 와인은 알코올 성분으로 인해 와인 맛의 구성을 단단하게 만들어 힘을 준다. 꽉 찬 입맛을 선사하고, 정말 뭔가를 마시는 것 같은 자극을 준다. 하지만 알코올이 낮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든다면 높은 도수는 그저 시음자를 지치게 할 뿐이다.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도 전혀 미각적으로 뒤떨어지지 않는 와인이 있다. 여러 잔을 기울여도 비틀거리지 않는 깃털처럼 가벼운 와인이다. 어떤 음식에 잘 맞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웬만한 음식에 고루 잘 어울린다. 한 잔을 마셔도 눈이 밝아지는 것 같은 상쾌함이 있어 시음자의 눈에 광채를 띠게 하는 와인이다. 소주가 달다면 이것은 입에서 눈 녹 듯할 것이다. 독일 나헤 지방의 리슬링을 자신 있게 소개한다.
◇리슬링 포도밭에서 내려다본 나헤 강과 오베르하우스 마을.
나헤 지방으로 떠난다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와인 여행자라면 오베르하우스 마을의 양조장 헤르만 된호프를 기억할 것이다. 1750년부터 포도나무를 가꾸어 온 된호프 집안에서 헬무트는 1971년에 책임을 부여받고 4ha 소유를 22ha까지 확대하며 나헤 지방의 으뜸 생산자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포도밭은 리슬링을 심고, 일부 피노 블랑(바이서부르군더), 피노 그리(그라우부르군더)를 재배한다.
◇된호프 양조장의 드라이 리슬링 세 종류. 저마다 리슬링 특유의 맑고 정연한 신맛이 화려한 꽃 향기와 잘 어우러져 있는 이러한 품질 와인은 여행자에게 여행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
무엇이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게 하는 걸까. 상당한 공은 헬무트로 가야 한다. 그가 만들어낸 지난 40년간의 된호프 와인은 리슬링이 얼마나 위대한 와인인지를 증명했다. 전통적인 스위트 와인뿐 아니라 드라이 버전에서도 예의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맛과 향기가 표현된다. 같은 재료를 갖고도 남보다 빼어난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처럼, 같은 악보로 더 감동적인 연주를 해내는 연주자처럼, 그는 당대에 이보다 더 좋은 수 없을 정도로 화이트를 잘 만드는 양조가이다. 그의 아들 코르넬리우스가 곧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다.
리슬링은 피노 누아가 그러한 것처럼 토양을 밝히는 렌즈다. 그 속에 파묻힌 비밀스러운 땅의 기운을 리슬링은 와인으로 표현해 낸다. 이런 능력은 부르고뉴 벌판의 조각난 포도밭에서 작동되는 원리와 같다. 헤르만과 코르넬리우스가 빚어내는 조각난 포도밭은 이름이 복잡하지만 맛을 보면 간단하다. 확 가슴을 사로잡는 투명하고도 깨끗한 맛이다. 먼저 아이스바인으로 유명한 밭은 오베르하우스 마을의 브뤼케 포도밭이다. 딴 곳에선 아이스바인을 만들지 않으며, 빈티지가 좋을 때에만 그 밭에서 만든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비스바덴 시내에 위치한 뜨거운 용천수 코흐브루넨.
‘초원의 온천’이란 뜻의 비스바덴은 유서 깊은 온천 도시로 독일 와인 여행의 베이스 캠프로 삼을 만하다. 라인가우를 비롯한 여러 와인 산지가 지근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슈바르처 보크에서 몇 걸음만 거닐면 일년 내내 콸콸 솟아오르는 온천수 코흐브루넨에 다다른다. ‘끓는 샘물’이란 뜻의 이 온천수에는 미네랄이 많아 여행자의 목을 뜨겁게 축일 수 있다. 와인 여행의 지친 몸을 근처 온천장에서 푼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남녀 혼탕이란 점이며, 옷을 다 벗어야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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