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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8> 폰토디 키얀티 클라시코

눌재 2011. 6. 28. 19:39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8> 폰토디 키얀티 클라시코<세계일보>
  • 입력 2011.03.17 (목) 21:39, 수정 2011.03.17 (목)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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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에 남는 믿을 만한 와인
    토종소 스테이크 한 접시 곁들이면 금상첨화
  • 스테이크는 토스카나인의 영혼이다. 소금 간을 하지 않은 빵에다 ‘제우스의 피’ 산지오베제로 담근 레드 와인 ‘키얀티 클라시코’만 걸치면 이제 우리는 로마인의 후예 토스카나인이 된다. 이 세 가지 음식을 통해 토스카나의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판차노 마을로 와인여행자가 갔다.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면 피렌체도 좋지만 이제부터라도 관광 도시에만 머무르지 말고 버스를 타고서라도 좀 속으로 들어가 보자. 토스카나인들의 뿌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무엇을 먹고 사는지 등을 살펴보는 여행을 해보자. 우리와 비슷한 것을 먹고 살면 친근감을 느끼고 별난 걸 먹고 살면 이국적인 생경감을 느끼는 여행이 될 것이다.

    ◇키얀티 클라시코 컬렉션의 입구.
    아르노 강변 평지에 발달한 피렌체를 벗어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외곽으로 접어들면 조금씩 땅은 융기하고 점점 해발고도가 높아지는 지역 중에 판차노 마을이 있다. 피렌체 중심 기차역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 소요된다. 판차노(Panzano)는 사방으로 펼쳐진 넓은 키얀티 클라시코 지역 중에 포도가 가장 잘 익는 곳으로 유명하며, 이제는 희귀해진 토스카나 토종 소 ‘키아니나’를 키우는 농장도 있다. 판차노는 해발 500m에 자리 잡은 덕분에 주변 경사지에 발달한 포도밭이 포도를 서서히 익힐 수 있어 좋다. 일교차가 심하고, 기본적으로 산간 기후가 주는 서늘한 까닭에 산도와 타닌의 함유 정도가 높은 포도 ‘산지오베제’가 완숙할 수 있다.

     철학적이면서 자존감이 높은 한 판차노의 푸주한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다리오 체키니로, 단테의 지옥 편 시를 읊조리며 두툼하게 썬 날고기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두르고 번개처럼 입 안에 넣은 후에 게 눈 감추듯 삼키는 먹성 좋은 사나이다. 푸주한으로서의 직업 정신은 외서 ‘앗 뜨거워’에 잘 묘사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좋은 소고기의 기름은 전혀 기름지지 않아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더부룩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토종 키아니나로 장만한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피렌체식 스테이크)는 티본 스테이크와 유사하지만 그보다 더 두껍고, 모양은 삼각형에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키아니나 예찬은 사실 조반니 마네티에 미치기 힘들다.

    ◇와인과 소를 통해 키얀티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조반니 마네티(Giovanni Manetti)
    조반니 마네티(Giovanni Manetti, 1963∼), 그는 판차노의 스무 개 정도 되는 양조장 가운데 최고의 품질로 알려진 폰토디(www.fontodi.it)를 가업으로 잇고 있는 남자로, 키얀티의 뿌리 찾기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집안은 피렌체 출신으로 테라코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아버지 뒤를 이어 조반니와 그의 형은 각각 와인과 테라코타 사업체를 분담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시골에서는 건물 신축이 아주 힘들다. 새 집을 짓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테라코타는 대박 비즈니스는 아니어도 꼭 필요한 사업이다. 지붕의 기와를 계속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물려받은 양조장의 수준을 확실히 올려다 놓았다. 80㏊의 포도밭에서 나온 산지오베제 품질은 키얀티 클라시코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키아니나의 육종에도 열심인데 현재 25마리를 키우고 있으며 체키니를 통해 가족이 먹을 것을 준비한다. 물론 체키니도 일부 판매한다.

     키아니나는 스테이크를 위해서뿐 아니라 포도밭을 비옥하게 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조반니는 설명한다. 소의 분비물과 포도나무 가지 그리고 발효 부산물 등을 혼합하여 유기농 비료를 제조하기 때문이다. 그의 포도밭은 80㏊의 대규모이지만, 밭의 유기물들이 살아 있도록 함으로써 고품질 와인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많은 양조장이 산지오베제 규정상의 비율만을 채우고 나머지는 외래 품종을 혼합하여 지역 와인을 만들어도, 폰토디 와인은 산지오베제 100%로 만든다. 토양이 까다로운 산지오베제를 완숙하게 만들기에 굳이 딴 걸 섞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와인여행자는 오래전부터 키얀티 클라시코의 숙성력이 궁금했다. 폰토디 양조장의 지하 셀러에 저장한 여러 ‘빈티지’(vintage)들을 모아서 수확연도별로 시음했다. 이 모든 와인들이 각자 스테이크가 있는 테이블에 오른다면 저마다 풍성한 밤을 제공했겠지만, 와인을 잔 속에 든 맛만 놓고 비교했던 그 밤의 기록은 역시 와인은 빈티지가 좋아야 맛도 좋고, 숙성력도 좋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보르도가 숙성력으로 위대한 와인 반열에 오른 것처럼, 키얀티 클라시코도 그럴까. 그걸 밝히는 게 폰토디 양조장 방문 목적이었다.

     우선 좋은 빈티지 다섯 해의 키얀티 클라시코가 개봉되었다. 2007은 더웠던 해다. 검붉은 색에다, 복합적인 아로마, 산딸기 향, 집중된 향기와 질감, 다채로운 과일 냄새가 풍겼다. 2001은 삼나무, 담배의 향기, 부케(익은 내), 온화하고 유연하며 벨벳과도 같은 부드러운 질감이 돋보였다. 1997은 몹시 더웠던 빈티지, 곰삭은 부케, 담배, 꼿꼿하고 간결하지만 속은 강건한 구조, 미네랄, 아직 조직이 열려 있지 않은 단단한 구조, 타닌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어 더 숙성할 수 있다. 1995는 서늘했던 해로 단내가 나며, 간결한 느낌, 산도의 활기가 돋보였다. 1990은 여전히 뻗치는 산도의 힘, 간결하면서 달콤한 느낌이 좋았다. 양조장에서 14유로에 파는 이 와인은 빈티지가 좋으면 이십 년이 흘렀어도 스무 살 청년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1은 나중을 위해 소장하고 싶다.  

    ◇폰토디(Fontodi)의 수확연도별 와인이 제공된 여러 빈티지 와인들.
    그렇다면, 빈티지가 좋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폰토디에서는 이럴 때 보통 최고급 브랜드를 생산하지 않고 모든 밭의 포도를 골라서 일반 키얀티 클라시코만 생산한다. 1989는 수확 중에 비가 내려 수확량의 90%를 벌크 처리하고 3만병을 생산했다. 아주 엷고 가벼운 스타일. 세월의 무게에 와인의 기력이 쇠했다. 1990년과 비교하면 약해도 너무 약하다. 1992는 1989처럼 수확 기간에 비가 많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렇게 완벽할 수 없었던 해로 9월 28일에 시작된 비는 한 달간 그치지 않았었다. 7만병 생산하고 나머지 23만병은 벌크로 매각했다. 양조장에서 이런 결정을 해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그저 와인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조반니는 말했다. 2002는 여름에 비가 많아 60%의 포도를 벌크 처리했는데 양파나 양념 냄새가 나며 입 안에서 별로 즐겁지 않았다. 2001과 비교해 보라. 한 해 차이지만 품질 차가 크다.

     조반니 마네티는 빈티지의 결과에 순응한다. 하지만, 품질의 일관성을 위해 빈티지가 좋지 않을 때에는 병에 담을 포도를 엄선한다. 이렇게 출시되는 폰토디 키얀티 클라시코는 믿을 만한 와인이다. 맛도 좋고 숙성력도 좋은, 거기다가 토스카나의 풍광까지 합해지면, 더욱이 쇠고기 한 접시랑 곁들이면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기에 충분한 와인이다. 300군데가 넘는 키얀티 클라시코 중에 폰토디를 기억하라. 키얀티의 뿌리를 찾는 조반니 마네티는 고급 와인의 뿌리에도 다가가고 있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추천 : 오스테리아 디 파시냐노(www.osteriadipassignano.com)

     ‘가족의 팔뚝에는 피 대신 와인이 흐른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패밀리 안티노리가 고향 토스카나에서 생산하는 고품질 키얀티 클라시코 와인가게 ‘오스테리아 디 파시냐노’는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식당이다. 식당에는 안티노리가 만드는 100여가지가 넘는 와인들이 모두 진열되어 있다. 우리나라 호텔에서도 초대되어 요리한 적 있는 주방장 마티야 바르출리는 페이스북에 여전히 그 당시 호텔의 동료들과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그를 보면 주방장은 음식만큼이나 붙임성도 좋아야 하나보다 느낄 것이다. 그가 보여준 요리의 유희는 메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토끼 고기의 전채나 가재새우로 만든 노란 라비올리는 모양도 맛도 뛰어났지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만든 젤라토는 참 기발했다. 기름 냉각시켜 오래 저으면 흰색의 아이스크림 모양이 된다고 설명했다. 숟가락으로 떠 먹으면 영락없는 올리브유 맛이다.

     밸런타인데이에 찾은 이 식당에는 우리 테이블 빼고 모두 남녀가 한 쌍씩 앉아 있었다. 손을 잡고 속삭이는 남자, 여자의 눈을 계속 응시하며 듣고 있는 남자, 와인 잔을 연방 돌리는 남자, 이런 남자들 틈에서 우리 테이블은 수다스러운 셰프의 친밀함을 체험하고 있었다. 이 쾌활하고 창의적인 미슐랭 원 스타의 스타 셰프는 프랑스 미슐랭 가이드의 서열이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는데 최소한 그 점수보다는 요리를 더 잘한다고 자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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