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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9> 이탈리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눌재 2011. 6. 28. 19:41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9> 이탈리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세계일보>
  • 입력 2011.03.31 (목)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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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성지 순례길, 몬탈치노 첫손 꼽혀
호텔보다는 민박집이 더 좋아
산꼭대기 세워진 돌마을 목가적 분위기
  • 이 세상 수많은 와인 가운데 와인전문가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몰리는 와인을 그것도 이탈리아에서 꼽으라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꼽고 싶다. 이 긴 이름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길진 않지만 가장 오래 숙성되는 와인이다. 이름을 외우는 데엔 제법 시간이 필요하지만, 외운 다음에는 그 익숙함으로 인한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향기가 신선하며 질감이 강건하고 묵직해서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맛이 일품인 와인이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5년째 출시하는 자체 규약에 따라, 2006 빈티지를 올해 2월에 선보였는데, 그 일로 인해 몬탈치노는 붐볐다. 행사를 주최한 조합원들은 해당 빈티지가 워낙 품질이 좋아 전문가들이 별 다섯 개를 수여했다며 고무돼 있었다.

    ◇몬탈치노의 목가적 분위기는 치프레시 나무, 포도밭, 올리브, 밀밭 그리고 기와를 올린 돌집으로 구성된다.
    몬탈치노 와인 행사 ‘벤베누토 브루넬로’는 필자로 하여금 매년 토스카나의 토속적인 생활을 엿보게 하지만, 지난 2월에는 민박집으로 숙소가 정해진 덕분에 좀 더 그들 속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이탈리아 와인의 성지 순례길을 꼽으라면 단연 첫손가락에 꼽힐 이 몬탈치노에 만약 애호가들이 여행을 온다면 호텔보다는 이러한 민박집도 좋다. 방에서 인터넷을 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단점을 찾기 어렵다.

    해마다 가 일주일씩 묵어가는 산성마을 몬탈치노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다. 바위에 ‘564m’라고 깊이 새긴 이정표도 그대로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돌집들이 무더기로 포진해 있는 이 마을의 식당이나 이발소, 미용실, 정육점, 찻집, 와인바, 구두가게, 옷가게 등도 그대로다. 식당의 365일 파스타 메뉴인 핀치 알 라구(고기 소스의 굵은 스파게티), 송로버섯을 곁들인 탈리아텔레(납작하며 길면서도 폭이 약간 있는 파스타로 파파르델레보다 폭이 좁다), 멧돼지 고기의 파파르델레(납작하고 길면서 폭이 아주 넓은 파스타) 등도 마찬가지다.

    시음용 탁자에서의 와인 이야기는 마음이 잘 맞을 경우 금방 식탁으로 이어져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에 필자는 몬탈치노의 식당 전부를 맛보았다. 단 지역인들이 추천하지 않는 곳을 제외하고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맛을 보기 위해 찾아나선 몬탈치노 여행에서 레스토랑 전체를 섭렵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양조장은 아직 방문하지 못한 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양조장의 수가 많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빈티지를 기념하는 타일 앞에선 한 몬탈치노 노신사.
    2006 빈티지의 맛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2005년보다 훨씬 뛰어났다. 2004만큼 품질이 좋았다. 와인바에서 큰 맘 먹고 토스카나 와인을 주문한다면 브루넬로 2004나 2006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외부인의 브루넬로라는 주제를 설정했다.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지니며, 돌집으로 다닥다닥 붙어 사는 오래된 산성 마을 몬탈치노의 와인 생산자는 여기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고 이어 발전됐다. 삼십 년 전만 해도 양조장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외부인들의 유입과 투자에 힘입어 오늘날 몬탈치노 언덕에는 약 300개의 양조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열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외부 출신 고품질 브루넬로 세 군데를 찾았다.

    피에몬테의 작은 마을 바르바레스코의 안젤로 가야는 1994년에 몬탈치노의 땅을 샀다. 포도밭 가운데에 있는 교회 이름을 따서 브랜드를 피에베 산타 레스티튜타로 정했다. 이탈리아 와인의 고급화에 공을 세운 걸로 따지면 안젤로 가야가 단연 일등인데, 무거운 책임의식이랄까 뛰어난 양조실력이랄까, 그로 인해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고급 이탈리아 와인의 세계가 열렸다. 가야의 몬탈치노 양조장에서 나오는 피에베 산타 레스티튜타는 고급 브루넬로로 인정받고 있다.

    26ha의 다소 중간 규모의 포도밭을 꾸려 나가는 안젤로의 장녀 가이아 가야(Gaia Gaja)는 교회에 안치된 레스티튜타 성녀의 유골함을 보여주며, 이 교회의 역사성과 포도밭과의 연관성에 대해 자부심 어린 설명과 함께 고증한 역사자료를 거침 없이 뱉었다. 여기서 만드는 세 가지 브루넬로 중에 ‘참나무 숲’이란 뜻의 수가릴레(Sugarille)는 단일 포도밭에서 나온다. 품질도 가장 뛰어나다. 수가릴레 2006의 색은 좀 진한 편이고 타닌의 양이 엄청났지만 거칠진 않아 힘과 복합미가 공존했다. 뚝심이 느껴져 후일을 기약하는 숙성력이 기대된다.

    알토 아디제(영어로 사우스 티롤) 지방 출신의 하요 로아커(Hayo Loacker)는 1996년에 아버지가 매입한 코르테 파보네(Corte Pavone)를 줄곧 맡고 있다. 그는 몬탈치노에서도 손꼽히는 유기농과 비오디나미 농법의 실행자다. 매주 한 번씩 알토 아디제 집을 떠나 몬탈치노로 와서 밭과 셀러를 확인하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편에 차 짐칸에 고향 마을사람으로부터 주문 받은 브루넬로 상자를 가득 실을 때 기쁘다고 했다.

    코르테 파보네는 해발 500m에 밭과 셀러가 조성되어 있고 몬탈치노 산등성이가 맞은편에 훤히 보인다. 몬탈치노 정상에서 보이는 이곳의 진입로는 멋지다. 페라가모 소유의 양조장 사람들이 매일 이 길을 통해 출근해도 해요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코르테 파보네의 뜻은 ‘공작새의 산’인데, 말처럼 진입로의 치프레시 나무가 공작새의 깃털처럼 보이며, 깨끗한 환경을 좋아하는 공작새가 머물 만한 공간이었다. 그는 포도밭에 살고 있는 갖가지 생물이 땅의 기운을 북돋아서 포도가 활력이 생긴다 했는데, 맛을 보니 이해가 됐다. 2006 브루넬로의 맛은 아주 뛰어났다. 자줏빛을 띤 투명한 빛깔에 아주 두꺼운 질감을 지녔다. 미네랄 향취가 풍부하고 농축미가 있으며 뒷맛은 폭발적일 정도다. 

    ◇코르테 파보네의 2006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역시 알토 아디제 출신의 카롤리네 포비처(Caroline Pobitzer)는 독일인 남편 얀 에르바흐(Jan Erbach)를 몬탈치노에서 만나 2000년에 결혼한 후 피안 델로리노(Pian dell’Orino) 포도밭을 가꾸고 있다. 그들은 철처하게 유기농을 고집한다. 이미 독일, 스위스에서는 유기농 와인에 대한 큰 수요가 있어 판로는 염려 없다고 한다. 포도밭 고랑 사이에 심어둔 수십 종의 식물들은 추수 전까지 다채로운 빛깔과 방향을 선사하며, 그들은 심지어 도마뱀을 위한 서식처까지 마련해 두고 다양한 생명체의 공존을 통해 토양의 건강함을 추구한다. 이 집 브루넬로는 상당히 섬세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지녔으며, 꽃 향기와 삼나무 향기가 신선하게 풍겨 풍미가 근사하다. 물론 중심에는 확고한 뼈대가 받치고 있는 강건한 와인이다.

    피안 델로리노는 외부로부터 양조 도움을 받지 않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독일 양조학교 가이젠하임 출신인 그는 오히려 주변 양조장을 컨설팅한다. 함께 유기농법을 실천하는 시칠리아 출신의 살리쿠티 양조장과 로마 출신의 산 주세페 양조장과는 산지오베제 연구팀(SPA)을 결성해 더 좋은 품질을 추구한다. 요기거리로 제공한 바바리안 스타일의 흰 소시지를 몬탈치노에서 먹는 동안에 이국적인 기분이 들었다.

    빈티지 2006이 아무리 뛰어난 맛을 준다고 해도 모든 양조장의 와인 맛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고급 와인의 대표 주자인 몬탈치노로 지금도 많은 외부인들이 양조의 기회를 찾아 출장을 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까 무척 망설여질 것이다. 품질에 비해 명성이 너무 고평가 되고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추천한 브루넬로는 거칠거나 쓴 맛이 전혀 없으며 탁월한 신선한 향기에 고운 질감, 그리고 단단한 구조를 갖추어 브루넬로의 명성을 이어갈 와인이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추천 : 오스테리아 포르타 알 카세로(Porta al Cassero)

    오스테리아는 바 기능을 겸하는 식당으로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몬탈치노 꼭대기에 있는 성에서 가까운 이 식당은 토박이 가족이 꾸려 나간다. 핀치라고 부르는 면발이 굵은 파스타는 전통적으로 라구 소스(고기 소스)에 비벼 먹는다. 인근 마을 몬테풀치아노에서는 ‘피치’라고 부른다. 와인의 맛은 몬탈치노가 우세하지만 핀치의 맛은 의견이 갈린다. 기회가 있다면 이곳의 핀치와 몬테풀치아노의 피치를 비교해 보는 것도 토스카나 관광의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정식 이름 ‘핀치 알 라구’ 일 인분을 시키면 작고 속이 얕은 그릇으로 나온다. 맛은 ‘맛의 달인’편에 나올 만한 수타 쇠고기 자장면 같다. 가족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포르타 알 카세로의 ‘핀치 알 라구’는 값도 저렴하고, 고기 맛이 진하며 면발이 쫄깃쫄깃하므로 틀림없이 만족할 것이다. 한 접시 8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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