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여행▶/와인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7> 이탈리아 베니싸 와인

눌재 2011. 6. 28. 19:35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7> 이탈리아 베니싸 와인<세계일보>
  • 입력 2011.03.02 (수) 21:05, 수정 2011.03.02 (수) 22:04
‘예외적인 환경’ 물의 도시 베니스 부속섬서 옛 포도 ‘도로나’ 재배
2월에 출시… 카니발 축제등 어우러진 환상적여행 곁들이면 ‘묘미’
  •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의 여행은 여름보다도 겨울이 좋다. 여름에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바캉스를 떠나 빈 가게들이 많아 관광의 맛이 떨어진다. 겨울 중에도 2월이 좋다. 12월은 가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기도 하므로 장화를 신고 다니기 싫다면 그 계절을 피해야 한다. 2월이 낫다. 특히 가면축제로 유명한 카니발이 2월에 열려 볼거리가 더 풍성해진다. 포도는 황량하고 건조한 데서 잘 자란다. 하지만 가끔 예외가 있다. 강과 바다, 운하까지 도시를 물로 촘촘히 갈라 놓고 있는 베네치아, 그 부속 섬에서도 와인을 만들고 있다. 물이 그렇게 많은데 와인을 만든다고 하니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베니스에 달린 부속 섬 부라노는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형형색색의 주택으로 유명하다.
    예외적인 지형의 와인은 어떤 맛일까. 이런 극한적인 와인을 찾아 나서는 기분은 와인 여행자에게 항상 도전이고 과제라서 무척 설렌다.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 아드리아 연안의 구릉지에 널리 재배되는 말바시아 비앙코가 아닌 다른 청포도로 만든다고 한다.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었던 수백년 전의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는 베네치아의 한 작은 섬으로 떠나는 와인 여행자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다. 베네치아 유람은 부가적 유희일 뿐이지만, 일반 여행자에게는 그것 자체가 희망 1순위란 사실을 와인 여행자도 자명하게 안다. 와인의 핵심은 항상 포도밭이지만, 여행은 그 밭과 어우러진 환경을 통째로 맛보게 되는 것인 까닭에 옛 베네치아 와인을 맛보는 여행은 곧 베네치아 여행으로 치환되고야 만다.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의 손꼽히는 양조장 비솔(www.bisol.it)을 이끄는 잔루카 비솔(44)은 2002년 어느 날 토르첼로 섬에서 큰 발견을 했다. 베네치아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발도비아데네, 즉 프로세코의 본고장에 살고 있는 그는 베네치아 대학을 다녔을 때에도 이 섬을 멀리서만 보았지 제대로 살펴보진 않았었다. 더구나 거기 오래된 포도밭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토르첼로는 최초의 베네치아였다. 지금의 베네치아가 번창하기 전에 가장 번성했던 섬이다. 언어의 사냥꾼 헤밍웨이는 여기서 몇 날을 보내며 영감을 얻어 갔으며, 엘리자베스 여왕도 다녀갔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 촌부는 “지금은 고작 17명이 살고 있지만, 한때는 3만명까지 살았으며, 교회도 아주 많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교회는 고작 두 개뿐이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살펴볼 만하다. 사람보다 닭이나 고양이의 숫자가 더 많다. 

    ◇마르코 광장의 카니발 축제에 참가하려는 여성들이 미리 가면을 써보며 여행의 흥을 돋우고 있다.
    1542년부터 포도밭을 가꾸는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잔루카 비솔은 현재 21대째 양조를 천직으로 삼고 있는 집안의 가장이다. 매년 약 200만병의 프로세코를 병입하지만, 자신이 직접 가꾼 포도로만 와인을 만드는 고지식함을 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그에게 “왜 베니사 프로젝트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베니사(www.venissa.it)는 베니스의 옛 와인을 복원하는 프로젝트이다. 토르첼로 섬의 오래된 포도밭를 보고 막연히 베니스의 와인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는 이후 개인적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찬란했던 베니스 시절에는 과연 어떤 와인을 마셨을까에 대한 물음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2006년 베니스 시에서 마초르보 섬의 한 버려둔 농장을 복원할 희망자를 물색했을 때 자신이 적임자임을 느꼈고 15대 1의 경쟁을 뚫고, 드디어 연구를 상업적으로 완성할 기회를 잡았다.

    “나는 베네치아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와인 양조가로서 과연 선조들은 그 시절에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 궁금하다. 마초르보에서 그런 옛 와인을 재현해낼 수 있다면 참 보람 있는 일일 것이다.”

    잔루카는 포도밭 옆으로 작은 숙박시설과 레스토랑 그리고 텃밭까지 조성했다. 밭에는 브로콜리, 양배추, 양상추, 아티초크 등을 가꾼다. “도대체 어떤 포도를 키우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잔루카는 “도로나”라고 답했다. 도로나는 금포도란 뜻으로 금빛이 난다는 말이다. 마초르보 농장에서 골라낸 건강한 포도나무를 식물학 전문가가 베네치아의 옛날 포도 ‘도로나’라고 최종 확인했다.

    ‘베니사’라는 이름은 한 시인이 읊은 대로 베니스의 다른 표현이다. 베니사는 부르고뉴 식으로 보자면 클로 와인이다. 부르고뉴의 좋은 포도밭이 어김없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듯이 마초르보의 포도밭 역시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밭 가장자리에 있는 종탑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마초르보 섬에 조성된 베니싸 포도원에서 베니싸 대표 잔루카 비졸, 양조컨설턴트 프란체스코 치프레소와 함께 기념 촬영한 필자(왼쪽).
    이 담을 넘으면 바로 석호다. 바닷물이 유유히 흐르며 바람에 소금기를 잔뜩 싣고 온다. 매서운 바람은 농작물의 속을 시리게 만든다. 베니싸는 담장에 쌓여 석호의 바람이 들지 않는다. 바람 속의 소금기가 포도밭으로 덜 유입된다. 담에 가린 포도밭은 주변보다 기온도 높다. 특히나 도로나는 이러한 극한의 환경에 아주 익숙한 채 수백년을 살아온 품종이다.

    갤럭시S로 토크를 즐기는 이 이탈리아 남자를 따라 발도비아데네의 프로세코 양조장으로 따라갔다. 거기서 베니사 2010년 빈티지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와인은 현재 양조 컨설턴트로 일하는 프란체스코 치프레소의 몬탈치노 양조장에서 숙성 중이지만 샘플이 한 병 있다고 했다. 프란체스코는 ‘라 피오리타’를 소유하는 자로서 전 세계 20곳의 양조장에 도움을 주는 전문 양조가이다.

    2ha 포도밭에서 4년 된 도로나를 약 2500ℓ 만들었으니, 참 저수확이다. 보통 수확의 20%에도 못 미친다. 수령이 낮은 탓도 있지만, 좋은 포도만을 골라 최고의 맛을 얻으려는 의지라고 보면 맞겠다. 판매용으로 4880병을 0.5ℓ 들이 병에 담을 거라고 하며,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베니사 레스토랑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베니사 2010의 빛깔은 금빛이 났다. 아마도 양조가가 이름처럼 되길 바랐을 것이다. 향기는 바다 내음이 났다. 짠 내와 해조류 말린 냄새, 거기다 꿀 향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4개월간 껍질을 분리하지 않고 굵은 질감과 빛깔을 얻었다. 중성적인 아로마에다 산도와 염도의 균형이 돋보였다. 도수 11%는 매력적이다.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마셨을 법한 베니사를 마시러 내년 2월에도 보따리를 싸야겠다. 2월에 출시한다고 하니 카니발 축제도 함께 관람하면서 말이다. 잔루카, 그는 베네치아의 와인 상인이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 추천 로칸다 치프리아니(www.locandacipriani.it)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없다. 배를 타야 딴 섬으로 갈 수 있다. 베네치아에서 토르첼로 섬까지 바로 가진 못하고, 부라노에서 배를 갈아탄다. 바쁘다면 수상택시를 타면 삼십 분 좀 걸린다. 그래도 토르첼로 섬에 갈 만하다. 거기가 바로 최초의 베네치아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구역이 바다에 쓸려 육지로 보이지 않지만 흑사병이 창궐하기 전까지는 토르첼로가 베네치아였다. 여기서는 로칸다 치프리아니에 묵어라. 로칸다는 여관과 레스토랑이 합쳐진 형태다. 치프리아니의 방은 아주 깨끗하고 따뜻했으며, 레스토랑의 음식 맛이 훌륭했다. 2월 중에 묵는다면 꼭 모에케란 이름의 게 튀김을 먹어야 한다. 말랑말랑한 게 껍질이 슬슬 입에서 녹는다. 그리고 파스타로는 맛조개 비골리(베네토 지방의 스파게티)를 추천한다. 토마토의 신맛과 맛조개의 기름진 맛에 비골리의 점성이 입안에 짝 붙는다.

    앙드레 브레송도 여기 묵으며 풍광을 사진기에 담았다. 헤밍웨이는 동부인하여 베네치아식 화로에서 즐겨 담소를 나누었으며 그 사진도 호텔 벽에 걸려 있다. 쌀쌀한 날씨에 언 손을 그 화로가 따뜻하게 녹여줄 것이다. 헤밍웨이에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