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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1> 프로방스, 아비뇽, 유서 깊은 양조장 샤토 보카스텔

눌재상주사랑 2011. 6. 28. 19:44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1> 프로방스, 아비뇽, 유서 깊은 양조장 샤토 보카스텔<세계일보>
  • 입력 2011.04.28 (목)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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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묵은 지하 저장고로 내려가서 시음
2009·2007·2003은 찬란했던 태양의 시대를 표현
햇볕 깊이 머금은 자갈 반사열로 포도 익혀
  • 반 고흐의 눈에도 세잔의 눈에도 스며들던 햇빛 조각들은 프로방스를 찾은 필자의 작은 눈에도 무지개처럼 곱게 찾아들었다. 로즈마리가 사람 키처럼 자란다는 프로방스, 남프랑스의 고즈넉한 여유가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프로방스는 특별한 와인도 품고 있어 자연과 역사 그리고 예술을 추구하는 세련된 여행자들에게 와인과 식도락의 풍미까지 제공하는 후덕함이 특징이다.

    땅바닥에 바싹 붙은 포도나무와 무수히 많은 자갈돌의 조합이 샤토뇌프 뒤 파프를 잉태한다.
    ‘프로방스에서의 1년’을 써낸 피터 메일에 의해 프로방스가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19세기에 이미 후기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프로방스의 풍광은 풍성하고 따사로운 태양빛과 지중해의 온화함이 시너지를 이루는데, 로마 시대에는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길목 역할을 했다.

    프로방스를 여행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 고대 로마의 식민지 개척에 이용된 도로를 따라 가는 방법이 있다. 로마에서 출발한 군대는 알프스를 오른쪽으로 두고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비아 도미티아’는 원형경기장으로 유명한 님을 지나 바르셀로나로 이어져 스페인까지 진군하도록 한 길이다. 

    도시 님에는 검투사들의 전당 원형경기장뿐 아니라 신전 메종 카레도 남아 있는데, 아주 보존 상태가 좋아 얼마 전에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도시 오랑주에는 극장이 제대로 남아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마침 공연하고 있었는데, 로마시대의 유령이 아직도 살아 남아 크리스틴에게 노래 지도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프로방스의 큰 도시로는 아비뇽이 있다. 역사 수업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어찌된 일인지 필자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고교 시절 익혔던 세계사의 사건들이 낱말로 박혀 있다. 

    거대한 돌덩어리로 구축된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은 널리 알려진 대로 교황이 바티칸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갇히게 된 사건으로 유명하며, 이 또한 로마 시대의 식민도시 가운데 하나다. 교황의 의지로 건설된 아비뇽 다리는 당시 최고의 건축 기술로 구축되었지만, 큰 물난리로 일부가 소실되고 말았다. ‘생 베네제 다리’로 호명된 이 다리 위에서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평화 시대를 즐겼다. 지금도 자주 불리는 동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의 노랫말처럼.

    로마 군대는 남프랑스에 식민도시를 건설하면서 주둔지에 포도밭은 조성하였다. 군대라고 해서 먹고 마시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 역할을 하고 있는 와인은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널리 재배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교황은 아비뇽에 큰 집을 짓고 살면서 근처 토질이 좋은 마을을 골라 포도나무를 재배했다. 그 마을 이름은 샤토뇌프 뒤 파프. 발음이 복잡하고 일개 샤토 이름 비슷하지만, 이는 마을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다. 번역하면 ‘교황의 새로운 성’.

    샤토뇌프 뒤 파프는 프로방스에서 가장 좋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 아비뇽으로 유유히 흘러 지중해로 가는 론강을 따라 알프스에서 쪼개진 돌들이 이곳에서 자갈 마당을 이뤄놓아 포도밭은 온통 자갈투성이다. 봄에 땅을 파서 밭에 생기를 불어넣을 때에는 우선 소형 밭 가는 기계가 땅을 후벼 파고, 다음에 사람이 괭이질을 해서 마무리한다. 사람 손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포도나무 근처에 잡초가 많아 김매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샤토 보카스텔 지하셀러에서 맛본 와인 중에 ‘78’이라 표시된 작은 병이 1978년 빈티지 샤토뇌프 뒤 파프.
    유서 깊은 양조장 샤토 보카스텔(Chateau Beaucastel)을 찾았다. 진입로 양편으로 조성된 밭에는 난쟁이 꽃 같이 땅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은 나무가 인상적이다. 거칠고 황량한 자갈밭에서 길어낸 자양분을 나무에 전달하려면 줄기가 최대한 땅에 붙도록 짧아야 한다. 그래야 태양빛을 깊이 머금은 자갈들이 반사열을 나무에 전달할 수 있다. 토스카나처럼 키프로스나무가 주변 풍광을 장식하는 샤토뇌프 뒤 파프는 이렇듯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특이한 토양이 개성이다.

    포도나무들의 배열 또한 다른 모양이다. 한 줄로 늘어서지 않고, 정방형으로 나무가 박혀 있다. 나무들을 잇는 철사도 없다. 샤토 성주 피에르 페랭(Pierre Perrin)은 “표토가 워낙 험하고 거칠어 밭을 좌우로 갈아야 하는 관계로 나무를 정방형으로 배열한다”고 말했다. 밭 가는 기계는 우선 좌우로 밭을 간 다음에 방향을 꺾어 상하로 다시 밭을 간다. 아주 독특한 방법이다.

    19세기 말에 포도밭이 필록세라(Phylloxera 진드기 일종)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사건은 ‘교황의 포도밭’도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농민이 떠나고 포도밭은 황량한 흙더미로 남아 버렸다. 1909년 이 샤토를 매입한 페랭 일가는 필록세라 이전에 번성했던 포도밭을 재건하기로 결심하고, 전통 방식대로 무려 열세 가지나 되는 포도를 여기저기에 심었다.

    샤토뇌프 뒤 파프의 허용 품종은 열세 가지다. 양조장에 따라서는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들지만, 샤토 보카스텔은 원래대로 다 키워 다 섞어 만든다. 주품종으로는 그르나슈(Grenache), 무르베드르(Mourvedre), 시라(Syrah) 등이다. 가장 많이 재배하는 그르나슈가 포도즙이 산소에 약한 편이라 샤토뇌프 뒤 파프를 위시한 남부 론 지방에서는 체적이 큰 오크통에서 와인을 숙성한다. 반대로 시라 품종이 지배적인 북부 론 지방은 작은 통에서 한다.

    피에르 페랭이 이끄는 대로 수백 년 묵은 지하 셀러에 가서 시음을 했다. 네 가지 샤토뇌프 뒤 파프를 맛봤다. 2009, 2007, 2003은 완숙한 포도가 찬란했던 태양의 시대를 표현했다. 힘이 넘치며, 각종 과일의 농익은 향내가 뿜어난다. 그르나슈의 단내와 알코올 느낌, 무르베드르의 신선한 감촉, 시라의 양념 맛 같은 풍미가 고루 잘 녹아 있다. 마지막으로 맛 본 1978년은 샤토 보카스텔의 숙성력을 여지 없이 보여준다. 꼿꼿한 타닌으로 무장된 외투를 입은 것 같은 서른세 살의 그 와인은 몇년 전에 코르크를 교체한 후 반 병짜리에 나누어 담았다. 체적이 반으로 준 1978은 더 많은 산소와 싸우면서도 놀라운 탄력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도 더 익을 수 있어 와인 애호가들의 사냥감이 될 만하다.

    교황의 와인으로 거듭난 고도 샤토뇌프 뒤 파프는 프로방스의 너그러운 태양과 강물이 날라준 옹골찬 자갈 덕분에 주말이면 일반 여행자들이 붐빈다. 이 고장 최고의 와인을 찾는다면 샤토 보카스텔 방문을 추천한다.

    ◆ 추천 : 노천 카페 ‘라 뮐 뒤 파프(La Mule du Pape)’

    카페 ‘라 뮐 뒤 파프’의 오늘의 메뉴는 갑각류의 껍데기를 끓여 만든 비스크 수프 속에 각종 해산물과 닭고기를 넣고 졸인 음식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첫 단편집에는 ‘교황의 당나귀’라는 글이 실려 있다. 아비뇽에 머물렀던 교황과 그 당나귀에 관한 우스꽝스런 이야기인데, 역사는 교황들을 그렇게 덕망 있게 서술하진 않았다. 샤토뇌프 뒤 파프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라 뮐 뒤 파프(교황의 당나귀)’는 길가에 식탁을 차려 쉬기 위한 여행자들로 무척 붐빈다. 세 가지 코스에다 디저트, 커피까지 합쳐 13.65유로로 아주 알뜰한 정찬을 즐길 수 있다. 지중해에서 나온 새우나 조개, 내륙에서 기른 닭이나 오리 고기가 준비되어 풍성한 프로방스의 식탁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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