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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6> 佛 생테밀리옹 샤토 트로롱 몽도

눌재 2011. 6. 28. 19:29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6> 佛 생테밀리옹 샤토 트로롱 몽도<세계일보>
  • 입력 2011.02.16 (수) 21:00
양조 컨설턴트 자문받고 사람 손으로 처리 품질개선
메독과 달리 10년마다 등급심사… 희비 엇갈리기도
  • 외서 ‘페리고르의 중매쟁이’는 보르도 이웃 지방을 무대로 한 장편이다. 33인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이발사 출신 주인공이 중매쟁이로 변신해 우스꽝스러운 연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내용이다. 모여 사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훤히 알고 있다. 페리고르 마을을 생테밀리옹 마을로 치환해도 마찬가지다. 주로 포도밭을 가꾸고 사는 주민들이 생테밀리옹 마을을 이룬다.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밥숟가락 수도 알고, 끼리끼리 모여 교회에 가고, 결혼도 한다. 하지만 분란이 쌓이면 걷잡을 수 없다.

    ◇샤토 트로롱 몽도로 가는 길에 조성된 메를로 포도밭.
    2006년 생테밀리옹 주민 자비에르 파리엥트는 뛸 듯이 기뻤다. 가문의 영광이라며 감개무량했다. 십 년 주기로 벌어지는 등급 심사에서 꿈에 그리던 등급 상향이 이뤄진 것이다. 자신이 승진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와인의 생명력은 인생보다 더 길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인 크리스틴 발렛트와 함께 양조장에 인생을 걸었다. 샤토 트로롱 몽도(Chateau Troplong Mondot)는 그들의 가업이다.

    메독 등급과 달리 생테밀리옹 등급은 십 년마다 등급을 평가한다. 등급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한번 1등급 지정을 받은 메독 샤토는 150년이 휠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1등급이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등급이 발표되면 한 쪽에서는 환호를 지르고, 또 다른 쪽에서는 곡을 한다. 자비에르의 꿈은 이뤄진 듯했다. 그는 먼저 와인의 라벨 디자인을 변경했다. 등급이 그랑 크뤼 클라세에서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 B로 한 계단 상승해 라벨을 교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확연도별 시음에서 단연 돋보인 빈티지는 2005. 2006부터는 등급이 그랑 크뤼 클라세로 표시되고 있다.
    나무 상자에 새기는 판형도 교체했고, 편지봉투와 편지지 등 샤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모든 대목을 변경했다. 이 모든 지출은 휘파람을 부르며 집행되었으며, 지난 20여년간 투입한 자금과 열정이 보상받는구나 했다. 한편 등급이 내려간 샤토는 피눈물을 흘리며 결과에 떨었다. 그들은 막대한 영업 손실을 떠안기 전에 법원을 찾았다. 등급 산정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등급효력 가처분 소송 같은 것을 제기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마을 생테밀리옹 주민들이 대가족처럼 뭉쳐 사는 고도는 소송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소동을 겪었다. 최근 프랑스 법원은 2006년 등급 심사의 효력을 정지하고, 2012년 중으로 재심사하기로 했다.

    ◇고풍스러운 앤틱 가구들로 장식된 사택 응접실.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의 단편 ‘맛’과 ‘목사의 기쁨’ 둘 다 읽으면 생각나는 와인이 바로 샤토 트로롱 몽도이다. 소설 속 와인 애호가가 빠지는 맛의 세계와 가짜 목사가 탐닉하는 장인 가구의 멋이 이 샤토와 연관성이 있다. 자비에르는 와인 양조도 하지만 앤틱 가구 딜러로도 활동한다. 샤토 구석구석에 서 있는 오래된 가구를 보면 소설에서 감탄해 마지 않던 대단한 귀족 가구들이 많다. 등급 결과 유보에 상한 마음을 그는 가구를 보며 달랠지도 모른다.

    샤토 트로롱 몽도는 생테밀리옹 와인 맛의 비밀인 석회암 지대에서 꽤 떨어져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끝자락에 달려 있어 테루아의 묘력을 간직하고 있다. 해발 100m의 비교적 높은 언덕 정상에 위치한 이 양조장으로 이르는 오르막길에는 거대한 물탑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17세기 수도원과 부속 포도원이던 곳을 안주인 크리스틴의 선조가 매입했고, 붙어 있는 샤토 파비 역시 조상이 같이 관리했다. 포도원의 크기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하지만 프랑스 슈퍼마켓 재벌이 거액을 준다고 했을 때 파비는 팔렸고, 지금 발렛트 가문은 트로롱 몽도만을 운영한다. 트로롱 몽도의 포도밭에서 내려다보면 샤토 파비가 한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샤토 트로롱 몽도는 이웃 양조장에 비해 규모가 크다. 평균 10ha의 크기에 세 배가 더 큰 포도원을 운영한다. 그러니 품질의 일관성 유지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다. 1980년대까지는 등급 수준에 맴돈 양조장이다. 완숙되지 못한 포도가 주는 비릿함과 각진 타닌, 날 선 구조감 등으로 맛의 성격이 규정지어졌다. 하지만 등급 상향이 결정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후 와인의 맛은 휠씬 좋아졌다. 향상되었다.

    ◇샤토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사택에 다섯 자매를 둔 부부가 산다.
    1980년대에 들어 세계적인 와인 양조 컨설턴트 미셸 롤랑의 자문을 받으며 사반세기 동안 품질 향상에 힘쓴 결과다. 우선 수확의 시기를 늦추었다. 포도가 완벽하게 익을 때를 기다렸다. 기계수확을 하던 관행도 버렸다. 30ha 포도밭을 모두 사람 손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포도의 품질을 확실하게 챙긴다는 의지이다. 미셸이 조언한 대로 숙성을 위해 새로운 오크통을 많이 구입했으며, 새 오크통에 담아두는 기간의 비율도 증대했다. 또한 여름 포도밭에서 열매솎기 즉 그린 하비스트도 시행하여 단위면적당 수확량도 줄였다. 포도에서 완숙미와 농축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 양조 설비를 현대화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으며 거대한 자금이 투자된 것은 불문가지다.

    오직 메를로의 정연한 맛을 내기 위해 갈고 닦았다. 포도밭의 9할이 이 포도이다. 2005년이나 1990년 트로롱 몽도를 맛보면 그 예외적인 정연함과 풍성함에 입 안이 감격한다. 완숙한 메를로가 풍기는 과도함이 없는 화려함, 그리고 지나치지 않는 호사가 깃든 관능미가 액화된 와인이다.

    다섯 자매를 둔 파리엥트 부부의 큰 딸 이름은 마고이고, 그녀 역시 와인 양조에 나섰다. 1990년 빈티지의 품질에 놀란 애호가들은 2005년 빈티지를 맛보고는 맛의 향상에 박수를 쳤다. 등급 상향 유보에 대한 재심 결과가 궁금해진다, 상향에 한 표를 걸면서….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 추천 : 일요일 오전 노천 시장

    주말을 생테밀리옹에서 지낸다면 일요일 아침 부케르 광장(Place Bouqueyre)으로 갈 필요가 있다. 타운으로 접어드는 오르막길 입구 왼편에 자리 잡은 이 광장에는 주로 관광객용 버스나 렌터카가 주차하는 곳이지만, 차들이 오기 전인 일요일 오전에는 지역인들의 시장이 서기에 토속적인 풍광을 볼 기회다. 무엇보다 풍성한 푸아 그라를 구경할 수 있다.

    거위 간과 오리 간으로 만든 통조림들을 크기별로 쌓아두고 손님을 맞이하는 촌부들 사이로 올리브 기름을 담아 파는 수레도 있고, 치즈며 과일이며 각종 푸성귀도 한아름 쌓아두는 사람들 사이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귀족의 서열 못지않은 엄격한 품계로 나뉘어진 생테밀리옹 와인 등급에 포함되지 않는 소박하고 털털한 맛의 이름 모를 와인도 엉성한 라벨을 띤 채 팔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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