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1.05.12 (목) 21:12
와인 경험의 척도로 쓰여
- ‘로스트된 언덕’이라 번역되는 코트 로티(Cote Rotie)는 프랑스 와인 중에서 아주 섬세하고 화려한 향기로 유명하다. 이곳 역시 로마인들의 와인 양조 전통이 가득한 곳이라 도처에서 로마 유물이 발굴되었지만, 기갈 양조장의 고품질 코트 로티가 없었다면 여전히 저급한 와인을 대량생산하는 곳으로만 알려졌을 공산이 크다.
현 양조장 대표 필립 기갈과 그의 부친 마르셀 기갈, 그리고 조부 에티엔 기갈, 이렇게 삼대가 애를 써서 이룩한 와인 브랜드 기갈(www.guigal.com)은 코트 로티뿐 아니라, 론 계곡 전체에서 가장 성공적인 양조장이다.
론 강 너머 남동향에 자리 잡은 샤토 당퓌(Chateau d’Ampuis)는 론 지방 와인의 대표주자 기갈 양조장의 본거지이며, 여기 지하에서 매년 육백만 병의 와인이 생산된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양대 산맥에 가린 론 계곡은 아비뇽을 시작으로 론 강을 거슬러 북으로 오르면 코트 로티에 다다르는 아주 긴 와인 산지이다. 하지만 같은 강의 기슭에 발달한 포도밭이니 하나의 집합으로 묶인다.
론 계곡의 양조장을 말할 때 기갈을 빼놓으면, 속 없는 만두 꼴이다. 상큼한 과일 아로마에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신맛을 주는 피노 누아의 매력에 빠지지 않는 이가 없으며, 십 년 이상 묵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뻣뻣한 구조감에다 놀라운 탄력을 제공하는 보르도의 묘미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론은 어떤가. 품종 그르나슈와 시라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 질리기 쉬우며 생경한 양념 맛과 같은 매운 느낌은 와인에서 풍기는 거라 믿기 어려울 만큼 낯설다.
필립 기갈이 수확기 포도 반입처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기갈 양조장의 성공으로 인해 인근 포도원 농부들은 자신들의 포도를 지속적으로 팔 수 있다.
와인잡지 ‘디캔터’는 마르셀 기갈을 2006년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는 로버트 몬다비, 로마네 콩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예이다. 그가 선정된 이유는 코트 로티의 미니 포도밭 덕분이다. 여성 정관사 ‘라’로 시작하는 라 물린, 라 튀리크, 라 랑돈 덕분이다.
세 포도밭에서는 각각 6000병, 1만병, 5000병이 생산된다. 면적이 겨우 1∼2ha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땅이 타 들어갈 정도로 내리쬐는 뙤약볕에 조성된 코트 로티 포도밭 가운데에서도 가장 비탈지고 가장 많은 일조량을 얻는 구석들에서 양조된다. 아주 비탈지면 60도 정도 꺾어진다. 그런 밭에서는 아무리 수확기간이 즐겁다고 해도 콧노래 부르며 일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기갈 양조장의 명성을 얻게 한 단일 포도밭의 코트 로티, ‘라라라’ 와인들.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이 진행하는 ‘와인 코스’라는 영상물엔 얼마나 열성적으로 이 한정 생산 와인들을 구하려 하는지가 잘 설명되어 있다. 어떤 이는 스포츠카를 줄 테니 라라라 시리즈를 달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백지수표를 내밀기도 한다. 라라라는 희소성의 미학이 극도로 드러나는 와인이다. 마르셀 기갈은 사업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정 수량의 라라라를 구입하기 위한 조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다른 와인을 일정량 구매해야 라라라를 살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해서 마르셀은 론 밸리 지역에서 갑부가 됐고 와인의 유명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2007 코트 로티를 시음했다. 일반 코트 로티에 이어 샤토 당퓌 코트 로티는 커런트 향기에다 제비꽃향기가 치밀어 오르고, 섬세하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이어 라 물린은 수풀 내음이 나고, 감초 맛에다 유연함이 있다. 라 튀리크에서는 과일 향기가 더 풍부하게 난다. 라 랑돈은 고추씨기름 같은 매운 느낌이 확 풍기는 아주 긴장감 있는 와인이다. 묵직한 기운이 돋보이며 여운이 무척 길다. 파커는 최근 이 와인을 98∼100점으로 평했다.
라 물린이나 라 튀리크에 비해 라 랑돈이 항상 묵직하고 강건한 이유는 포도의 출신지가 달라서이다. 라 랑돈과 라 튀리크는 모래와 석회암 토양에서이고, 라 물린은 산화철이 많이 포함된 토양에서 나온다. 라 물린과 라 튀리크는 약간의 비오니에를 혼합하는 까닭에 상쾌한 과일향기가 두드러져 입 안에서 청량감을 선사하는 반면, 비오니에를 일절 섞지 않는 라 랑돈은 거친 남성적인 스타일이 된다.
아로마면에서 피노 누아를 어느 정도 연상하게 만드는 코트 로티는 규정상 20% 범위 내에서 청포도 비오니에를 혼합할 수 있지만, 기갈은 보통 7∼10%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대신 라 랑돈은 비오니에 없이 시라 단독으로만 양조하여 차별화를 꾀한다. 무더운 기후가 잉태한 코트 로티는 태생적으로 약점이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청포도 혼합으로 숙성력에 결핍이 생긴다. 하지만 이국적인 아로마에다 고혹적인 과실미가 충만한 라라라는 최장 삼십 년 정도는 문제 없어, 애호가의 셀러를 차곡차곡 채우고 있다. 그때에도 SG워너비의 ‘라라라’가 불릴 것인지 궁금하다. 기갈의 라라라, SG워너비의 라라라, 누가 오래 남을 것인가.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코트 로티 인근에 위치한 콩드리유 마을에는 아름다운 강 기슭에 조성된 호텔 ‘보 리바주’가 있어 여행자를 품어준다.
콩드리유 마을의 호텔 보 리바주(www.hotel-beaurivage.com)
론 강의 탁 트인 전경을 제대로 즐기는 호텔이다. ‘보 리바주’는 이름대로 ‘아름다운 강기슭’이란 뜻이다. 호텔 앞으로 쉴새 없이 유람선과 화물선이 지나지만 그 소리가 성가시진 않다. 배들의 규모를 보고 강의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널찍한 방에다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라서 상쾌한 기분이 든다. 호텔의 장점은 뒷산이 바로 포도밭이란 점이다. 론 지방에서 대표 레드가 코트 로티라면, 대표 화이트는 콩드리유이다.코트 로티에 이만 한 호텔이 없기 때문에 보 리바주에 짐을 풀고, 코트 로티든 콩드리유든 다녀볼 수 있다. 주로 남북으로 간간이 동서로 꺾어지는 산맥을 따라 강이 흐르지만 재미난 것은 포도밭 마을은 모두 산기슭에 위치하며 강 건너는 메마른 도로밖엔 없다는 사실이다. 해를 잘 받는 곳은 영락없이 포도밭이 조성되는 코트 로티나 콩드리유로 갈 땐 여기서 쉬자.
◆추천2
레스토랑 도멘 드 클레어퐁탱(www.domaine-de-clairefontaine.fr)
태양이 뜨거워 다채로운 허브와 과일이 무성한 론 계곡은 와인과 함께 음식이 발달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양조장 방문 뒤에는 잘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빈 속에 수십 가지 와인을 맛보느라 취기가 느껴지며, 긴장하며 맛을 분별하려고 하느라 곧 허기가 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필립 기갈의 추천을 받아 점심을 할 만한 곳으로 이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정원과 단아한 샤토 건물의 이 식당은 기갈의 올드 빈티지도 보유하고 있어 코트 로티의 숙성력을 확인하기 좋다. 음식의 수준은 미슐랭 별 하나를 받은 만큼 충분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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