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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3) 아침에는 초콜릿 향기, 저녁에는 와인 향기

눌재 2011. 6. 28. 19:46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3) 아침에는 초콜릿 향기, 저녁에는 와인 향기<세계일보>
  • 입력 2011.05.31 (화)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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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도시 알바에서 맛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순수하고 단단한 포도 네비올로 이야기는 타닌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야기는 곧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타닌 이야기로 모양을 바꾼다.

    알프스의 거친 지형학적 에너지가 최고봉 몬테 비앙코(프랑스 쪽에서는 몽블랑이라 부름)를 솟게 한 다음에도 그 에너지는 흘러넘쳐 피에몬테 지방 랑게 지역에 수백 미터의 완만한 봉우리들을 잉태해 놓았다. 초봄에 눈이 먼저 녹는 봉우리마다 빼곡히 심어 놓은 것은 다름 아닌 네비올로. 

    바롤로를 생산하는 마을 세라룽가 달바의 모습으로, 이 마을 600명의 주민 대부분이 양조장 관련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 포도 이름은 봉우리에 끼는 안개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포도 수확 시에 끼는 가을 안개 덕에 붙여졌다는 설이 분분한데 안개와 관계된 이름임은 분명하다. 이 네비올로는 강력한 타닌이 특징인 검은 포도이다. 밭의 위치에 따라 와인은 로에로 혹은 바르바레스코 혹은 바롤로로 태어난다. 로에로에서 타닌의 강도가 피아노였다면 바롤로에 이르러서는 르테시모로 확장된다.

    초콜릿 세계 2위에 빛나는 페레로, 대구 육상 트랙 메이커 몬도, 그리고 이탈리아 패션의 강자 미롤리오가 튼튼하게 경제를 받치는 알바에서는 매년 5월이면 다채로운 타닌의 변모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 미롤리오 회사의 1층이 양조가들로 가득 차 있다.

    공기에는 아침에 페레로 공장에서 새어나오는 초콜릿 향기가 한 가득이다. 알바 시민들을 다 불러내어 페레로나 미롤리오 공장에 안 다니거나 양조업에 몸 담지 않는 이는 도대체 몇이나 될까 알아보고 싶다. 알바인들은 윤택하여 굳이 알바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다.

    네비올로를 각자의 개성과 각자의 밭에서 키워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효하고 숙성하여 수백 가지 와인을 한자리에 모았다. 특별히 이런 자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와인들도 출품되어 전문가와 수입상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페데리코 체레토(Federico Ceretto)와 마우로 마스카렐로(Mauro Mascarello)의 참가는 와인 선택의 폭을 확대시켰다. “버건디 그랑 주르 같은 와인 행사처럼 우리 네비올로 와인들의 설명회에 그간 참가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저의 탓입니다”라는 페데리코는 자신의 여러 와인들을 제대로 보여 주는 의미 깊은 행사라고 말했다. 지역 양조가 협회 알베이자(Albeisa)가 추진한 ‘네비올로 프리마(Nebbiolo Prima)’ 행사는 네비올로의 타닌의 깊이와 정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지역 생산자들을 만나는 곳은 패션의 강자, 미로리오(Miroglio) 사무실, 여기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그리고 로에로의 양조장 주인들은 손님들을 맞는다.
    라벨을 감추고 오직 잔 속에 담긴 맛으로 와인을 평가하는 이 행사는 매일 60여 가지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데, 와인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입술은 점점 타닌으로 무디어진다. 땡감을 한 번만 씹어도 입천장에 섬유질이 두껍게 끼는데, 60여 가지의 고타닌 와인을 입에 넣고 맛을 본다고 생각해 보면 시음자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가끔은 다문 입술이 열리지 않아 손가락으로 윗입술을 들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속으로 염려하며 잔을 들기도 한다.

    여러 나라에서 온 와인저널리스트들은 잔 속에 타닌만 있다면 다음 해에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잔 속에는 네비올로의 향기와 매력이 숨어 있다. 장미와 타르로 표현되는 네비올로는 맑은 꽃향기 그것도 장미꽃잎 같은 순수한 향기가 있으며, 타르같이 거칠고 진한 기운이 느껴진다. 물론 입천장에는 막대한 타닌이 낀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텁텁한 와인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잇몸에 마취 주사 정도의 타닌을 먹인 것 같다.

    시음하는 와인은 바롤로 2007년, 바르바레스코와 로에로는 2008년이다. 수년이 지났는데도 시음회는 타닌의 향연 같다. 하지만 십 년 이상이 흐르면 와인은 마술에 걸린다. 깊은 향기와 깔끔한 입맛을 주며 긴 여운을 남기는 명상을 위한 와인이 되는 것이다. 단아한 뒷맛으로 시간이 타닌을 변모시킨다. 이것이 네비올로의 묘력이다. 이렇게 해서 이십 년 정도는 끄떡없는 짱짱한 와인이 바로 네비올로로부터 태어난다.

    알바(Alba)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없는 게 없으며, 특히 음식과 와인이 유명해 일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사진은 알바의 중심 골목.

    네비올로 와인 중에 가장 오래 맛이 보존되는 것은 바롤로이다. 그래서 값도 가장 비싸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벌크 와인도 바롤로 상표를 붙이면 한때 6유로를 호가했을 정도로 바롤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양조가 안젤로 가야(Angelo Gaja)는 “지금의 바르바레스코 경기는 최고였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다른 건 몰라도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에 관한 한 최악은 확실히 지났으며, 2007년 전성기 시절로 통계치들이 몰려가고 있어 올 한해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비올로 와인들에게도 경기 침체는 차가운 계절이었다. 주요 수입처인 미국과 독일에서 2008∼2010년 3년 동안 매상이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롤로 2007년과 로에로, 바르바레스코 2008년 빈티지의 성공을 기대하는 양조가들은 수출 물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타닌의 육중함에 눌린 입천장처럼 납작 엎드렸던 경기는 이제 장미꽃 향기 넘실거리는 계절을 맞아 활짝 필 기세다. 좋은 갈비집에 자리 잡아 생갈비를 구우면서 연기는 연통으로 뽑아내고,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의 향기는 큰 잔 안에 가득 가두는 순간, 북한산 자락이 알프스 못지않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 추천 1
    에노테카 프라키아 에 베르키알라 (
    www.fracchiaeberchialla.com)

    알바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교회 산 주세페 바로 앞에 위치한 이 와인가게는 시내 여러 곳에 있는 와인 가게들과는 달리 일단 바닥 면적이 넓고 여유 공간이 있어 천천히 와인을 고를 수 있는 분위기가 특징이다. 피에몬테뿐 아니라 이탈리아 다른 지역 와인도 제법 갖추고 있어 호텔 방 안에서 이탈리아 시음회를 열어도 될 정도다. 지하에는 올드 빈티지도 많이 비축하고 있어서 알바 내에서는 여기가 와인 쇼핑을 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 추천 2
    로스테리아 델 비나이올로 (L’osteria del Vignaiolo)

    라 모라 마을에 있으며 선술집 같은 분위기에다 위층 몇 칸의 방을 손님에게 파는 식당으로 포도원 농부들이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하는 장소이지만, 바롤로가 세계 유명 와인이 된 다음에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되다시피 한 토속음식점이다. 5월의 특선요리로는 호박꽃에 밀가루를 입혀 튀겨낸 음식이 인기 메뉴이다. 향긋한 호박은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언제나 고향의 맛이다. 가을의 흰 송로버섯이 알바 최고의 식도락이지만, 이 계절에 간다고 해도 송로버섯은 맛볼 수 있다. 다만 봄여름에는 검은 송로버섯이라서 향기는 상대적으로 강하진 않아도 소스 없이 마련된 스테이크나 파스타 위에 얹은 송로버섯은 이국적 향취를 물씬 풍기기에 부족하지 않다. 시내 식품 가게에 가면 이 검은 버섯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몇 만원이면 충분하다. 물론 흰 버섯이라면 열배 이상 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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