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여행▶/와인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0) 프랑스 생테밀리옹 와인

눌재 2011. 6. 28. 19:52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0) 프랑스 생테밀리옹 와인<세계일보>
  • 입력 2011.04.14 (목) 17:47, 수정 2011.04.14 (목) 21:58
-->
비단결 같은 질감·농밀하고 응축된 맛
동서남북 어디로 가도 싱그러운 포도밭
  • 보르도로 와인 여행을 떠난다면 생테밀리옹이 최고다. 로마 유적지, 기와로 덮인 돌 건물들, 거기에다 맛깔스러운 향토 음식 그리고 향긋하고 풍성한 와인, 이것들이 생테밀리옹을 방문하는 이유다. 성자 야곱의 험난했던 전도 여행 코스가 산티아고를 잉태한 것처럼, 성자 에밀리옹의 고행 마을로 생테밀리옹(St-Emilion)이 탄생했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생테밀리옹은 보르도의 보물이다. 기라성 같은 유명 와인 양조장이 포진해 있는 보르도에서 생테밀리옹이 가장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고 마을 전체가 육중한 석조 건물로 지어져 보기만 해도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더구나 평탄한 지형에 발달한 메도크와는 달리 생테밀리옹은 석회암 기반 위에 솟아난 높은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라서 내려다보는 경관 또한 훌륭하다.

    샤토 라르망드에서 있었던 생테밀리옹 2010 시음을 마친 와인전문가들이 풀밭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와인이 생활의 근거가 되는 생테밀리옹에는 해마다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에밀리옹과 자코브처럼 열심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꿀맛 같은 휴식을 얻고자 한다. 매년 4월 초가 되면 단단하게 생긴 이 마을도 부드러운 와인 향기에 휩싸인다.

    사실 이 마을은 365일 관광객으로 쉴 틈이 없지만, 필자에게는 이때가 가장 좋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마을 보도는 수백 년간 다양한 발바닥에 의해 다져져 마치 생테밀리옹 와인처럼 비단결 감촉으로 번들거린다.

    이 계절에 생테밀리옹에 가면 도처에서 전년도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이를 앵프리뫼르(En Primeur, 영어 premature를 떠올리면 되는데, 아직 익지 않은 조숙한 와인이지만 맛을 보며 출시가격을 예상하는 이벤트를 말한다)라고 칭한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와인 관계자들은 이 마을을 통째로 점령한다.
    샤토 수타와 그 형제 샤토들. 맨 왼쪽 와인은 민박집에서 나온다.
    2010 빈티지는 보르도가 위대한 와인 산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메도크의 카베르네 소비뇽의 품질만큼이나 생테밀리옹의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의 품질이 뛰어나다. 여름에 지속된 건조하고도 뜨거운 태양은 2009년에 이어 2010년까지도 위대한 와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2009년의 품질이 대단하여 어느 누구도 2010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특히 포도 개화기에 뿌려진 잦은 비와 흐린 날씨는 포도가 많이 열리지 못하게 했으며 그 품질 또한 하락시킬 것으로 내다봤었다. 아마도 2009년의 성과에 자족했을 것이다. 충분히 빈티지의 덕을 봤으니 2010년은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연이어 생테밀리옹을 도왔다. 특히 단단한 심지와 이국적인 향취 그리고 신선한 산도를 제공하는 카베르네 프랑은 오히려 2009년보다 품질이 더 좋다. 빈티지가 좋으면 다 좋다. 농부들도 좋고, 양조장도 좋고, 상인들도 좋고, 와인 여행자도 좋고 그리고 관광객들도 좋다.

    생테밀리옹의 여행은 민박집이 좋다. 이름은 좀 길다. 샤토 그랑 포리 라 로즈. 이곳은 프랑스의 한 보험회사가 장기 투자를 위해 마련한 작은 양조장인데, 아침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민박집도 같이 운영하다. 이 보험회사는 테루아가 빼어난 양조장 샤토 수타르와 샤토 라르망드도 함께 소유하고 있다. 더 좋은 품질을 생산하기 위해 연구 개발뿐 아니라 양조 시설의 첨단화를 위해서 대규모 자본 투자는 필수적이라 기업의 양조장 소유는 일반화된 지 오래다. 이곳을 예약하려면 인터넷 사이트(www.soutard-larmande.com)를 참조하면 된다. 모두 네 개의 샤토가 하나처럼 운영되는 이 복합체의 중심은 샤토 수타르이다. 생테밀리옹의 메를로는 석회암 위에 자리 잡아야 제 맛인데, 샤토 수타르가 그 전형이다. 수타르 2010은 보랏빛 진한 빛깔에 제비꽃과 블루베리 향취가 나며 비단결 같은 질감에다 농밀하고 응축된 맛이 일품이다.

    야생화가 만발한 포도밭의 의미는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농법으로 가꾼다는 것이다.
    생테밀리옹에서 하루를 머문다면 중심지에 있는 작은 호텔도 좋겠지만, 전원적인 생활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민박집을 추천한다. 필자가 묵었던 민박집은 별도의 세면시설과 화장실을 방마다 갖추어 편했으며, 일층에 있는 부엌에는 각종 도구와 시설이 설비되어 집처럼 요리하고 먹을 수 있다. 걸어서 십분 남짓한 시내에서 달걀과 과일을 사서 식사를 한다. 재미난 것은 매일 샤토가 빵을 제공한다는 사실인데, 전날에 문 앞에다 가방을 걸어두면 아침 7시에 따끈한 크루아상과 바게트를 얻을 수 있다. 미처 가방을 밖에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쉽지만 빵은 다음날을 기대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방을 거두고 바게트를 썰고, 크루아상을 찢고, 토마토와 오렌지를 썰고, 달걀을 익히면 활기찬 생테밀리옹의 아침이 시작된다.

    동서남북 어디로 가도 다 포도밭이다. 관광객들은 중심지 가게를 쇼핑하느라 돌건물에 갇혀 있지만, 필자는 포도밭으로 향한다. 땅에 발바닥을 내밀어야 제대로 된 여행이 된다. 발바닥에 밟힌 무명초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향기는 봄과 여름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노랗고 빨간 그리고 파랗고 하얀 야생화들이 가득한 풀밭 사이로 메를로가 새순을 분홍빛으로 피우고 있는 포도밭으로 초대한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 추천

    ◆생테밀리옹 2010 베스트 와인


    말할 필요 없이 샤토 슈발 블랑과 샤토 오존은 탁월한 와인이다. 하지만 두 와인 모두 가격이 장난이 아니라서 아래 와인을 추천하는 것이다. 특히 샤토 보세주르는 1990년의 위대한 품질에 아주 근접했다. 싱싱한 산도가 무척 인상적이다. 활기가 있어 생기가 있으며 물리지 않는 맛이다. 주목할 와인이다. 추천 와인 명단을 적어본다. 샤토 보세주르 뒤포(Beausejour Duffau), 샤토 라르시스 뒤카스(Larcis Ducasse), 샤토 파비 마캥(Pavie Macquin), 샤토 파비(Pavie), 샤토 앙젤뤼스(Angelus), 샤토 라투르 피자크(Latour-Figeac), 샤토 수타르(Soutard).

    와인 가게 ‘라 그랑 카브’ 내부 모습.
    ◆와인 가게:라 그랑 카브(www.vinstemilion.com)


    천 년을 버텨 온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병풍 삼아 잠시 쉼을 얻어가기 좋은 곳이 이 와인 가게 앞 노천 카페다. 4월 초에 며칠을 머무르면서 최고의 날씨를 즐겼다. 점심은 물론이고 저녁까지 야외에서 할 정도로 날씨가 좋다. 더위를 많이 탄다면 벌써 여름이 왔다고 푸념을 늘어 놓을 정도다. 자리를 안내 받자마자 받은 메뉴판을 유심히 쳐다봐도 도대체 무엇을 주문할지 난감할 것이다. 생테밀리옹에서 인기 메뉴는 내륙인 관계로 고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니 오리나 비둘기 요리를 주문한 다음,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이용해 바로 옆 이 와인 가게를 둘러보자. 주인장 장 밥티스트를 찾으면 된다. 젊은 그의 도움을 받아 보르도는 물론이고, 부르고뉴, 론 지방의 유명 와인들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맛을 보고 살 수 있는 와인들도 여럿 있다. 비행기 휴대가 불편하다면 구매 후 바로 탁송할 수도 있다. 와인여행자가 방문했을 때 주인장은 독일의 한 유명 와인을 맛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그 와인 양조장 주인도 있었다. 머지않아 독일 리슬링이 레드로 가득한 생테밀리옹 마을에 싱그러운 생기를 불어 넣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