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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4〉 ‘도멘 르루아’

눌재상주사랑 2011. 6. 28. 19:49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4〉 ‘도멘 르루아’<세계일보>
  • 입력 2011.06.09 (목)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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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년전에 짓던 방식으로 말이 쟁기질
    주인장 소신으로 이룬 특급 와인… 26가지 소량 생산
  • ‘나는 가수다’를 와인 세계에 적용하여 ‘나는 와인이다’ 프로그램을 짠다면, 임재범 같은 무게감의 대표 와인으로 어떤 와인을 꼽을까. 바로 도멘 르루아(www.domaine-leroy.com)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마을 본로마네는 기라성 같은 포도원들이 즐비하다. 많은 양조장 가운데 도멘 르루아가 특급으로 꼽히는 이유는 주인장의 소신과 고집에 있다.

    양조장 한쪽에는 오너를 위한 아주 단출한 와인 셀러가 있다. 바닥에 깔면 몇 병인지 금방 알 정도의 병들이 오너 몫이다. 종류별 와인이 모두 소량 생산된다.
    타협하지 않는 성격은 포도밭과 양조장에만 머무르지 않아 말싸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굽히지 않는다. 그녀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와인 전문가들의 방문도 쉽지 않다. 본로마네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녀의 솜씨로 태어난 부르고뉴 와인 덕분에 실로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부르고뉴 와인을 최고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라루는 특히 밭의 환경을 친환경이 탈바꿈하는 데에는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 친환경 농법이 대세인 부르고뉴에서도 단연 라루 비즈르루아(79)는 유기농의 극단을 추구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리고 그녀의 뛰어난 솜씨는 레드 혹은 화이트가 아니라 둘 다에 미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 고향은 부르고뉴. 난 포도나무처럼 여기 박혀 있다.”

    하얀 바탕에 필기체로 쓴 그녀의 와인 라벨은 이웃들이 생산하는 와인 가격보다 몇 배가 비싸며, 한정된 수량으로 그 가격은 매년 오름세에 있다. 투자 등급 와인을 고르라면 거기에다 실질적인 맛의 수준을 함께 반영하여 고른다면 도멘 르루아는 프랑스 와인의 최고봉에 올라 있다. 이런 와인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향기에 취하고 맛에 감동하여 두고 두고 뇌리에 남는 맛을 선사하는 와인이다.

    프랑스 와인의 정수라고 하면 부르고뉴 지방의 본로마네 마을을 떠올린다. 비가 많고 서늘하고 날이 궂은 부르고뉴에서는 포도가 완숙되기가 쉽지 않지만, 본 로마네 마을의 포도밭은 예외이다. 대지의 온화한 기운이 국부적으로 미쳐 본 로마네의 포도밭은 빈티지가 그리 좋지 않아도 포도가 잘 익는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로 하면 테루아(terroir)가 좋다고 할 수 있다. 이 마을 많은 포도밭 가운데 테루아의 신비스러운 효과가 나타나는 데를 고르면 로마네 콩티, 라 타슈, 로마네 생비방 등이 있다. 이웃 마을에는 뮈지니, 샹베르탱, 클로 드 라 로슈, 코르통 샤를마뉴 등이 해당한다.

    와인의 방정식은 항상 변수가 세 개다. 테루아, 빈티지 그리고 사람이다. 이 세 요소가 잘 결합되어야 좋은 와인이 된다. 좋은 와인 중에 일부는 사람을 감탄케 하는 재주가 있다. 도멘 르루아는 테루아가 좋은 포도밭을 여러 군데 소유하고 있다. 매년 각기 다른 구역으로부터 26가지 와인을 만든다. 종류별로 와인은 아주 소량 생산된다. 양조장 한쪽에 마련된 창고에는 수십 가지 와인들이 바닥에 누워 있다. 보통의 양조장에서는 같은 와인이 수백 병, 수천 병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여 보관돼 있으나, 여기는 고작 몇 병씩 바닥에 있다. 우선 생산량이 적으며, 그것마저 죄다 팔려나가기에 주인이 마실 요량으로 종류별로 남겨둔 몇 병이 전부인 것이다. 로마네 생비방, 샹베르탱, 뮈지니 등의 최고급 와인은 많아야 4000병, 적으면 1000병을 생산하며, 200∼300병 만드는 것도 있다. 

    양조장 앞에서 필자와 함께 한 라루 비즈르루아(왼쪽).
    라루는 1955년부터 아버지 일을 도우며 와인을 만들고 팔고 있다. 아버지는 선각자였던 것 같다. 그는 1942년에 로마네 콩티 지분의 절반을 사들여 동업자와 함께 이 와인을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그녀는 1992년에 로마네 콩티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녀는 동업자 오베르 드 빌렌이 1976년 ‘파리의 심판’ 시음회에 참가한 것을 두고 두고 못마땅해했고, 반대로 오베르는 그녀의 와인 판매 정책에 괘씸해했기에 서로가 반목했다. 결국 주주총회에서 그녀는 회사로부터 축출당하고 말았다. 여전히 그녀의 집안이 로마네 콩티의 50% 지분을 가지고는 있다.

    라루는 1988년 2ha로 시작한 자신만의 양조장 이름을 ‘도멘 르루아’라 칭하고, 비오디나미 농법으로 밭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일반적이던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를 완전 배격하고 재래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사의 절차를 달의 주기에 맞추었다. 트랙터를 줄이고 말이 쟁기질을 맡았다. 100년이나 200년 전에 짓던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이후 밭에 큰 변화가 생겨났다. 흙에 생기가 돌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들풀들로 밭이 가득했다. 곤충과 나비가 들끓었으며 질병은 결국 자연의 힘으로 치유되는 신통방통한 기운들이 밭에 나타났다.

    시음을 할 때엔 보통 오크통에서 뽑아낸 와인을 맛보거나, 병을 개봉하여 맛본다. 대개 생산량이 어느 정도 되기에 와인을 얻어 마셔도 그리 미안하지 않지만, 도멘 르루아에서는 다르다. 종류에 따라 몇 백병, 몇 천 병 만드는 와인 중에 양조장 창고에 남은 몇 병의 와인을 시음한다. 주인장은 되도록이면 많은 와인을 맛보게 하여 자신의 와인 세계를 이해시키려 하는데,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다. 
    도멘 르루아의 시음 와인 일부를 한데 모았다. 시음하고 남은 잔 속의 와인도 깔대기로 다시 병에 부을 만큼 와인은 귀하고 비싸다.
    라루는 바닥을 살핀다. 검은 강아지와 바둑이는 서로 자기를 쳐다 보라며 꼬리를 흔든다. 녀석들과 살짝 눈을 맞춘 후 그녀가 처음 집은 건 포마르 2008. 세 병 남은 것 중에 한 병을 개봉하고 만다. 직각의 타닌이 강하게 밀치고 스파이시하며 미네랄 향취가 있다. 본 로마네는 다섯 병 중에 한 병. 활기가 있고 볼륨감에다 곡선의 온화함이 있다. 리슈부르는 본 로마네의 최상급 포도밭으로 투명한 색에다 부싯돌 냄새, 세련되고 섬세하며 또렷한 향기를 뿜는다. 피노 누아가 이런 맛이 되려면 기능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보다 더 정교한 열정이 요구된다.

    코르통 샤를마뉴는 화이트인지 레드인지 분간이 안 가는 육중하고 단단한 화이트인데, 조직의 배열이 어찌 그리 꽉 짜였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엽차를 식히려고 두 잔으로 붓고 따르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처럼, 라루는 코르통 샤를마뉴 2007 잔을 빈 잔에 담고 다시 잔을 다른 빈 잔에 따랐다. 그리고 이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이건 잔으로 하는 디캔팅이다. 화이트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디캔팅이 필요하다. 암석 심층부에서 뽑아 올린 광물 에너지가 아로마와 알코올로 치환된 코르통 샤를마뉴2007과 2009는 잊지 못할 화이트 와인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관람객처럼 향기와 맛에 감동한 시음자들은 도멘 르루아를 잊지 못한다. 최고의 와인이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추천 

    프랑스 특선 요리-송아지 췌장 구이


    한두 끼나 여러 끼가 아니라 수십 끼를 계속 먹다 보면 프랑스 음식에 대해 나름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주 단순한 음식 이를테면 바게트에 버터를 바른 것도 맛있고, 달팽이(본에 있는 ‘라 시부레트’에서는 자연산 달팽이를 맛볼 수 있다)나 개구리 다리 등 재료의 희귀성에서 오는 특별함도 맛을 고양시킨다. 기름진 식단을 즐겨 한다면 이 메뉴를 외워 두면 좋다. 송아지 췌장 요리인 리드보(Ris de Veau, 실제 발음 히드보)이다. 푸아 그라보단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며, 안심 스테이크보단 기름진 음식이다.

    양조장 보노뒤마르트레(www.bonneaudumartray.com)의 오너 장 샤를르는 “리드보에다 코르통 샤를마뉴를 곁들이면 일품이다. 이는 화이트이지만, 풍부한 미네랄 향취에다 무거운 힘까지 갖춘 코르통 샤를마뉴는 리드보의 기름지고 진한 텍스처에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보름간 세 군데에서 ‘리드보’를 맛보았는데, 가장 맛있었던 적은 히드보의 기름진 질감과 융합되도록 소스를 달게 졸이고 비슷한 질감을 느끼도록 알감자와 당근을 환상적으로 구워냈던 샤토 팔머의 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