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5> ‘코르통 샤를마뉴’<세계일보>
- 입력 2011.06.23 (목) 17:21
- 관련이슈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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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무게감은 포도밭 토양에 뿌리박은
석회암의 신비로운 작용에 기인
눈 감고 마시면 레드로 착각하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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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마시면 레드로 착각하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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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어렵다. 품종도 갖가지이고 다 외래어라 낯선 데다 이름마저 복잡하기 때문에 와인은 도통 모르겠다.” 대부분이 공감하는 와인의 높은 문턱 얘기이다. 그래서 와인을 설명할 때에는 각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그래서 와인 강사들은 이런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하여 강단에 선다. 와인 속에 감춰진 역사의 페이지를 들추면 한결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특히 이름에 숨겨진 뜻을 이해한다면 즉시 그 와인 이름은 마치 자신의 이름처럼 친숙해질 수 있다.
코르통 샤를마뉴 포도밭은 동남향 언덕배기에 조성돼 있다. 해발고도 250m 내외의 경사면을 따라 북진하면 로마네 콩티, 뮈지니, 샹베르탱 등의 포도밭과 이어진다.
역사책에서는 ‘샤를마뉴’라고 배웠다. 핏줄을 중시하는 우리 정서는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 궁금해진다. 알파벳 철자로는 ‘Charles’이라고 쓴다. 불어식으로 읽어 ‘샤를’이고, 영어식으로 하면 ‘찰스’다. 페인어식으로 ‘Carlos(카를로스)’, 독일어식으론 ‘Karl(카를)’이다. 바로 바벨탑의 비극으로 초래된 언어의 혼란스러운 분화의 결과다. 그리고 ‘마뉴’는 ‘위대한’이란 뜻으로 정확히 다시 말하면 샤를마뉴는 ‘샤를 대왕’이다. 세종대왕처럼 다른 왕과 비교해 한 단계 격상한 호칭이 붙는다. 그러니 샤를마뉴 대제는 틀린 표현이고 ‘샤를 대제’라고 해야 맞는다.
샤를 대제를 두고 카를 대제, 찰스 대제, 카를로스 대제, 카를루스 대제(라틴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같다. 같은 임금을 놓고 언어별로 달리 통용되지만 우리에겐 샤를마뉴로 알려져 있다. 카를 대제라는 독일식 호칭은 프랑크왕국의 수도가 현재 독일의 아헨이며, 여기에 카를 대제의 유해가 안치돼 있기 때문이다. 아헨 대성당은 독일 임금들의 대관식이 수백년간 거행된 유서 깊은 곳이다.
루이 라투르의 수확연도별 코르통 샤를마뉴. 와인메이커 보리스는 “이런 와인 시음은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서가 제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규 역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백년전쟁(1337∼1453) 당시 전사한 영국의 탤벗 장군 이야기 역시 샤토 탈보의 귀중한 유산이지만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이다. 이런 스토리는 책을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들이 오래전에 학술적으로 고증해서 얻은 와인 지식의 한 단편이며, 와인 전문가들은 이런 역사의 파편들을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한다. 이런 강의를 들으면 역사가 액화된 와인을 음미하는 기분이 들며, 맛까지 좋을 때에는 감탄에 이르러 바로 이것이 와인 애호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코르통 샤를마뉴를 한 잔 마시면 세계사의 한 쪽을 씹어 먹는 기분이 든다.
코르통 샤를마뉴 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도멘 보노 뒤 마르트레의 오너 장 샤를. 그는 오래된 건축물 수복 일을 했던 왕년의 건축가로, 1994년 부모의 업을 승계해 와인 일에 전념하고 있다.
1797년부터 지금까지 가족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메종 루이 라투르(www.louislatour.com)는 알록스 코르통 마을에 터를 잡고 있다. 원래 마을 이름은 알록스였으나 코르통 포도밭이 워낙 고명해서 마을 의회는 마을 이름을 알록스 코르통으로 바꾸었다.
보통 부르고뉴 양조장은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므로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이런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기는 아주 힘들다. 특히 부르고뉴 전체 와인 중에 상위 2% 안에 드는 코르통 샤를마뉴는 더더욱 그렇다. 자체 포도원뿐 아니라 주변 작은 농가로부터 수매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메종 루이 라투르 덕분에 오늘날 멀리 사는 애호가들도 부르고뉴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루이 라투르의 코르통 샤를마뉴도 앞서 언급한 특유의 전형성을 그대로 간직하는 훌륭한 와인이다. 적당한 오크향에 신맛과 짠맛이 조화롭게 잘 배합되어 활기를 주며 오랜 여운을 지닌 멋진 와인이다.
도멘 보노 뒤마르트레(www.bonneaudumartray.com)의 코르통 샤를마뉴는 좀 더 정교한 맛을 지닌다. 광물향을 머금은 질감에 윤기가 흐르고 초점이 더 잘 잡혀 있다. 부르고뉴에서는 예외적으로 최고급 등급인 코르통(1.5ha)과 코르통 샤를마뉴(9.5ha), 이 두 와인만 생산한다. 보통 양조장은 일반급과 프레미어급 와인 등을 같이 생산하지만 여기서는 그랑 크뤼만 생산한다. 본 로마네의 그랑 크뤼 포도밭을 가장 많이 소유한 최고가 양조장 로마네 콩티도 가끔 다른 등급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과 비교해도 이곳의 전략은 남다르다. 2009, 2008, 2007, 2006, 2005로 빈티지를 거슬러 내려가는 동안 코르통 샤를마뉴의 맛은 물리질 않는다. 그중 2005는 아주 여물어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2001, 1995에서는 세월에 견디는 화이트의 끈기를 느낀다. 특히 1995 코르통 샤를마뉴는 여전히 탄력이 있으며 꿀 향기로 변해 가는 부케가 인상적이었다.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1001’에서 저자 휴 존슨은 1992년을 각별하다고 부기했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추천 - 레스토랑 샤를마뉴 (www.lecharlemagne.fr)
루이 라투르의 보리스 샹피(Boris Champy)는 프랑스인이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양조일을 하며 균형감각을 익힌 와인 메이커다. 그는 프랑스인 특유의 아집 대신 경청하는 자세를 지녀 그와의 대화는 즐겁다. 그는 미라가 살 것만 같은 어둡고 습한 지하 셀러로 안내했다. 구석구석 오래된 먼지가 회화적 이미지로 자리를 잡고 있던 그곳에서 그는 마지막 시음은 코르통 샤를마뉴라고 했다. 이유는 와인 맛이 묵직하고 단단하기 때문이며 웬만한 레드 와인 못지않은 구조감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멘 보노 뒤마르트레의 오너 장샤를 르보 드라모리니에르(Jean Charles le Bault de la Moriniere)의 이름은 길어 지루했지만, 그의 말은 간결하고 분명했다. 그의 이름 샤를은 샤를 대제와 코르통 샤를마뉴와 합치한다. 이름에 새겨진 대로 와인 양조가 그의 운명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추천한 코르통 샤를마뉴를 위한 음식으로는 가재새우, 생선, 송아지 췌장 요리가 있다. 양조장이 자리 잡은 페르낭·베르주레세 마을 초입에 있는 레스토랑 샤를마뉴는 인근에서 가장 맛있고 멋진 식당이다.
동네 사람들이 손님을 대접할 때에는 꼭 이곳으로 간다고 한다. 음식천지로 유명한 부르고뉴에서 특히 여기에서는 적당히 기름이 흐르는 ‘리드보’(Ris de Veau·송아지 췌장 요리)가 좋다. 이는 코르통 샤를마뉴의 단단한 질감과 합쳐져 근사한 입맛을 제공한다. 와인의 중성적인 미네랄 기운은 비린 지방기를 담백하게 변모시켜 물리지 않도록 만든다. 미슐랭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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