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의 차맥]〈1〉 차는 미래의 음료, 미래의 문화다<세계일보>
- 입력 2010.12.13 (월) 17:33
- 박정진의 차맥
신이 인간에 내린 신비의 약초… 차는 철학이자 종교이자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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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는 한마디로 미래의 음료이고 미래의 문화이다. 지금 차를 먹고 있는 차인들은 참으로 다행인 사람들이다. 차가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다. 과거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차를 마셨고, 왜 차를 마셨고, 차가 자생했느냐, 외국에서 들어왔느냐 하는 등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차를 먹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차는 철학이고, 종교이고 예술이다. 인간이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신령(神靈)에 다가가고,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서 의식(儀式)이 필요하고, 스스로 철학을 터득하고, 저절로 종교에 다가가는 것으로 차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여(茶禪一如)’라고 하지 않던가.
◇해마다 9∼10월이면 차꽃이 핀다. 하얀 백장미를 닮은 차꽃은 눈에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 마치 수줍은 소녀와 같다.
경남 다솔사=사진작가 운암(雲巖) 제공
“고야선녀의 흰 살결처럼 고우며/염부단금 같은 황금꽃술 맺혔네.”
차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내 가을, 겨울로 접어든다. 봄에 꽃이 피는 여느 식물과 다르게 겨울에 추위와 삭막함을 잠재우고, 푸른 생명을 자랑이라도 하기 위해 피어나는 듯하다. 식물학적으로 동백나무과속(科屬)인 차나무는 열매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잎과 줄기를 준다. 이 점도 여느 나무와 다르다. 차 꽃은 은은한 향기를 품으면서 열매를 맺어 그 다음해 초가을에 결실하여 저절로 땅에 떨어진다.
물질에 활기(活氣)를 불어넣어 물활(物活)을 이루는 것 중에서 차만 한 것은 없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신들리는 것을 좋아한다. 세계에서 가장 빙신 혹은 빙의에 잘 드는 민족은 아마도 한국인일 것이다. 왜 그런가를 따지려면 많은 연구와 경험이 필요하겠지만, 신들리고 깊은 명상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한국인이다. 이것은 또한 ‘신(神)의 나라’라고 하는 인도나 티베트와도 다른, 한국 고유의 것이 있다. 그 고유는 쉽게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낙천성에 기인하는 것이고, 혹자는 북방문화와 남방문화, 한대와 아열대의 사이에서 약간 북쪽에 치우친 온대의 자연적·문화적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차나무 자생지의 북방한계선에 속한다.
한국문화의 정수를 밝히는 데 평생을 바친 이능화(李能和)는 “차는 풀의 성현(聖賢)”이라고 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차를 이보다 간략하고 극명하게 설명한 문구는 없다. 후기자본주의의 풍요한 물질문화를 구가하고 있는 현대의 우리는 이제 물질이 아니면 정신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물질 만능이 되어 있고, 그 속에서 그래도 한 줄기 빛처럼 찾아야 하는 물질이 있다면 정신적 음료인 차이다.
오랜 전화(戰禍)로 인해, 특히 최근세사에서는 일제의 식민에 의해, 우리의 전통문화는 곳곳에서 단절되었고, 차의 문화와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점은 문화라는 것은 혹은 유전인자라는 것은 처음엔 그것의 기원이나 현재의 소유권이나 정체성을 운운하지만 결국 오래 사용하면 사용하는 자의 것이 되고, 정복과 교류와 향유에 의해 소유권이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나의 것은 남에게 주고, 남의 것은 내 것으로 만들고,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닌 인류의 것이 되는 특성이 있다.
인간은 소유권과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문화는 마치 자연과 같아서 누구의 소유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의 차 전통과 정체성은 일제에 의해 단절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일제에 의해 이어지기도 한 것이다. 일본문화는 유라시아의 끝에 있어서, 더 문화적 표현으로 실크로드의 최동남단에 있어서, 그것도 섬나라인 관계로, 세계의 문화 지층을 이루고 있다. 과거 동양사가 중국 중심으로 전개될 때는 가장 국제문화를 뒤에 받아들이던 것이, 근대 서양문명의 도래와 함께 서진(西進)하는 문명의 흐름을 따라 근대문명을 앞서 수입하고, 해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처지에 서게 됐다. 물론 그 결과가 일제라는, 우리 민족에게는 암울한 시대를 선사하기도 하였지만, 문화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서양문화를 받아들이고 소화한 이외에도 동양의 문화를 일본식으로 포장하여 서양에 소개한 공적도 있다. 그 가운데 차(茶)와 선(禪)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다도(茶道)’와 ‘젠(禪, Zen)’을 일본만큼 서양 사람들에게 잘 이해하도록 열과 성을 다한 민족은 없다. 이 말은 일본은 그만큼 ‘다도’와 ‘젠’을 가지고 자신의 문화형태로 형상화하고, 조형화하고, 가시적인 형태로 완성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으레 동양문화라고 하면 일본을 떠올리고, 그다음에 동양문화의 중심을 이룬 중국을 생각한다. 아마도 한국은 그 세 번째쯤일 것이다.
한국의 태권도가 일본의 가라테의 바탕 위에 우리 전통 무술의 발차기를 보태고 다시 발차기(하체 중심의 북방 무술의 문화적 인자)를 중심으로 무술체계를 환골탈태하여 우리의 무술로 전환하여 세계적인 한국무술로 부활시킨 것이라면 과연 차문화도 일본의 다도(茶道)를 통해 그러한 주체화의 노력을 경주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적어도 중국의 다예(茶藝)나 다학(茶學), 일본의 다도(茶道) 사이에서 한국적인 것을 이루려면 말뿐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혹자는 다례(茶禮)를 주장하지만 제사의 차례와도 혼란이 있고, 아직 ‘차이(差異)의 발견’이 분명하지 않다.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차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서 축적하고, 그 정신이 무엇인지를 추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의 양과 다양성과 일본의 단절되지 않은 오랜 전통의 질에 밀려 허둥댄다고 한국의 차문화가 정립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차 품다 자격증을 따오고, 일본에서 다도의 법식을 흉내 낸다고 해서 우리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가장 심각한 것으로 그들의 것을 익히면 익힐수록 우리 것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것을 모방해서 아무리 잘하고 숙련됨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지구촌 국제사회는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 존재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 통례이다.
◇지난달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기간 서울광장 차 행사에 참가한 외국 귀빈이 색동저고리를 입고 차를 따르는 차인 앞에서 진지하게 차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이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20개국’에 들어가는 ‘20클럽’ 가입을 알리는 ‘제5차 G20 정상회의’(11월11∼12일)가 한 달 전에 열렸다. 이것은 분명 도약하는 한국을 세계에 드러내는 것이고, 세계가 그것을 인정하는 축제였다. 서울올림픽, 한일월드컵에 이은 일련의 한민족 웅비를 전하는 소식이었다.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각국 원수 부인들은 한국의 차문화를 비롯한 국악 등 전통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12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전국 차인들이 상경하여 화려하고 다양한 찻자리를 펼쳤다. 같은 날 창덕궁에서는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안내를 받으며 각국 원수 부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궐의 후원(後園) 부용지(芙蓉池)에서 차를 마시는 차회를 가졌다.
창덕궁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들어가 있는 궁궐이고, 그 궁궐의 조용하고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내밀한 후원에 도착한 각국 원수의 부인들은 쌀쌀한 날씨 속에 따끈한 국화차와 백련의 향기를 즐겼다. 차는 언제나 이러한 귀중한 자리에 들어가는 품목이다. 창덕궁은 이날 한국의 의식주 문화를 외국 귀빈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테마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연경당에서 열린 궁중의상과 한복 패션쇼는 이들의 갈채를 받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직도 외국 귀빈에게 내놓은 차라는 것이 대용차라는 점이다. 이는 ‘산 좋고 물 좋은’ 나라로서 좋은 물 때문에 어떤 차라도 맛있는 한국 음료 문화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생산한 녹차를 당당하게 내놓고, 맛이 어떠냐고 물어볼 용기를 가질 만한데도 그렇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각종 농산품이 한국의 특수한 토양 때문에 세계적인 맛과 영양분을 자랑하듯이, 비록 생산량은 적지만 한국의 녹차는 그 맛과 향에 있어서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제품이 있었을 터인데 손님을 접빈하는 세심함과 주체성이 떨어졌다.
1960년대 경제개발과 더불어 문화적 주체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일제에 의해 단절된 전통 차문화를 복원하려는 크고 작은 모임이 자연스럽게 있었고, 70년대부터 본격적인 조직화를 거쳐 80년대에 이르러 굵직굵직한 차 단체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줄을 이었다. 본격적인 차문화운동이 일어난 지 30∼40년에 이른 지금, 과연 한국 차의 주체성은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한 번 단절된 문화가 새롭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참으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체성이라는 것은 차라리 차에 단지 시간상으로 오래 종사한 사람들보다 새로 차문화를 접한 진지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차도 문화일진댄 처음에 모방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것을 하나하나씩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을 따라가기에 바쁜 것으로 동아시아에서 차의 지분을 얻을 수는 없다. ‘지구촌’이라고 이름하는 오늘의 열린 국제사회는 단박에 모방을 알아낸다.
지금 수많은 차 단체와 차인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적어도 3대를 내려간 차 단체나 차인이 보기 드물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3대 이상은 절집에서나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기에 밖으로 ‘내가 원조라느니, 맹주라느니’ 떠드는 것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법도를 구축하면서 많은 차인구를 배출하고, 사람들로부터 공인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후배 차인을 키우고 동문을 배출하다 보면 그것이 큰 물줄기가 되고, 역사의 주류가 되고, 그 가운데 차문화를 중흥할 인재도 나오고 철학도 형성될 것이다.
이것이 미래의 음료, 미래의 문화인 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차 문화의 중흥을 위해 차의 여러 주제와 관심을 따라 시리즈를 이어갈 것이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 입력 2010.12.13 (월)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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