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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차맥](3)차의 전쟁, 검은 욕망과 푸른 청허의 대결

눌재상주사랑 2011. 8. 8. 02:04

[박정진의 차맥](3)차의 전쟁, 검은 욕망과 푸른 청허의 대결<세계일보>
  • 입력 2011.01.10 (월) 17:14, 수정 2011.01.11 (화) 00:39
‘욕망의 음료’ 커피와 ‘신선의 음료’ 차의 문화 자존심 내건 경쟁
  • 요즘 세계적인 물 부족으로 인해 미래에 물 전쟁이 예고되기도 하지만, 기호음료의 전쟁은 이미 있어 왔다. 지금도 세계음료 시장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대리전처럼 치열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를 때 막후에서 차(茶)와 코카콜라의 메인광고 확보를 위한 스폰서 전쟁이 치열하였다. 중국의 수도에서 치르는 올림픽이었건만 당시 중국 차 업계는 인해전술로도 코카콜라의 막대한 자본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지금 세계 1위이다. 전자인터넷시대를 맞아 MS(마이크로소프트), IBM이 떠들지만 아직 코카콜라에 뒤지고 있다. 그만큼 음료시장은 세계 지배의 상징이다.

    ◇전통 찻집의 거리인 인사동에도 커피숍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커피와 차를 함께 파는 상점이 늘어나고 있다.
    잘 알려진 아편전쟁(제1차 1839∼1842, 제2차 1856∼1860)도 실은 차의 전쟁이었다. 영국인이 차를 사들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 사람들에게 아편을 팔았고, 청조(淸朝)에서 중국인 아편중독을 이유로 아편을 팔지 못하게 하니까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물 전쟁, 음료 전쟁은 국제사회의 냉엄한 질서에 속한다.

    19세기에 들어 영국과 중국의 무역은 소위 ‘광둥(廣東)무역체제’에 의해 움직였다. 이는 대외무역이 광저우(廣州) 한 항구에 국한되고, 청나라의 허가를 얻은 ‘공행’(公行)이라는 독점적 상인 길드를 통해서만 무역이 가능한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영국 무역신장의 장애가 되었다. 당시 영국에 대한 중국의 최대수출품은 차(茶)였고, 중국의 차맛과 도자기에 빠진 영국은 이를 수입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영국과 중국의 무역역조는 중국의 수출초과였다. 이에 영국으로서는 차 수입을 결제할 은(銀)이 부족했고, 은의 지불 없이 차를 수입할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대체수출품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재배하는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하는 것을 떠올렸다. 말하자면 아편을 밀수출한 대가로 벌이들인 은으로 차(茶)대금을 결제할 요량이었다. 아편전쟁은 실은 차, 음료 전쟁이었다.

    미국의 독립전쟁도 실은 ‘보스턴 차(茶) 사건’에서 비롯됐다.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은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해 1773년 12월16일 보스턴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차(茶) 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를 일으키는 것이 되었다.

    결국 두 전쟁이 중국 ‘차’로 인해서 발생한 전쟁이다. 차의 소비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산업화에 따른 공해와 물의 오염으로 인해 자연수를 마실 수 없는 환경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생수를 마시는 것이 상식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수와 함께 차의 시장이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앞으로 중국과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맺어지면 중국의 차가 한국 시장을 압도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겨울의 폭설을 뚫고 푸른 잎사귀를 내보이고 있는 강원도 정선의 어느 차밭. 차 자생의 북방한계선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아열대 현상과 함께 점차 북쪽으로 차 생산지역의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 제공=사진작가 雲巖
    2000년을 전후하여 농약파동(2007년 가을)이 일어나기까지 약 10년간 한국에서 차는 품질의 고하를 막론하고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전체 수요량은 적었지만 차 잎 생산량 대 소비량의 차가 커서 일부 산업용으로 쓰고 나면 음료용으로는 모자라 적당히 이름을 달아 내놓으면 명차의 반열에 올랐다.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 시절이다. 녹차라고 하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시중에 내놓아도 잘 팔렸기 때문이다. 그때 농조로 한 말이지만 “중국에서 소의 여물로 쓰이는 것도 차로 판다”는 자조와 비아냥도 있었다.

    현미녹차를 비롯한 티백 차는 한국 차 산업과 차 문화사로 볼 때 공과가 매우 상반된다. 차를 소개한 공적도 있지만, 실제 차가 어떤 것인지를 모르게 한 죄과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차 생산농가와 차 업계는 안이하게 대처하였다. 차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동산과 다른 산업에 투자하는 등 파행을 보였다. 더욱 좋은 차를 생산하고 차 산업 육성을 위한 재투자를 외면하였다. 그러다가 농약파동 사건이 일어났다. 잎을 직접 먹는 차의 입장에서는 된서리를 맞는 게 당연하였다. 그래서 유기농 차밭 붐이 일었다. 유기농은 차 산업의 미래목표이지만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지금도 찻집에 가보면 커피와 경쟁한다는 명목으로 삼각티백 차는 원가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고 있다.

    앞으로 커피와 차는 지구촌에서 심각하게 차 전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커피와 차는 각자가 나름대로 특성과 장점이 있고, 또한 문화를 형성할 만한 음료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커피문화는 서양문화를 대표하고 차문화는 동양문화를 대표한다. 동아시아 한중일(韓中日)의 세계경제에서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중심이동이 이루어짐에 따라 ‘느림의 문화’를 대표하는 차 문화도 점차 문화적 위세를 얻고 있다. 지금은 커피가 압승하고 있지만, 미래 음료 전쟁에서는 차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 커피문화에 푹 빠져 있다. 요즘 서울 거리를 나서면, 비단 시내 중심가가 아니더라도 스타벅스 커피(Star Bucks Coffee)를 비롯하여 온갖 이름의 커피 전문점이 줄을 잇고 있다. 파스쿠찌 커피(PASCUCCI COFFEE), 카페베네(Cafe Bene), 커피 빈(Coffee Bean), 루이스 카페(Lewis Cafe), 톰 앤 톰스 커피(Tom N Tom Coffee), 로티보이 커피(Rotiboy Coffee) 등 수십 종의 전문점이 들어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의 강남역, 삼성역 일대, 강북의 종로, 청계천, 인사동 등 중심가는 이제 한 집 건너 커피점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커피 붐에 따라 맥도널드나 던킨도너츠, 파리바케뜨, 뚜레주르 등 패스트푸드점과 베이커리 등 후발업체들도 뛰어들어 한편에선 커피의 값 내리기 경쟁으로 주도권을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느 곳에나 들어가면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비엔나커피 등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두서너 평의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프랜차이즈들도 가세하고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녹차나 발효차를 생각하면 들어설 틈도 없는 것 같다. 태평양화학그룹의 ‘오설록’이 명동과 인사동에 녹차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티하우스’를 내고 있지만, 강남점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철수했다. 몇몇 보이차 전문점이 있지만 그것도 불신으로 커피의 대공세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차 산업과 차 문화는 분명 자생적으로 성공할 기회를 한 번 놓쳤다. 두 번 다시 그러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커피에 미칠까? 물질적 성장과 여유를 담을 문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커피는 함께 들어왔다. 커피는 자본주의의 성장에 가장 쉽게 편승할 수 있는 음료이다. 커피가 ‘욕망의 음료’라면 차는 ‘신선의 음료’이다. 커피가 ‘검은 욕망’을 상징한다면 차는 ‘푸른 청정(淸靜)’ ‘푸른 청허(淸虛)’를 상징한다. 미래 사람들은 선택할 것이다. 때로는 커피를, 때로는 차를….

    현재 커피가 차 종류에서 당연 톱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먹고 싶을 때 빨리, 입에 맞는 것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소득이 올라가고 여유가 생긴 지금,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것 이상으로 친지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고 차를 즐기려 한다. 커피점에서 홍차나 녹차류를 팔기도 한다. 찻집에서 커피를 파는 역전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 보스턴 차 사건을 그린 석판화(1846·나다니엘 쿠리에 작).
    세계적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의 매출액 중 최고를 한국의 어느 체인점이 차지하고 있다는 보도는 한국인들의 커피 수요가 해마다 급증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커피 전문점들은 다양한 맛과 향기의 커피를 선전하며 시장 확대를 꾀하고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커피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여전히 빵과 과자와 커피라는 서양 음료문화의 연대가 지배적이라는 말이다.

    커피 업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국내 커피시장은 약 2조원에 달했으며, 국민 1인당 연간 250잔(하루 0.7잔)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아이들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제하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기준으로는 하루에 2∼3잔 꼴로 돌아간다. 이에 비하면 차는 지난 한 해 동안 약 5000여t 생산되었고,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은 후하게 잡아도 약 80∼100g에 불과하다. 이는 한 사람이 10일에 한 잔 마시는 정도이다. 차인을 제하면 일반인들은 차를 마신다기보다는 손님으로, 혹은 사회생활 속에서 우연히 접하게 될 때 마신다는 수준이다.

    한국은 차 생산량(세계 생산량의 0.5% 미만)이나 소비량(10일에 1잔)으로 볼 때 아시아에서 가장 뒤떨어진 형편이다. 아시아 각국의 차 재배면적과 생산량의 순위를 보면 중국과 인도가 막상막하이다. 중국은 면적은 인도에 비해 두 배인데 생산량은 인도에 뒤진다. 그다음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베트남, 일본, 대만, 한국의 순위이다(2000년도 기준).

    일본은 녹차 생산량은 한국보다 50배, 소비량은 약 25배에 달한다. 국민의 차 소비가 없는데 차도나 차례를 운운하는 것은 자칫 차인들만의 잔치거나 차문화를 겉치레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 양이 질을 높인다는 것은 철칙이다. 농약파동이나 불량 보이차 사건 등으로 차 제품의 신뢰에 결정적 찬물을 끼얹은 것도 차의 수요를 늘리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다. 문화란 한두 사람이 즐긴다고 금방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전체가 꾸준히 차생활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커피를 먹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커피와 함께 차도 곁들이자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때는 커피를 마시고, 차를 마시고 싶을 때는 차를 마실 줄 아는 선택의 지혜를 갖자는 뜻이다. 우리가 커피와 함께 차를 즐겨야 하는 까닭은 차는 미래에 인간성의 변화와 평화의 시대에 걸맞은 건강음료라는 점 때문이다. 차는 마시기까지 품질에 대한 신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번거로움과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음료로서, 약으로서, 특히 스트레스와 고영양화로 인해 생기는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는 건강음료로서 커피가 지니지 못한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머지않아 차는 커피보다 훨씬 더 고급의 미래음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동양이 세계를 주도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면 문화도 동양적인 것이 부가가치가 높아질 것이고, 동양적인 음료가 서양인들에게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서양적인 것이 좋은 것처럼 우리가 따라간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서양인들은 머지않아 동양의 차를 마시면서 차선(茶禪)과 명상을 논하고 동양의 정신문명에 매료되는 것을 삶의 희망으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일찍이 ‘차문화권’에 들어 있는 우리는 유리하다.

    차는 동아시아 삼국이 고대에서부터 접해온 식음이면서 기호품이다. 그러나 차는 물처럼 흔한 것은 아니라 도리어 귀한 것이었다. 차가 중국에서도 제2의 물이 된 것은 한참 후대의 일이다. 요즘 중국은 차가 없이는 못 사는 나라이고, 일본은 중국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차가 없이는 문화의 흐름이 끊어질 정도이다. 한국은 아직 단절된 차문화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차 애호인구는 줄잡아 500여만명에 이른다. 1960∼70년대의 5만명에 비하면 크게 늘었다. 차 소비량도 약 2000t에 이른다. 60∼70년대의 20만t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이다. 대체로 차 인구와 소비가 60∼70년대에 비해 100배 증가한 셈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고, 차에 길들여지는 시간을 갖게 하고, 피치를 올려야 한다.

    앞으로 세계사적으로 ‘느림의 미학’시대에 들어가면 차는 점차 애호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차 산업의 발달과 부가제품의 개발, 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차는 앞으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선도해 갈 것이다. 한국도 차문화의 중심에 진입해야 한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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