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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차맥] (2)차는 제2의 물 ‘느림의 문화’의 상징이다

눌재상주사랑 2011. 8. 8. 02:03

[박정진의 차맥] (2)차는 제2의 물 ‘느림의 문화’의 상징이다<세계일보>
  • 입력 2010.12.27 (월) 16:46, 수정 2010.12.27 (월) 23:23
잃어버린 전통의 향수 그리며 ‘기다림의 문화’ 씨뿌린다
  • 차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이는 소득의 향상에 따라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잃어버린 전통에 대한 향수와 회복에 대한 무의식적 욕구도 커지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차라는 개념에 커피는 물론이고, 생강차·대추차·율무차·매실차 등 여러 대용차와 탕차를 포함하여 ‘차’라고 부르고 있다. 차나무의 차를 마시는 ‘음차(飮茶)문화’의 단절도 한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는 예부터 물이 좋은 우리나라는 물에 무엇이든 섞으면 음료가 되는 환경 탓이다. 앞으로 차나무의 차는 그냥 ‘차’라고 부르고 나머지 차는 고유명사를 붙여서 부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대만 평림(坪林) 다업박물관에 전시된 여러 가지 모양의 차(茶) 글자들.
    산천의 물을 그냥 먹어도 되는, 좋은 물에 다른 성분을 첨가하여 기호 음료로 차를 먹는 나라와 물이 나빠서 식수 대신에 ‘차’를 먹어야 했던 중국과는 이렇게 판이하게 ‘차’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좋은 차와 좋을 술은 식수가 좋지 않은 나라에서 음료를 확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개발된 사례가 많다. 중국의 차, 프랑스의 포도주, 독일의 맥주 등은 그 좋은 예이다. 러시아의 보드카도 러시아어인 ‘voda’(물)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함으로써 도리어 세계적인 것을 개발하게 되는 것은 인류 문명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 차는 차나무에서 이파리를 따서 가공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차나무는 아열대 식물로 기본적으로 아열대의 기름기 많은 토양에서 기름기를 극복(극기)한, 생태계의 자기충족적인 자생식물이다. 차는 인간에게 정제된 물을 제공하고, 각종 질병의 약초가 될 운명을 타고난 식물이다. 아열대 사람들은 일찍부터 차나무의 차 잎을 약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차 잎을 넣어 탁한 물을 정화해 음료로 사용했다. 중국의 좋은 차는 한국의 인삼에 비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인체의 4분의 3이 물로 구성된 인간은 물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그런데 물은 또, 다른 성분을 가진 물질과 섞어 먹으면 먹기도 쉬울뿐더러 다른 물질과의 화학적 변화를 통해 인간에게 새로운 영양을 제공하기도 하기 때문에 광의의 의미에서 차가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차는 술과 더불어 인간에게 물을 대신하는 음료이다. 그러한 점에서 커피를 비롯하여 수많은 대용차 혹은 탕은 차나무의 차보다는 보다 세계적으로 일반적이다.

    인간의 모든 음료는 물과의 칵테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칵테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술이고, 차이다. 대체로 추운 지방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술을 발달시켰으며, 러시아의 보드카를 비롯하여 스카치 등 높은 도수의 증류주들이 여기에 속한다. 항온동물인 인간에게 체온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긴급한 것이다. 북방 기마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한국인이 술을 좋아하고, 아침에 뜨거운 국이나 탕을 먹어야 몸이 풀리는 것도 북쪽 기마민족의 DNA가 작용하고 있는 탓일 것이다.

    최근세사에 들어 개발된 ‘고추가 들어간 김치’(김장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도 취하는 것이든, 뜨거운 것이든, 매운 것이든 몸을 뜨겁게(hot) 하고 달구는 점이 공통적이다. 한국인은 대체로 뜨겁고, 자극성 있는 음식을 즐겨한다.

    차나무는 학명이 ‘Thea sinensis’로 차나무과, 차나무속에 속한다. 사철 푸르고, 다년생 종자식물이다. ‘Thea’는 차(茶)의 중국 발음을 딴 것이다. ‘sinensis’는 중국이라는 뜻이다. 차나무의 생장 적지는 아열대 지역으로 현재 조금씩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남위 25도∼북위 40도 사이, 연평균 강우량 1200∼1300㎜, 연평균 기온 12∼13도, 17∼18도이다.

    차나무의 차는 아열대에 사는 사람들과 이들 지역과 교류하거나 이주·정복을 통해 차를 접한 사람들에 의해 즐겨졌다. 차의 발원지는 중국이라는 것이 세계학계의 정설이다. 지금의 윈난, 쓰촨지역이다. 이들 지역에는 천년을 넘은 고차수가 즐비하다. 2004년 중국 저장성 여요현(餘姚縣) 전라산(田螺山) 하모도(河姆渡) 선석기 유적지에서 출토된 차나무 뿌리는 6000∼7000년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 여요현 전라산 하모도 유적지의 집단취락지와 차나무가 출토된 유적.
    차에 대한 기록보다는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인해 차의 상한연대는 앞으로도 점차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2008년 11월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자동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전라산(田螺山)유지(遺址)박물관’ 현장을 찾아 그 뿌리를 확인하고 감격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차나무는 ‘산차(山茶)’였으며, 집단 거주지 안에서 확인된 것 등으로 보아 재배된 것으로 학계는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6500여년 전부터 차나무를 재배하여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화적 연대는 이보다 올라간다. 차의 비조는 신농(神農)씨이다. 동아시아 문명의 원조 중의 한 인물로 통하는 신농씨는 차나무뿐만 아니라 농사의 신, 의약의 신, 문명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신농씨는 성이 강(姜)씨로 양을 토템으로 하는 모계집안의 자손(羊 )으로 해석된다. 처음엔 지금의 중국 서쪽 지방 출신이었으나 동쪽인 산동의 곡부로 장가와서 한민족(동이족)의 조상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농은 산동에 장가를 왔지만(당시는 모계사회로 추측됨) 그후 인류사회가 부계사회로 바뀌는 바람에(모계를 고집한 한민족과 갈려) 중국의 삼황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한족과 동이족의 경계선상의 인물이다.

    신농씨는 수많은 초목의 잎을 먹어보고 직접 독초를 가려낸 것으로 유명한데 차나무는 처음에는 약용(藥用)으로 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차(茶)나무의 한자를 보면 풀(艸)과 나무(木) 사이에 인간(人)이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차(茶)자와 약(藥)자의 차이는 약자의 초두 밑에 백 가지의 풀을 상징하는 상형이 빠진 자리에 사람 인(人)자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아마도 차나무의 차 잎이 가장 인간에게 종합적으로 약이 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약초 중의 약초였던 것으로 보인다.

    차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다(茶)요, 둘째는 가(木 )요, 셋째는 설(花)이요, 넷째는 명(茗)이요, 다섯째는 천(花)이다. 아마도 지방에 따라, 혹은 차의 종류에 따라, 차의 생산 시기에 따라, 그리고 맛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가’는 쓴 차를 말했고, 양집극이 말하기를 촉나라 사람들은 차를 ‘설’이라고 했다고 하며, 곽홍농이 말하기를 일찍 딴 것을 ‘다’라 하고 늦게 딴것을 ‘명’ 혹은 ‘천’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도’(花)이다. ‘도’는 ‘차’(茶)자와 거의 모양이 같은 뿐만 아니라 학자에 따라서는 차자의 고자라고 한다. ‘도’자는 초두 밑에 여(余)자가 있는 글자인데 이는 ‘여’(餘·茶禮를 나타냄) 혹은 ‘여’(艅·배나 잔을 뜻함)와도 통해 이 글자 자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차례(茶禮)를 지냈다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차의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쓰촨성 몽정산 차밭 ‘몽정황다(蒙頂皇茶)’ 앞에 선 필자(맨 왼쪽).
    다성(茶聖)이라고 불리는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에는 “차가 마시는 것이 된 것은 신농에서 발원하였다”(茶之爲飮 發呼神農氏)고 적혀 있다. ‘도’자는 ‘시경(詩經)’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데 시경은 오경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따라서 중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생활 속에서 이 글자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차나무는 대체로 양쯔강 유역과 그 아래에서 자란다. 그러니까 중국을 화북, 화중, 화남이라고 볼 때 화남 지방이다. 윈난, 쓰촨을 핵심으로 사방으로 퍼져간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국 내에서는 양쯔강을 타고 가장 활발하게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양쯔강 하류인 상하이와 닝보 등은 우리나라의 제주도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 차나무가 자라는 지역은 아열대 기후대이다.

    우리나라는 온대에 속한다. 차 재배 지역의 북방한계선에 속한다. 그래서 예부터 하동이나 보성, 사천, 김해 등 남부지방에서 차를 재배하였다. 앞으로 경제성을 따지고 수확의 시기 경쟁을 한다면 제주도가 차를 재배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며, 이 지역이라야 적어도 경제성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제주도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차 생산지로 꼽히고 있는 하동이나 보성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하동과 보성은 겨울에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갈 때도 있지만 제주도는 최저기온이 영하 5도 정도이며, 화산지대로 인해 토질에 유기성분이 많으며, 물이 잘 빠지는 현무암 토양, 해무(海霧)로 인해 차양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봄에 햇차 출하 시기도 육지보다는 15일 정도 앞당길 수 있다. 중국에 비해 한 달 정도 햇차 출하 시기가 늦은 한국으로서는 제주도가 시차를 좁히는 적지도 떠오른다.

    차 재배의 북방한계선에 속하는 한국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에 비해 생산량(대량 생산)과 법제시기(햇차의 출하)를 경쟁할 수 없고, 맛의 다양성에서도 비교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중국이나 동남아는 사철 차나무를 재배할 수 있고, 차를 출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맛에서 특화전략이나 특수 가공처리로 차의 외연을 넓힐 수밖에 없다. 중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자연과 풍습, 생산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차 재배와 차 생활, 차 문화를 운운하는 것은 문화의 주체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산천이 수려하며,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한 금수강산의 한국에서 차는 필수품으로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산의 계곡이나 강에서 흐르는 물, 자연수를 그냥 먹어도 아무런 배탈이나 병이 나지 않고 물맛이 좋은 한국에서 차는 처음부터 기호품으로, 아니면 궁중이나 특권층에서 의례용으로 썼던 듯하다. 오늘날도 산업국가 가운데 한국처럼 수돗물을 그냥 식수로 먹거나, 아직도 산천에서 흐르는 물을 먹는 나라는 없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이에 비하면 국토의 전체가 황하의 황토와 황사로 뒤덮인 중국에서 차는 필수품이다. 또 돼지고기 요리를 좋아하는 나라인 중국은 차를 먹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차는 물을 정화하고 소독하면서 기름기를 분해하는 일거양득의 음료이다. 따라서 중국인에게는 도리어 우리의 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식당에 가면 으레 물을 내놓듯이 중국에서는 차를 내놓는다.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차는 물’이다. 중국에서는 차를 먹는 곳에서 으레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다. 말하자면 차는 음식과 함께 있다. 중국에서의 차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일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찻집에 가서 음식을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차는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마시거나, 아니면 특별히 차만을 마시는 셈이다. 그래서 찻집이 따로 있다. 그러니까 차는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다.

    오늘날 차의 환경, 예컨대 차를 마셔야 하는 음료로서의 필요와 문화적 욕구는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우리나라도 산업화로 인해 산천의 물을 그냥 먹어도 좋은 시절은 지났다. 으레 집을 나서면 생수를 사 먹어야 하고, 음식점에서도 아예 생수를 내놓는다. 환경 오염이 심해진 탓이다. 차는 오염된 식수를 해결하면서 여유도 즐기는 일석이조의 음료이다. 차에 대한 문화적 욕구는 그동안 산업생산의 보폭에 맞추어 ‘빨리빨리’의 대명사가 한국이었지만, 이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느림의 문화’ ‘기다림의 문화’에도 길들여져야 할 때라는 점이다.

    차야말로 ‘느림의 문화’ ‘여유의 문화’ ‘공유의 문화’의 대명사이다.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차를 마시기 위해 음식점을 찾는 날이 도래할 것을 짐작해본다. 차의 효능은 우리를 차로 유혹하지만 그뿐이 아니라, 요즘 음식문화와 음료문화의 퓨전현상이 심하니까 새로운 복합적 문화공간으로서 차문화 공간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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