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1.01.24 (월) 21:07, 수정 2011.01.31 (월)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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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日정신 깃들여져 한국인 콤플렉스 발로… 日帝의해 연원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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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이라면 으레 알고 있는 잠언과 같은 글귀가 있다. ‘음주망국(飮酒亡國) 음다흥국(飮茶興國)’이라는 말이다. ‘술을 마시면 나라가 망하고, 차를 마시면 나라가 흥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차 단체의 대표나 차계의 원로 중 이 구절을 한 번쯤 내뱉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뿐인가. 최근까지도 출간된 다서에는 이 구절이 어느 한 곳엔가 꼭 들어가 있다. 일견 생각하면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다. 음주가무의 나라인 한국 문화에서 술의 폐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선생이 하였다고 하는 게 더욱 문제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리 다산문화관 경내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상’.
박 이사장의 말은 중국 ‘십팔사략’에 나오는 구절, “우 임금이 술을 달게 마시고는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禹飮而甘之曰 後世必有以酒亡國者)라고 한 말을 지적한 듯하다.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도 “다산이 살았던 시대적 여건이나 입장이 ‘음주망국 음다흥국’을 주장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간접적으로 다산의 말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내비친다.
다산이 그 말을 했다고 믿기 어렵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이 계속 재생산되는 것일까. ‘음주망국 음다흥국’은 시로 말하면 대구가 된다. 술과 차, 흥과 망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시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은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거나 양극화될 때 묘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예술을 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철학을 하거나 역사를 이끌어 가는 데는 불리하다. 철학이나 역사는 신바람이나 양극화가 아니라 일관성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꾸준하게 이끌어 가야 진리를 찾고 강대국에 이르기 때문이다. 술 먹는 민족이 망하면 도대체 망하지 않은 민족이 없었을 것이고, 또 차 마시는 나라가 다 흥하면 왜 차 마시는 나라 중에 약소국이 많은가. ‘음주망국 음다흥국’은 애당초 캠페인 성격이 강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500여 권에 달하는 서책을 상징하는 ‘꺼지지 않는 불’.
1970년대 말 한국 차문화 부흥운동이 본격적인 국면에 들어갈 즈음에 차를 마시면 좋다는 것을 극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술을 비하하고, 차를 과대평가하는 임기응변이나 얄팍함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대구가 차 문화운동 초기에 어느 차 운동가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회자하기도 한다. 이 구절을 거론하면 그런대로 유식하게 보이기도 하고, 운동의 극적인 효과도 있어서 너도나도 이 말을 즐겨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하면 이 말이 과장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주망국 음다흥국’의 말 속에는 자기비하와 함께 숭일(崇日)정신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심하게는 한국인의 콤플렉스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이 말은 일제 때 일본인 학자나 친일학자들에 의해 생산됐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흥과 망, 차와 술이 한꺼번에 거론된 시대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시기가 일제 때이기 때문이다. 혹시 은연중에 떠도는 말이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정리되었을 수도 있다. 망한 나라에 대고 음주망국을 외치는 것은 당위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기죽이기에는 안성맞춤의 말이다.
일본은 침략 당시 범국민적으로 일상적인 차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수백년 동안 단절되지 않은 차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때마침 승승장구하는 흥국의 길에 있었던 참이 아닌가. 음주망국은 한국이고, 음다흥국은 일본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 말은 일제가 한국을 다스리기에는 적절한 말이다.
‘음주망국 음다흥국’은 다산이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졌는데도 여전히 차계의 원로들이 차 행사장이나 대담 등에서 계속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구미에 맞는 모양이다. 최근에도 자칭 차 전문가라고 하는 몇몇 사람이 이 말을 쓰는 것을 목격했다. 이제 이 구절은 인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 꼭 이 말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다산의 말이라는 것만은 빼주기 바란다.
다산은 ‘음주망국 음다흥국’이라는 얄팍한 말을 할 정도의 위인이 아니다. 적어도 5000년 한민족의 역사에서 나름대로 오리지널을 가진 대학자의 반열에 오른 선비이다. 다산을 보호하는 점에서도 이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것은 유식이 아니고, 심하게는 안이함과 상투적인 것이다.
조선을 지배하려고 들어온 일본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과음하는(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는) 음주문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음주의 나라인 우리나라가 술의 예법을 가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주도(酒道)나 주법(酒法)이라는 것이 있어서 풍류를 즐겼다. 향음주례(鄕飮酒禮)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향음주례는 조선시대에 향촌의 유생들이 학교나 서원 등에서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술을 마시던 소연이다. ‘주례’(周禮)의 사도교관직조(司徒敎官職條)에 보면 지방이 향(鄕)·주(州)·당(黨)·족(族)·여(閭)·비(比) 등으로 나뉘었는데, 그중 당에서 행하는 의례가 향음주례라고 되어 있다.
문화가 단절되거나 망하면 항상 지엽말단적인 것만 남고 본래 예의 정신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인류사의 관례다. 작금에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도 역시 본래 예의 큰 정신은 없고, 지엽적이고 형식적인 것에만 골몰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식한데 유식한 체하기는 하여야 하고, 빈약한 가문과 가풍을 일시에 올리자니 억지춘향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인가. 이것이 철학이 없고, 전통이 단절된 민족의 슬픈 모습이다. 이러한 사회현상의 일단을 두고 자조적으로 졸부근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졸부근성이라도 지나야 제대로 양반문화가 뿌리내릴 날도 있게 된다. 문화에도 월반은 없다. 수학에 왕도가 없는 것과 같다. 차라리 경제성장과 소득증대는 압축으로 달성하였지만 역시 정신문화는 그렇게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사회지도층과 지식인의 책무가 큰 것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우리가 사는 오늘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민족의 영혼과 능력이 폭발하는 시기이다. 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차문화가 부흥의 몸짓과 활개를 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의 소산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철학이 세계적인 철학이 되고, 우리의 미학이(특히 차의 미학이) 세계인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여야 할 것이다.
차를 마시도록 권장하기 위해서 술을 먹으면 망한다고 하는 것은 우선 술을 모독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차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를 마신다고 반드시 흥할 까닭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 말에는 도리어 귀족들 간에 차문화가 사치스러워서 고려가 망하는 데에 일조하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술이든 차든 사치와 허영, 그리고 과잉으로 잘못 마시는 습관에 빠지는 것이 문제이지, 술과 차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일제는 우리의 차문화 전통을 한편에서는 끊은 장본이었고, 다른 한편 저들의 차문화 전통의 유입으로 역으로 자각케 하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차문화의 이중성이다. 바로 그 이중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음주망국 음다흥국’이다.
‘음주망국 음다흥국’이라는 말 다음에 가장 친숙한 용어는 ‘다반사(茶飯事)’라는 용어이다. 다반사의 사전적 정의는 “항상 먹는 차(茶)와 밥(飯)처럼 ‘늘 있어 이상할 것이 없는 예사로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 항다반사(恒茶飯事)의 준말이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차를 마셨기에 이런 말이 형성되었을까. 차문화의 단절 기간에 성장한 필자로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말은 중국에나 있을 법한 말이다. 중국에서는 진정 다반사이다. 아마도 여기서 차라고 하는 것은 차나무의 차뿐만 아니라 여러 대용차를 포함한 차였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의 과문한 경험으로는 밥을 먹고 숭늉을 먹었던 것이 보통의 우리네 살림살이였고, 조금 상류층으로 올라가면 대용차나 차나무의 차를 먹었던 것 같다. 또 절간이나 특수집단에서는 차를 마셨을 것이다. 상류층이나 특수집단이 먹는 것으로는 다반사라는 말이 생기기 어렵다. 아마도 차의 전통이 심하게 단절된 까닭에 융성했던 차문화를 잃어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다. 그렇다면 다반사의 차문화를 찾아야만 한다. 차문화는 비단 차라는 음료를 마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가 오가고, 문화가 오가고, 소통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겪고 있는 극심한 소통부재, 불통을 음차문화가 해결해 줄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은 하루 30억 잔 이상의 차를 마시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차 소비량은 50g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커피 붐이 일어나는 것도 ‘빨리빨리’ 문화에 적합하도록 커피업계 종사자들이 발 빠르게 적응한 때문이다. 서양에서 커피는 생활 깊숙이 침투하여 사색과 철학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음료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차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서양에서는 커피와 차를 확실히 구분한다. 우리도 커피를 차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몇 해 전 필자는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바쁜 일정 중에 짬을 내서 실존주의의 대명사 사르트르와 그의 계약결혼 당사자인 보부아르가 단골로 드나든 카페 ‘마고’에 들른 적이 있다. 그곳은 헤밍웨이가 ‘해는 또 다시 뜬다’를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실내장식도 별반 두드러진 것이 없고(도리어 촌스럽게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딱딱한 의자가 창가로 둘린 허름하고 평범한 커피숍이 그렇게 유명한 명소였다. 우리의 인사동 찻집 ‘오 설록’이나 어느 전통찻집에서 세계적 작가가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차만 가지고 차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차와 다른 문화예술이 어우러질 때 선진국이 된다.
우리도 명동과 충무로, 그리고 부산·대구·광주의 유명한 커피숍과 음악감상실이 한때 청년문화의 산실이었고, 부산 피난시절의 ‘밀다원’ 시대가 있어서 더러 문학예술인에 의해 추억담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마고’ 같은 명소는 없었던 것 같다.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마당에 이제 카페나 찻집이 고급 문화예술과 철학의 산실이 되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이 말은 거꾸로 훌륭한 차문화의 전통이 성립되지 않으면 우리 문화가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한국문화는 현재 풍요 속에서 힘 있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주류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이는 민중문화가 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착각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조선조의 선비문화와 같은 고급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세계문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어느 나라든 오늘날 문화의 목표는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다. 그런데 이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것이지 구호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은 각국이 다르다.
일차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할 때는 목표가 오히려 뚜렷했지만, 이제 선진국으로의 도약하려는 우리에게 나아갈 길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문화적 이상이나 모델을 만들어야 적어도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밀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다시 ‘다반사의 날’을 기대해 본다.
차 문화는 분명히 이제 우리의 병폐가 되고 만 ‘빨리빨리’ 문화를 고치거나 개선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1위의 교통사고 사망률과 부실공사로 인한 신뢰 하락 등 여러 문제가 조급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막사발 이도다완(井戶茶碗)의 가치를 안 것으로 유명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격화된 국민의 심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다도를 체계화했다. 오늘날 일본 다도가 나름대로 완성된 것은 그러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pjjdisco@naver.com◆황금 찻잎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선암사 칠전선원 뒤에 천년을 이어온 야생차 군락지가 있다. 차 살림이 배여 있는 선암사 야생차 군락지 근처에는 조왕신을 모신 차 부뚜막과 날마다 흘러내리는 삼탕수가 있어 한국차문화의 일번지로 자리매김하였다. 일찍이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 대각국사(大覺國師·1055∼1101) 그 뒤를 이어 묵암최눌(默庵最訥·1716∼1790), 해붕 석전령 등 호남(湖南)의 7고붕(七高朋)을 배출한 다선도량으로 이름을 떨쳤던 곳이다. 그 역사적 향기가 묻어나는 칠전선원 뒷자락 차밭에서 황금빛 찻잎이 나타나면서 한국차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예부터 차나무는 가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겨울에 열매가 떨어진 뒤 윤회의 수레바퀴처럼 새봄에 어김없이 새순이 솟아올라 무한한 생명의 끈을 이어 준다. 차나무는 가을에 꽃과 열매가 만난다 하여 실화봉화수(實花俸華樹)라고 불러왔다. 신묘년 새해 조계산 야생 차밭을 걷다가 시들어진 찻잎 사이로 눈부시게 떠오르는 햇빛이 반사되면서 황금빛 황채를 띤 찻잎을 보고 감격했다.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의 발견이다. 황금 찻잎은 그렇게 세상에 선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져 가는 차나무를 보면서 무한한 생명의 신비함을 느껴 차나무를 발견한 신농에게 한없이 감사를 드렸다.
해 뜰 무렵 어김없이 황금빛 찻잎을 보러 선암사로 달려간다. 선승들이 찻잎 우려낸 물을 마시고 도(道)를 깨달은 것처럼 이런 황금빛 찻잎에도 깨달음이 담겨 있음을 실감했다.
사진·글 제공=사진작가 운암(雲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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