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의 차맥] (5) 차례와 기제사에도 차 사용<세계일보>
- 입력 2011.02.07 (월) 21:20, 수정 2011.02.10 (목)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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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진의 차맥
조선시대 제문·편지글에 기록 많아… ‘다부’ 에도 소상히 적혀
핵가족 가속화땐 차와 간단한 다과 올리는 차례 성행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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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났다. 우리는 흔히 설과 추석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이것은 차례제사를 말한다. 반드시 차를 올리는 제사도 아닌데 차례라고 하는 까닭은 아마도 역사적으로 차를 올렸던 제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차를 올려야 하는 제사인데 언제부턴가 차를 구하기 어려웠거나 차를 대신해서 술을 사용하면서 차례의 전통이 끊어지고, 그 말만 남아서 옛날 풍습의 편린을 전하는 것일 게다.명절 때 올리는 제사를 호남지방에서는 차사(茶祀)라고도 한다. 이는 예(禮) 가운데서도 제사(祭祀)라는 것을 보다 확실히 한 용어이다. 차례를 표하는 한자말인 ‘다례’(茶禮)라고 하면 차를 가지고 예를 표하는 여러 의례를 포함하는 말이다. 예컨대 생활다례, 접빈다례, 헌공다례, 궁중다례 등을 들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 묘제에서 차를 올리는 모습. 이처럼 제사에 차를 올리는 사례가 많아졌다.
예절이라는 것은 본래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달라지고, 시대와 시절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 가부나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정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결국 제물과 제사를 간소화하더라도 정성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제사에 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1980년 즈음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지냈던 유승국 박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다부(茶賦)’에 소상히 적혀 있어서 학계의 큰 수확이었다. 특히 다부는 한재(寒齋) 이목(李穆·1471∼1498)) 선생이 쓴 것으로 조선 선비 차의 정수를 알려주는 심오한 철학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목 선생의 다부 다송(茶頌)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 마음속에 이미 차가 있거늘 어찌 다른 곳에서 또 이를 구하려 하겠는가(是亦吾心之茶又何必求乎彼耶).”
유승국 선생은 당시 이 구절을 들어서 “실재(實在)의 차를 가지고 오심(吾心)의 차로 승화한 한국인 사고양식의 표상이다”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해동의 다경으로 통하던 ‘동다송’(東茶頌·1837년)보다 340년 이상 앞선 ‘다부’는 앞으로도 그 중요성이 점증할 것 같다.
다부에 철갱봉다(徹羹奉茶)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갱국을 철수하고 차를 올린다”라는 말이다. 한재 이목의 기제(忌祭)에 대한 홀기(笏記)에 철갱봉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에 이어 유식례(侑食禮)에서 차를 올렸다고 한다.
“집사가 밥에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고 나면 초헌관은 첨잔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이어 헌관 이하 모두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다. 3∼4분 후 축관이 세 번 기침을 하며 들어가고 헌관 이하 전 제관도 따라 들어간다. 집사는 갱국을 내리고 차를 올린다. 1∼2분 후에 수저를 내리고 밥뚜껑을 덮는다.”
명절 제사를 차례라고 하기에 명절제사에만 혹시 차를 올렸던 것인가 생각했는데 기제사에도 차를 올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차를 소중히 했던 것이다. 조선조를 흔히 ‘술의 문화’라고 해서 차를 푸대접한 것처럼 단정하고 마는데 문화라는 것이 일시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에도 흥망이 있고 성쇠가 있긴 하지만 한 번 들어온 문화는, 익숙했던 문화는 어딘가에 남아서 부활을 꿈꾸게 마련이다. 아니면 적어도 조금 변형되어 어딘가에 있게 마련이다. 우리 선조가 차를 소홀히 한 것 같지는 않다. 술과 차를 그렇게 대립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술과 차는 상호보완이나 대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술과 밥 대신 차와 떡으로 꾸며진 제사상.
이는 동양문화, 나아가 인류문화의 오랜 전통, 무의식에 깔려 있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예절도 실은 살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예절을 위하여 삶이 있지 않다. 인류문화의 무의식에는 불에 대한 신앙보다 물에 대한 신앙이 먼저 있었으며, 이것은 또한 인체의 4분의 3이 물로 구성된 생물의 생존과도 직결된 당연한 것이었다. 막말로 불은 없어도 살지만, 물은 없으면 죽는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불의 가공과정을 거친 물건과 상품이 즐비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물 다음에 있는 것이다.
인류사에서 태양의 신앙에 앞서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먼저 있었으며, 이것은 바로 물 신앙에 속한다. 북두칠성은 흔히 우물 정(井)자로 표시한다. 인류신앙의 발전을 몇 자로 줄여서 말한다면 “우물 정(井)자가 십자가(十)나 만다라(卍)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원시종교에서 고등종교로 진행한 사실을 말한 것이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장독대에서 정한수 떠놓고, 북두칠성에 빌던 할머니나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이렇게 소박한 데서 출발하였다. 주검 시(尸)자도 북두칠성을 나타내고, 숟가락 시(匙)자도 북두칠성(匕)을 나타낸다. 북두칠성이 삶과 죽음을 관장하던 시절도 있었다.
제사란 바로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반대인 것 같지만 실은 동거하는 셈이다. 제사에 물과 술과 차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퇴계와 율곡도 개인적으로 차 생활을 즐겼으며, 접빈할 때 차를 내놓았고 차시(茶詩)를 여러 편 썼다.
조선의 선비들이 제사에 차를 썼음을 말하는 제문이나 편지 글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변계량과 정구의 제문, 남효온의 기제사에 관한 글, 장현광의 편지 글에서 차탕을 헌다했다는 기록, 안정복의 사당 설찬도, 이상적의 친구 생일제사, 이종홍의 사당제의에서 술 대신 차를 쓴 사실을 볼 수 있다.
한·중·일 삼국 가운데 ‘다례’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 민족이 한국이다. 이것은 오늘도 영향을 미쳐서 차 문화 전체를 표상하는 용어로 한국에서는 ‘다례’를 쓰고 있다. 중국은 다예(茶藝)·다학(茶學)·다법(茶法)을 쓰기를 즐기고, 일본은 다도(茶道)이다.
중국에서 다례라는 말은 1338년에 완성된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에서도 고작 3회 정도 쓰이고, 이것도 제사가 아닌 사찰의 접빈다례에서였다. 중국에서는 제사를 뜻하는 다례나 주다례, 별다례라는 단어가 예전에 없었으며 일본도 현대 이전에 다례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다례는 우리의 독자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추세는 ‘다례’가 차의 퍼포먼스, 즉 ‘행다’(行茶)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이는 다례의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차례는 제사, 다례는 행다로 쓰인다. 다례를 행다의 의미로 쓰는 것은 마치 차 문화의 대종이 퍼포먼스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이는 차의 부분과 전체가 전도된 것에 비할 수 있다. 행다는 다례의 일부일 뿐이다.
한·중·일 삼국은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한자문화권의 비슷한 문화이다. 또 차에 관해서는 중국이 오리지널의 나라이지만, 삼국 내에서 보면 서로 다르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것을 잘 파악하지 않으면 지구촌이 된 오늘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자칫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은 문화적으로 카피(copy)를 하면 예전보다 더 불리하다. 오로지 차이(差異)를 발견하여야 제 몫을 할 수 있다.
◇제사상에도 차를 올리는 풍습이 이곳저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흔히 선비의 육예(六藝)는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이다. 쉽게 말하면 예학(예의범절), 악학(음악), 궁시(활쏘기), 마술(말 타기 또는 마차 몰기), 서예(붓글씨), 산학(수학)에 해당한다. 이는 ‘주례(周禮)’에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서 다예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다례에 포함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다례라는 말을 쓰면 다예도 포함하는 것이어서 불리할 것이 없다. 그렇기는 한데 바로 다례라는 말에 마치 일상의 차 생활이라는 것이 제사나 의례와 같은 무게가 느껴져서 좀 불편하다. 여기에 우리가 본래 다(茶)를 ‘차’라고 발음했다. 순수 우리말 발음을 중시하면 결국 ‘차례’가 된다. 아무튼 지구촌이 더욱 국제화되고 나면, 반드시 한국은 중국 일본과 차별성을 구해야 존재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자문명권에 속해 있기에 한글발음을 하면서도 한자를 동시에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자문화권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특히 개념어가 많은 철학과 사상은 한자를 쓰지 않고는 표현이 어렵다. 이때 중국과의 차별성, 일본과의 차별성을 어떻게 기하느냐가 문제이다. 그렇다고 같은 말과 단어를 쓰면서 그 속에 우리의 정신이 있다고 말한다면 서양에서는 물론이지만, 중국과 일본을 대할 때도 차이를 표현할 수 없다. “그게 중국 것 아니냐” “그게 일본 것 아니냐” “중국과 일본의 것과 다른 점은 무엇이냐”란 질문을 받기 십상이다.
일본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한국에 다도(茶道)가 있느냐”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는 ‘다도는 일본 것인데’라는 저의가 숨어 있기도 하고, 더러는 한국의 차 생활을 몰라서 묻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일본 사람으로서는 당연하다. 여기에 신경질적으로 대하면 우리가 손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경허(鏡虛), 만공(滿空), 용성(龍城), 한암(漢巖), 학명(鶴鳴), 만암(曼庵)을 거쳐 조사선과 백장청규의 정신을 이어온 서옹(西翁) 큰스님은 생전에 일본 NHK 기자가 묻는 질문에 선문답 식으로 응대한 적이 있다.
“한국에 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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