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9〉 ‘달마티아의 섬 흐바르’<세계일보>
- 입력 2011.08.26 (금)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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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단하지만 섬세한 느낌…우아한 맛 풍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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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티아의 주도 스플리트에서 카페리를 타고 브라치 섬과 솔타 섬 사이 바다를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흐바르섬에 도착한다. 흐바르는 그리스가 식민지로 개발한 이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천혜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드리아해의 대표적 휴양지이다. 흐바르에서는 달마티아 와인 문화가 꽃을 피웠다. 흐바르(Hvar)는 유럽에서도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와인 중에는 1년 중 해가 비치는 시간을 계산하여 ‘2718’이란 것도 있다. 이는 마케팅 교수이기도 한 이보 두보코비치(www.dubokovic.hr)가 집안의 전통을 살려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와 만드는 와인이다. 품종은 진판델의 유전적 아버지인 플라바츠 말리로 만든다. 흐바르 내륙에는 청포도, 남해안에는 적포도를 심는다. 그의 좁다란 양조장에서 여러 가지 와인을 놓고 시음하던 중에 맛 본 플라바츠 말리로 만드는 ‘메드비드’는 단단하지만 섬세한 느낌이 들며 우아한 맛을 풍겨 가히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와인이라고 할 만했다.
흐바르는 한때 지금의 세 배가 넘는 인구가 모여 살 정도로 풍요로웠다. 1890년대부터 겪기 시작한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 진드기)의 폐해로 프랑스 수출길이 막혀 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고 떠나면서 섬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햇빛이 잘 드는 경사면에는 내륙이나 해안이나 구분 없이 포도나무가 재배되고 있고, 그 주변 경사면이나 평지에는 올리브와 라벤더, 로즈마리가 자란다. 특히 흐바르엔 흐드러지게 피는 라벤더가 무성해 ‘라벤더의 섬’이란 별칭을 달고 있다.
섬에 도착하면 생면부지의 현지인들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섬에서 뭍으로 내려도 마찬가지다. 마치 ‘도를 아십니까’ 하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방이 있어요.” 농업과 관광으로 먹고살기 때문에 달마티아에서는 자주 보는 광경이다. 한번도 이들을 따라간 적은 없지만, 가끔 블로그를 보면 무난한 시설에 저렴한 비용으로 잘 지냈다는 후기가 대부분이다.
한 주간을 보냈던 이보 두보코비치의 여름 별장.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 가서 매일 아침 장을 봐 식탁을 차렸다. 태양은 아침이라도 관대하지 않았다. 피해야 할 정도로 뜨거웠다. 구멍가게의 이름은 마켓, 없는 것 빼 놓고 다 있었다. 몇 덩어리의 빵과 잼, 토마토, 요구르트, 푸아그라 파테, 우유, 분말 커피, 오렌지 주스 등 한 보따리를 챙겨 마당 플라스틱 탁자에 펼치면 그럴 듯한 아침이 차려졌다. 빵은 매일 새 걸로 가는지 몰라도 신선하고 고소해서 나흘 내내 메뉴는 동일했어도 흐바르의 이국성을 해치진 않았다. 마음껏 개봉해도 좋다는 두보코비치의 와인들은 단 한 차례도 식탁에 올리지 못했다. 아침엔 어울리지 않아서 그랬고, 저녁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양조장 즐라탄 오토크가 운영하는 이색적인 원뿔 지붕의 식당에서는 직접 잡은 해산물에 직접 담근 와인 만을 공급해서 인기가 높다.
즐라탄 오토크의 와인은 두 가지로 크게 구분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숙성과 오크통 숙성으로. 와인 시음 후 점심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시음과 점심을 곁들이는 편이 낫다. ‘비로 이 드로’란 이름의 이 점심 전용 식당은 마리나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원추형 돌 건물은 참 보기 좋다. 건물 지하 한쪽 벽면은 유리가 있어 물고기 유영을 볼 수도 있고, 옆에 와인도 저장하는 셀러가 있다. 잠수함에 내려온 기분이 든다.
흐바르 타운 위로 보이는 스파뇰라 요새는 베니스 제국이 건설했다.
즐라탄 양조장을 상징한다는 소나무 바로 앞은 다이빙 하기에 좋다. 에메랄드빛 바다라도 몸을 던지는 일은 두려운 나는 연방 카메라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새 아들 녀석은 용감하게도 6m 아래로 다이빙을 감행했다. 복잡한 모양의 문신을 드러내며 소나무 아래 앉아 기타를 치던 꼭 히피처럼 보였던 한 미국 청년은 여기가 지상의 낙원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버나드 쇼는 일찍이 미항 두브로브니크를 지상의 낙원이라고 했다.
흐바르가 달마티아 관광 일번지란 사실은 요트의 정박지 마리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트들이 어찌 그리 예쁜지 모르겠다. 다양한 디자인의 요트들이 빼곡히 들어차 바닷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관광객들도 다채로운 의복을 걸치고 자신들만의 다양한 몸짓과 언어로 조잘거린다. 벌써 내년 바캉스의 행선지를 짜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오늘 밤 어떤 클럽을 갈지 고민하는 걸까.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 추천 식당 …흐바르 파노라마 식당
흐바르 타운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파뇰라 요새보다 더 좋은 데가 있다. 전망을 즐기면서 거기에다 맛난 식사까지 겸할 수 있는 곳이다. 타운에서 한 5분쯤 산으로 달려 꼭대기에 다다른다. 글자 그래도 파노라마 식당이다. 우선 주문부터 하고, 바위 덩어리를 테이블로 꾸민 전망 좋은 한쪽으로 몇 발 내려간다. 멀리 이탈리아 반도까지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트여 바람이 시원하게 몸을 적신다. 허브를 가지고 만든 집술 여러 가지와 와인을 종업원이 대령한다. 치즈며 염장한 돼지 앞다리 햄은 이탈리아 것과 모양이 비슷하다. 가벼운 안주에는 레드라도 화이트같이 가벼운 게 넘기기 좋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이것 저것 맛을 보고, 다시 식당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면 얼마 지난 후 드디어 양고기 페카가 식탁에 차려진다.
파노라마 식당의 페카 양고기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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