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8〉 ‘포르투갈 와인’<세계일보입력 2011.08.04 (목) 22:12, 수정 2011.08.05 (금)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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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담가 주었던 달짝지근한 포도주, 바로 그 맛
- 유럽의 서단 포르투갈 와인은 토속적이다. 정이 있으며 인간미가 풍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포르투갈의 도루 강변 포도밭에서는 토착 품종들이 전통 방식으로 양조된다. 포르투갈의 대표 와인, 포트는 시골 맛이 난다. 어릴 때 할머니가 늦여름에 담가주는 달짝지근한 포도주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맛이다. 서유럽 끄트머리에 위치한 포르투갈로 떠나는 여행은 한 세대 전의 시골 마을로 가는 기분이 든다. 세련되지 않고 무척 투박한 현지인들 마음에서 우리의 ‘정’을 발견하는 것은 이곳을 여행한 많은 블로거들이 증거한다. 변방 포르투갈로의 여행은 고향 할머니 집에서 맛보는 구수한 포도주가 특색이다. 나는 포르투갈 와인을 표현할 때 와인보다는 포도주란 용어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건 ‘와인으로 읽는 서양 문화사’에서 이색적인, 그리고 아주 도발적인 치환이다.
도루 강가에 위치한 퀸타 데 나폴레스(Quinta de Napoles)는 디르크 니에푸르트가 소유하고 있는 양조장이다. 여기서 만든 와인은 배를 타고 포르투 항구로 옮겨져 전 세계로 수출된다.
영국의 와인상들은 런던에서 뱃길이 가장 가까운 포르투갈의 북서 연안지대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곳의 와인들은 구조가 약한 화이트 와인이 주종이었다. 그들은 험한 뱃길에도 와인의 상태가 유지될 우수한 레드 와인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스페인에서부터 발원하여 대서양으로 이르는 도루(Douro) 강을 따라 내륙 깊숙이 와인 사냥을 계속했다.
국제경제학의 단골 주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는 영국의 직물과 포르투갈의 포도주가 등장한다. 이 두 산업은 각각의 나라에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로서 그 결과물을 교역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논리인데, 최소한 영국에 포르투갈의 포도주는 경쟁력 있는 상품이란 주장이다. 포트 생산자 디르크 니포르트(Dirk Niepoort)는 “14세기부터 영국과 포르투갈은 상호호혜적인 교역조건을 통해 무역이 활발했으며, 특히 18세기부터는 영국 자본가들이 포르투 항구에 포트 양조장을 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라가레에서 포도를 밟는 장면이다. 무려 5시간가량 축제처럼 진행되는 이 작업은 자정 무렵 마치지만, 다음날 새로 딴 포도는 또 하나의 축제 몫이기에 각별한 신체 기능이 요구된다.
디르크 니포르트는 라가르 양조의 장점을 이렇게 말한다. “그저 전통방식이라 취하는 게 아니라, 발로 밟으면 껍질 속 타닌 성분이 빠른 시간 내에 빠져 나오고 발효 개시도 빨라 신선하고 향긋한 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포트 와인을 만들 때에는 전통 방식으로 하는 게 옳다.”
2∼3일의 발효로 일정한 수준의 알코올 도수를 확보하려면 행동이 기민하고 근력이 좋은 남성이 발효조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생산량이 많아서 인력으로는 다하기 어렵다. “라가레 양조는 타닌 성분이 과도하게 많이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체 와인을 다 라가레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고 디르크는 말했다. 이렇듯 포트는 와인을 쉽게 구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등장한 영국인들의 와인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의 와인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포르트를 해외여행의 필수품으로 여기는 애호가들도 많이 생겼다. 달달하고 도수가 높아 시차가 안 맞는 먼 나라 여행에 포트 한 잔이 단잠을 준다. 개봉 후 여러 날이 지나도 포르트는 끄덕 없으며 잘 상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기를 끄는 요인 중 하나다. 휴 존슨은 그의 저서 ‘와인 이야기(Story of Wine)’에서 보르도 와인의 대용으로 떠오른 것이 샴페인과 포르트라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포르트는 이제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와인이 되어가고 있다. 산티아구로 가는 길 마지막에 선 도보 여행자들은 발 아래의 대서양을 보고는 완주의 기쁨을 만끽하겠지만, 그 바다를 평생 마주 보고 살아온 포르투갈인들은 세상의 끝에 선 기분이었을 것이다. 변방에 살고 있어 유럽의 개화와 산업 발전에 항상 뒤처졌던 포르투갈인들은 지리상의 발견이 아니었다면 세계사에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리스본을 중심으로 펼쳐진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은 브라질을 수중에 넣고 최고조에 달했으나, 이후로 별 대책 없이 후퇴의 길을 달리게 된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호나우두는 축구를 무기로, 그리고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조제 사라마구는 문학을 기치로 내세워 포르투갈을 알리고 있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와인 저장실에서 포즈를 취한 디르크 니포르트는 와인회사 니포르트의 대표이다.
챔피언스리그 단골팀 역시 포르투이다. 18세기부터 포트 와인으로 포르투갈의 물주 역할을 해 온 포르투는 축구 실력도 뛰어나다. 지방색이 강하기로 이름난 이탈리아만큼이나 이곳의 지방색도 이름나 있다. 디르크의 한마디. ‘포르투는 벌고, 리스본은 쓴다’, 즉 와인과 직물공업을 통해 포르투가 뼈빠지게 일하면, 리스본 신사들은 펑펑 쓰기만 한다는 말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포르투에서 와인업을 하고 있는 디르크 니에푸르트는 격세지감 한마디를 건넸다. 이십 년 전만 해도 내가 라가르 방식으로 포트를 만들고 있었을 때, 많은 양조장에서는 “왜 구닥다리 방식을 고집하느냐, 그냥 압착기에 넣고 포도를 짜면 그만인 것을”하며 비아냥거렸다. 나는 라가르로 하는 것이 아로마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불편한 시선을 보냈던 이들은 이제 모두 라가르 방식이 최고라고 떠든다. 와인 양조에서 토착성이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빈티지가 좋으면 전체 포트 생산량의 60%까지 라가르에서 밟는다. 포도껍질 속까지 잘 익었기에 추출을 더 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보통 해에는 40% 정도만 라가르를 쓴다. 포르투갈의 와인은 포트만이 아니다. 보통의 레드도 있고, 화이트도 있다. 포르투갈의 이런 일반 와인은 미래가 무척 밝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포르투갈만의 토착 품종이 잘 보존되어 있어, 지방색 강한 개성 와인을 찾는 애호가들에게 포르투갈은 서유럽 와인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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