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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미술산책] 차분함 속에 열정을 담다…나폴레옹도 반한 고전적 단순미

눌재 2013. 12. 14. 09:47

[CEO를 위한 미술산책]   차분함 속에 열정을 담다…나폴레옹도 반한 고전적 단순미

입력
2013-11-29 21:36:19
수정
2013-11-30 10:05:31
지면정보
2013-11-30 A19면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23) 카노바와 신고전주의 조각
카노바의 ‘큐피드와 프시케’ (1793년)

카노바의 ‘큐피드와 프시케’ (1793년)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세상은 돌고 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성적이고 차분한 미술이 계속되다 보면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격정적인 미술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다가 다시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안정감을 찾고 싶은 심리가 발동한다. 그래서 예술의 역사는 이성에 바탕을 둔 고전주의적 경향과 감성에 바탕을 둔 바로크적인 경향이 마치 시소 게임하듯 주거니 받거니 교차한다.

18세기 말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200여년간 지속된 바로크 미술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베르니니가 ‘다비드’를 마치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처럼 묘사한 이래 조각은 안정감을 잃고 저마다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대상황도 변했다. 더 이상 교황이 지배하는 시대도, 루이 14세 같은 전제 군주가 지배하는 세상도 아니었다. 세상은 뒤바뀌어 이제 시민이 세상을 호령하게 됐다. 유럽을 휩쓴 혁명 열풍으로 구귀족의 부패하고 경박한 태도는 소박하고 차분한 삶에 대한 애호로 대체됐다.

이런 새 시대의 기운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사람은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1757~1822)였다. 베네치아 부근 작은 마을에서 석수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고아가 돼 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했다.

젊은 시절에는 바로크 조각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1779년과 1781년 두 차례의 로마 방문을 계기로 신고전주의자로 변신한다. 그곳에서 목격한 로마 고대 유물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 조각의 균형과 비례, 그리고 정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 특히 그곳에 와 있던 스코틀랜드 고고학자인 개빈 해밀턴의 영향으로 고전주의 미술의 찬미자가 된다.

신고전주의 미술은 구귀족에게 환영받았던 로코코 미술(후기 바로크)의 지나친 장식성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물론 18세기를 풍미한 계몽주의 영향도 컸다. 이성과 논리를 중시한 계몽사상가의 영향으로 조각에서도 단순명료하고 정적인 미감을 강조한 고전풍의 작품이 환영받게 된다. 카노바의 ‘큐피드와 프시케’는 그런 시대정신을 구현한 명작이다.

로마신화에 의하면 ‘프시케(Psyche·정신)’는 어느 왕국의 공주였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비너스의 질투를 받았다고 한다. 비너스는 아들인 큐피드를 보내 프시케를 가장 혐오스러운 자의 품에 안기게 하려 했는데 정작 큐피드는 프시케의 아름다움에 반해 자기 부인으로 삼는다. 카노바는 이 두 존재가 사랑을 나누는 격정의 순간을 고전적인 미의 원리에 담았다.

작품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프시케가 자신을 찾아온 큐피드를 맞이하는 장면이다. 날개를 활짝 펼친 큐피드는 사랑스럽게 프시케의 가슴을 감싸 안고 프시케는 팔을 하트 모양으로 벌려 큐피드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숨 막히는 격정의 순간이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의외로 차분해 보인다. 그 효과는 구도의 단순함에서 온다. 카노바는 이 장면을 두 개의 X자로 간략하게 처리했다. 정면에서 바라본 큐피드는 X자 모양이고 포옹한 두 사람의 모습도 X자로 교차한다. 고대 조각이 중요하게 생각한 단순미와 고요한 아름다움이 카노바에 의해 성공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드라마틱한 사랑의 순간을 묘사했고 다이내믹한 액션을 순간 포착했다는 점에서 바로크 미술 전통 또한 이어받고 있다. 고전적인 조각의 원리에 바로크적 감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것은 전적으로 카노바의 공이다. 그런 카노바를 나폴레옹은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고전미술이 풍기는 장엄한 아름다움은 전 유럽을 호령하는 황제에게도 걸맞은 미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카노바에 의해 부활한 고전주의 조각의 전통은 19세기 후반이 되면 더 이상 주목을 끌지 못한다. 다시 바로크가 득세할 차례가 온 것이다. 과연 그 주인공은 누가 될까.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