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형상의 본질을 조각했는데…쇳덩어리 취급받은 예술품
입력
- 2013-12-13 21:33:54
- 수정
- 2013-12-14 02:05:26
- 2013-12-14 A21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25) 브랑쿠시와 현대조각
브랑쿠시의 ‘키스’(왼쪽)와 ‘공중의 새’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첸은 1926년 프랑스에서 루마니아 출신 작가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의 ‘공중의 새’라는 청동제 조각을 구입해 들여왔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법이 수입 예술품에는 면세혜택을 부여했는데 세관에서 이 작품을 원자재로 간주하고 240달러라는 높은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스타이첸은 예술품이라고 강력하게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식을 전해 들은 작가는 당시 뉴욕에 거주하던 친구 마르셀 뒤샹을 시켜 소송을 내게 했다. 휘트니미술관 설립자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재정적 도움을 자청했다. 이 사건은 브랑쿠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미술 작가 모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참에 변화하는 예술 개념에 대한 당국의 몰이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얼핏 보면 유선형의 기다란 청동 막대처럼 생긴 이 작품은 양 끝이 뾰족한 모양으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새의 궤적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표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주변 풍경이 그곳에 반사되게끔 했다.
소송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보수주의자들은 미술은 사실적 재현을 목표로 하는데 이 작품은 이름만 ‘새’라고 명명했을 뿐 새를 연상시키는 그 어떤 요소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새로운 미술개념을 옹호하는 모더니스트들은 이 작품이 공간을 비상하는 새의 본질을 정확히 재현했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분위기는 모더니스트 편으로 기울어 법정은 브랑쿠시의 작품을 예술품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브랑쿠시의 작품은 입체적인 조각이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원리는 세계의 본질적인 구조를 탐색한 세잔의 회화관과 원시적 단순성에 매료된 피카소의 예술관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 군림한 로댕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로댕은 조각에 심리적인 측면과 표현성을 결합한 근대조각의 혁신자지만 근본적으로 전통 조각의 계승자일 뿐이었다. 그런 로댕이 자신의 조수가 될 것을 권유했을 때 브랑쿠시가 “큰 나무 아래서는 작은 나무가 자랄 수 없다”며 거절한 것은 그만큼 자신과는 예술적 이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브랑쿠시는 원시조각의 거칠고 조잡한 표현보다는 거기에 드러난 단순한 형태미와 순수성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는 우주 자연의 생명체는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그 형태가 결정되며 그 특징은 단순함에 있다고 봤다. 새의 알이 럭비공 모양을 띠는 것은 배란과 알 낳기에 작용하는 구조적인 힘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 역시 자연의 본성을 따라 재료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인위적인 힘을 최소화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형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키스’에는 그런 작가의 이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기념비를 연상시키는 직육면체의 이 조각은 돌덩이 원래의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 채 표면에 포옹한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거의 추상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표현을 최소화했다. 이런 그의 작품을 보고 비평가와 관객이 ‘추상적 조각’이라고 단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정작 브랑쿠시는 “내 작품을 추상적이라고 떠벌리는 머저리들이 많은데 그들이 말하는 추상적이란 것은 실은 가장 사실적”이라며 “사실성은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개념과 본질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예술에서만 순수함과 단순함을 좇은 것은 아니었다. 부와 명예를 얻지만 삶 역시 소박하고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평생 파리에 머물렀던 그는 늘 루마니아 농부 복장을 하고 살았다. 집안에는 그가 직접 손으로 깎아 만든 목재의 소박한 가구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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