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화첩 기행]<10>'바람의 도시' 케이프타운 | ||
떠돌이 화가 천국… '阿 미술의 용광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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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조탁한 조형물 테이블마운틴
기내에서 땅을 내려다보니 거대한 원반 모양의 잔디밭 같은 풍경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축구장일까.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는 농장들이다. 저 멀리서 낯익은 풍광 하나가 다가온다. 케이프타운의 상징 테이블마운틴이다. 2시간 만에 케이프타운 공항에 내리니 바람이 손님을 맞는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해야 하는 해안을 끼고 있어 연중 대부분 바람이 세차게 부는 도시다. 케이프타운 시민들은 이 바람을 ‘케이프 닥터’라 부른다. 각종 공해물질을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케이프타운 근처 바닷가는 공기 좋고 쾌적해 유럽 부자들의 별장이 많다. 최근엔 일본 노년층이 노후를 보내려고 이곳에 정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급 주택들이 해변가를 따라 점과 선을 이루고 있다. 일조량도 많아 양질의 청포도가 생산돼 남아공 화이트와인은 어디에서든 알아준다. 기내에서 서비스로 주는 백포도주를 승객들이 여분으로 챙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해질녘 짙은 실루엣만 보여줬던 테이블마운틴이 아침 햇살에 벌겋게 얼굴을 드러낸다. 거대한 석조 성곽처럼 우뚝 버티고 있다. 오랜 세월 자연이 조탁한 조형물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테이블처럼 평평한 정성에 오르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테이블마운틴을 이젤 삼아 두 화가가 화폭을 펼쳤다. 아프리카 끝자락에서 아프리카를 담기 위해서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이 캔버스에 안긴다. 지중해에서 이식했다는 소나무들이 테이블마운틴 자락을 치장하고 있다 숙소가 위치한 롱 스트리트 카페 거리는 밤새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흥겨운 음악 소리에 누워 있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유럽에서 왔다는 백인 여성들이 그룹을 지어 카페에 놀러 가자고 방문 노크를 한다. 할인도 받고 함께 놀 수도 있느니 일석이조라며 같이 카페에 가자고 성화다. 아침이 되자 카페 흑인 여종업원들이 밤새 마시고 즐긴 ‘잔해’들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지난밤의 여흥이 채 가시지 않은 듯 흥에 겨워 히프를 흔들며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정겹다. 흑인 특유의 신바람이다.
# 대륙의 끝지점서 세상을 보다
케이프반도의 동쪽 해안엔 볼더스비치가 있다. 관광객들은 펭귄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아프리카에 웬 펭귄인가. 따뜻한 바다에서도 살 수 있도록 진화된 자카스펭귄(아프리카펭귄)이란다. 일렬로 모래사장 위를 앙증맞게 아장아장 걷는 폼이 영락없는 유치원생 소풍길이다. 볼더스비치를 나와 희망봉으로 향했다. 희망봉이 아프리카 최남단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땅끝마을은 케이프반도에서 동남쪽으로 160km가량 떨어진 아굴라스곶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케이프 반도 남단인 케이프포인트와 희망봉을 많이 찾는다. 케이프포인트의 정상에는 등대가 있고 바로 아래까지 등산열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 탁 트인 바다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오른쪽으론 희망봉을 볼 수 있다. 인도양과 대서양의 해류가 만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모습은 장관이다. 끝 간 데 없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덧없는 삶이 작아만 보인다. 깃대처럼 세워진 이정표엔 베이징 1만2933km, 도쿄 1만4724km, 런던 9623km 등의 표지가 있다. 서울이 빠져 있어 왠지 섭섭하다. 이정표 푯대엔 낙서들이 그득하다. 여기에 섰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유한한 몸부림일 것이다. 몸이 떠밀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난간에 머리를 쭉 내미니 절로 바람 마사지가 된다.
# 전통과 현대의 갭 메우다
지난해부터 케이프타운 미술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10여년간 아프리카 조각을 모아 갤러리를 연 한 화랑 주인은 건축 붐, 외국인 투자 러시, 2010년 월드컵 개최, 관광객 급증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한국의 1980년대 후반을 방불케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변국 예술가들이 케이프타운으로 몰려들고 있다. 갤러리들의 주문 그림을 그려주며 생계를 유지하는 떠돌이 화가들이 부지기수다. 대부분 자신의 부족 전통을 헐값에 파는 꼴이라 길거리미술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안목 있는 갤러리들은 이들의 재능에 주목하고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란트 옥셰(Grant Oxche·30)도 그런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부시맨인 그는 인종차별 시대의 아픔을 깊이 있는 울림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 전통의 단절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부 백인 작가들과 화랑들을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의 갭을 메우려는 노력들도 활발하다. 현지에서 산(San)족으로 불리는 부시맨 회화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는 작가이자 아트원갤러리 주인이기도 한 마리에트(Mariette ·35)도 그런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 리아(Ria·65)도 화가다.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미술의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케이프타운(남아공)=편완식기자wansik@segye.com |
2007.04.02 (월) 1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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