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42) ‘달콤한 러브 스토리, 샤토 내락’<세계일보>
- 입력 2011.10.06 (목) 18:04, 수정 2011.10.06 (목)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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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대로 만드는 ‘자연스러운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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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러브 스토리가 있다. 바르사크 와인만큼이나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샤토 내라크에서 생겨났다. 이 샤토 주인장 니콜 타리(Nicole Tari)가 그 여주인공이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젊은 날 미국인과 결혼하여 샤토 내락을 일구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여러분이 여길 방문한다면 니콜은 달콤한 와인 한 잔을 시원하게 장만하여 내밀 것이다.
샤토 내라크(Chateau Nairac), 1777년에 건축된 이 단정한 이층 건물은 바르사크(Barsac) 마을 입구에 있다. 넓은 마당은 상록수를 키 낮게 조림하여 사방이 시원하게 보이도록 했다. 건물 입구를 통과해서 뒤로 나와 밖을 쳐다보면 포도밭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밭은 주변 마을의 건물 벽으로도 보호되고 있어 아주 베일에 싸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석회암 토양 위에 심은 약 40년 묵은 세미용과 소비뇽 블랑 그리고 뮈스카델 포도는 바르사크 와인을 구성하는 삼대 품종이다.
샤토 내라크는 “바르사크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구나” 할 수 있는 관찰구 같은 곳이다. 위엄 있고 단아한 샤토 정면과 정원은 멋지고도 고풍스럽다. 샤토 뒤편의 포도밭은 이곳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포도밭을 알뜰하게 살피고 있다. 한편 니콜 타리는 샤토 한쪽 날개에 달린 주택 건물에 살고 있다. 그녀의 집안을 들여다보며 “바르사크 사람들이 이렇게 생활하는구나”를 얘기하게 된다.
니콜 타리, 그녀를 보면 프랑스 여인도 과거에 얽매이며 사는구나 느낀다. 그녀는 무엇을 추억하고 있을까. 니콜은 미국인 남편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이혼을 했어도 지난날의 아름답던 순간들을 어찌 다 잊겠는가. 니콜이 그리워하는 것은 로맨스뿐 아니라 샤토의 추억이다.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추억이다. 그것은 샤토 내라크에서가 아니다. 그녀는 유년 시절과 젊은 시절을 마고에서 보냈다. 샤토 지스쿠르는 그녀 아버지가 매입한 첫 번째 샤토였다. 아버지는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꿈을 좇아 알제리나 다른 식민지로 돈 벌러 갔었던 많은 프랑스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샤토 내락을 가족 경영하는 니콜 타리.
샤토는 점점 늙어가고 주인장도 마찬가지다. 사용하는 소파와 침대도 역시 사람을 따라 묵는다. 샤토 내락의 물건들 모두 세월의 때가 묻어 있다. 하지만 손녀 아델을 보면 그렇지 않다. 그녀가 샤토의 미래이다. 아델의 총천연색 장난감들, 플라스틱 그네, 엉망진창이 된 방바닥을 보면 나이 드는 것을 잊는다. 사람 사는 모양과 맛을 풍기는 손녀 앞에서 니콜은 어디까지나 후덕한 할머니이다. 결국 샤토는 후손에 의해 결코 늙지 않는다.
유치원으로 가자고 했다. 아델의 이모가 “오늘이 종려주일 축제날이라 유치원에서 학예발표회가 있다”고 보챘다. 모든 아이들이 분장을 했다. 아델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았다. 토끼, 사슴 혹은 얼룩말 등을 떠올렸다. 아니었다. 아델은 꿀벌로 변해 있었다. 과연 스위트 와인 생산자의 자녀다웠다. 아델은 내가 샤토에 머물 때 내게 결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 되면 식탁으로 오라며 꽃을 건네기도 했다. 무척이나 수줍어하면서.
꿀벌 분장을 한 아델과 아델의 아빠 니콜라 타리.
다음으로는 가리비 구이가 나왔다. 도툼한 가리비 살점이 아주 부들거렸고, 샤토 내라크 한 모금에 입 안이 말끔해졌다. 쿠스쿠스로 이어진다. 좁쌀만 한 작은 곡물로 알제리가 고향인 이 집안 식구들은 모로코 음식으로 알려진 쿠스쿠스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치즈가 나와야 식사가 정점으로 가게 된다. 치즈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빵 한 조각이 더 필요하다. 니콜은 이제라 여겼는지 일어나 작은 창고에서 치즈 한 덩이를 통째 가져와 식탁에 올렸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산 치즈 토마와 비슷한 이름의 치즈 ‘톰’이었다. 차 타고 잠시 다녀올 만한 거리의 농장에서 직접 사왔다고 한다. 우유로 만들었고 부드러워 토마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이 치즈는 아주 싱싱한 맛이 나서 나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흔쾌히 한 조각 더 집었다. 디저트를 먹지 않으면 저녁은 끝나지 않는다, 특히 프랑스에선. 배를 달게 졸여 준비한 디저트로 저녁은 달콤하게 끝난다. 물론 샤토 내락의 잔을 다 비운 채.
샤토 내락의 연도별 와인 시음.
니콜은 아들의 이름을 니콜라로 지었다.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와인 양조가가 되라며. 니콜라의 손자인 니콜라는 와인 양조에 매진했다. 이런 대를 걸려 같은 이름을 쓰는 것은 라틴계에선 흔한 일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도 마찬가지.
어린 시절 샤토 내라크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샤토 지스쿠르에서 놀았던 니콜라는 이제 그곳에 갈 수 없음을 잘 안다. 니콜은 마고의 추억에 젖어 있지만, 니콜라는 오로지 바르사크 와인에만 매진한다. 그는 가장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와인을 만든다고 힘주어 말한다.
규정상으로는 얼마든지 당분이나 산미를 추가할 수 있지만, 그는 결코 그 규정을 준용한 적이 없다. “자연이 주는 대로만 와인을 만든다”고 말했다. 소테른으로 행선지를 잡았다면 바르사크를 거쳐야 한다. 바르삭의 샤토 내라크, 여기는 바르사크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정감 어린 곳이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레스토랑 클로드 다로즈의 베테랑 소믈리에가 조심스럽게와인을 따르고 있다.
호텔 겸 레스토랑, 클로드 다로즈 www.darroze.com
클로드 다로즈에서는 아무거나 시켜도 된다. 애피타이저로 생푸아그라를 포트 소스에 조린 거도 좋고, 푸아그라 파테를 바삭하게 구운 호밀 빵에 발라도 좋다. 때만 잘 맞으면 흰 아스파라거스에다 크림 소스도 좋고, 알이 찰지고 고소한 석화도 좋다. 메인으로는 페사크 레오냥 와인에 절여서 조린 칠성장어가 3, 4월 제철 음식으로 준비된다. 레드 와인의 색이 물든 칠성장어 한두 조각이 어찌 보면 짜장면 색깔 같아, 보고 즐기는 재미는 덜 하지만 기름진 장어의 맛은 한국이나 여기나 일품이다. 양고기도 좋다. 양갈비도 좋고 새끼 양고기 볶음도 좋다. 곧 수레가 굴러온다. 치즈를 잔뜩 담고 투명 뚜껑을 덮어 쓴 수레가 굴러 들어온다. 프랑스 식단의 개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 축구팀이 김치를 싸 들고 원정경기 가는 것처럼, 그들 역시 프랑스 치즈만 한 것을 세상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고 믿어 치즈를 들고 다닌다. 딱딱한 걸 좋아하면 콩테, 부드러운 걸 좋아하면 브리나 카망베르, 특이한 걸 원하면 염소 치즈, 단 거랑 함께 하겠다면 로크포르, 색에 반했다면 미몰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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